성경 : 갈라디아서 5 : 1, 13
제목 : 우리에게 주신 자유,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 2017. 8.14

자유는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본능입니다. 미 독립 전쟁 때 패트릭 헨리는 “나에게 자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달라”고 했고, 고당 조만식 장로님은 한국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을 때 “내 눈으로 조국의 자주 독립을 지켜보리라”고 자유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이셨습니다.

오늘 본문 또한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자유의 소중함을 언급하면서 다시금 자유를 빼앗기지 않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한국이 일본의 36년 통치로부터 해방된 지 72주년이 되는 해로, 오늘 광복 기념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에게 주신 자유,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정치적인 속박에서 자유를 주셨습니다.

미국의 상징이 된 “자유의 여신상”과 프랑의 상징이 된 파리에 있는 “에펠탑”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아시지요?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1886년 프랑스가 뉴욕에 기증한 것이며, 파리 에펠탑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1889년에 “구스타브 에펠”이 설계하여 만든 것입니다. 자유의 여신상과 에펠탑은 모두 자유를 획득한 상징물입니다.

이스라엘은 수없이 나라를 빼앗겨, 자유를 잃어 버렸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애굽에서 430년 동안 자유를 빼앗겨 종살이 하였습니다. 자유를 빼앗긴 이스라엘 백성들은 “흙 이기기와 벽돌 굽는 일 등 중노동을 하였고, 남자가 태어나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출1:16)“왕이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조산할 때에 살펴서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살게 두라.”

그 다음, 바벨론에게 정복당해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때의 형편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하25:7-9)“시드기야의 아들들을 저의 목전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갔더라.” 바벨론은 성전을 파괴하고 성전의 보물을 가져갔고, 왕의 두 눈을 뽑고, 왕 앞에서 왕자들을 죽이고 많은 사람들을 잡아갔습니다.

이스라엘이 페르시아에 지배를 받고 있을 때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통째로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페르시아,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가 된 에스더로 말미암아 극적으로 죽음에서 면케 되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이 죽음을 면케 된 “부림절”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습니다.

(에스더 9:29)“각 도, 각 읍, 각 집에서 대대로 이 두 날을 기념하여 지키되 이 부림일을 유다인 중에서 폐하지 않게 하고 그 자손 중에서도 기념함이 폐하지 않게 하였더라.” 유대인들이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부림절을 국가적으로 지키고 있는 것은 그들이 부림절에 얻은 자유가 너무나 소중하였기 때문입니다.

애국과 관련된 성경이 많지만, 페르시아 제국과 관련된 성경만 해도 다니엘,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 학개, 스가랴, 말라기 등 무려 7권이나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다윗, 예레미야, 에스라, 느헤미야 등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조국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8.15 광복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지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사실 3. 1운동이나 8.1 5광복절은 엄밀하게 신앙운동은 아니었습니다. 일본의 비인도적이고 강제적인 한반도 점령에 대한해방운동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찬송가에 국가 기념에 관한 교독문을 삽입해 놓은 것은 독립과 해방이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동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노력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음의 사람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희생하며, 심지어 목숨까지 받쳤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나라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2. 율법에서 자유를 주셨습니다.

