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마태복음 8 : 23-27
제목 : 큰 믿음, 작은 믿음, 거부하는 믿음 / 2017. 8.20
마태복음 8장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가진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5절-12절 “백부장의 믿음”, 23절-27절 “제자들의 믿음”, 그리고 28절-34절 “가다라 지방 사람들의 믿음”입니다. 주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큰 믿음”이라 하셨고, 제자들의 믿음을 “작은 믿음”이라 하셨고, 가다라 지방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거부하였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8장을 통해 “큰 믿음, 작은 믿음, 거부하는 믿음”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대인관계와 대물관계에서 큰 믿음이 나타난다.
5절-13절에서 백부장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백부장이란 100명 정도 부하를 지휘하는 장교로, 여기 백부장은 유대 가버나움에 파견된 로마 장교입니다. 백부장은 그의 부하 중 한 사람이