율법에 대한 두 극단이 항상 존재해 왔습니다. “무법주의”입니다. 지금 신약시대에 율법이 필요한가? “믿음만 있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소위 “무법주의”입니다. (마5: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고 한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율법주의”입니다. 율법주의란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는 가르침입니다. (요일5:3)“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이 말씀을 보면서 “아하!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구나!”라고 잘못 이해하기 쉽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율법주의자들을 엄히 책망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율법을 지킨 것을 자랑하며, 율법을 지키지 못한 자를 정죄하며, 사람이 보지 않을 때는 마음대로 행하다가 사람이 보는 앞에서는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으로 보이는 외식 된 행동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두 가지 큰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죄를 깨닫도록 주셨습니다. (롬3:20)“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법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법을 만든 사람과 법을 가르치는 사람, 즉 변호사나 판사, 검사, 법학교수 등 법조인들입니다. 그 다음은 범죄자들입니다.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법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범죄자들은 대략 그 형량과 어떻게 죄가 적용 되는 것도 잘 압니다. 나아가 죄에 적용되지 않고 법을 이용하여 죄를 짓는 방법도 잘 압니다. 법은 죄를 깨닫고, 죄가 확산되지 못하도록 필요한 것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도록 율법을 주셨습니다. (갈3:24)“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옛날에는 여행을 하거나 집을 찾아갈 때 지도를 이용하였지만, 요즘은 구글 지도를 사용합니다. 우리가 방문하고자 하는 장소를 찾았을 때, 지도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으며, 지도는 내가 도착하고자 하는 곳까지 인도해 주면 역할이 끝이 납니다.

율법이란 마치 지도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구약의 모든 율법은 예수그리스도에게 인도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에게 인도해 준 율법은 더 이상 우리에게 어떤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에 대해 (갈3:23)“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 메인바 되고…갇혔느니라.” 이제 더 이상 율법이 우리를 이래라 저래라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얽매이게 하는 쇠사슬이 아니며,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에게 인도해 주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나침반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인과 같이(시1: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우리에게 주신 율법을 지키고, 즐거워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3. 죄에서 자유를 주셨습니다.

다윗은 죄를 지은 후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시32:3)“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사람들이 견딜 수 없는 아픔을 말할 때 “뼈가 아프다”라고 표현합니다.

바울은 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롬7:23)“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죄는 단순히 추상명사가 아니라 큰 권세이며, 죄가 우리를 끌고 가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슬에 끌려가는 노예의 모습, 그게 바로 죄 아래 있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모든 성경은 죄의 문제를 제외하거나 소홀히 취급한 곳이 없으며, 로마서는 참으로 죄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죄는 개인과 가정의 행복을 빼앗아 갈 뿐 아니라, 죄는 우리가 가진 모든 특권과 축복을 송두리째 빼앗아 갑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해 듣기 싫어하거나 감추려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사망에 이르는 죄에서 자유를 주셨습니다. (롬8:1-2)“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예수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을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어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정치적인 자유, 어떻게 해야 합니까? 1945년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어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5년 후 다시 동족상잔인 6.25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동족이 서로 피를 흘렸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4.19, 5.16. 5.18 등 숱한 내분을 겪으면서 갈등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북한은 핵을 가지고 갈수록 남한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1950년 9월28일, 맥아더 장군이 서울을 탈환한 후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습니다. “대통령 각하, 하나님의 은총으로 우리 군대는 한국의 수도서울을 해방시켰습니다.” 그리고 그의 연설 마지막 부분에는 “하나님께서 서울을 탈환하게 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주기도문의 기도를 드립시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바로 사용하지 못하고 남용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정치적으로 남의 나라에 종이 않도록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를 위해 기도할 것을 교훈하셨습니다. (1절)“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라”

모세, 사무엘, 다윗,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들이었지만, 동시에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였습니다. 특히 에스겔, 느헤미야, 에스더는 외국에 살았지만, 자신의 조국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며, 사랑하며, 그리고 헌신하였습니다.

(딤전5:8)“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비록 우리가 외국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할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과 죄로부터 주신 자유, 어떻게 해야 합니까? (13절)“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의 종이 되어 저와 여러분을 대신하여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창29:19)“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 이것이 사랑이 갖는 힘입니다. 우리 사랑으로 종노릇하며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만큼은 떠나지 말게 해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자유는 고귀한 희생을 통해 주어진 것입니다. 그것이 정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희생을 통해 주어진 것입니다. 고귀한 자유는 사랑으로 종노릇하므로 주어집니다. 우리가 서로 종노릇함으로 더욱 사랑할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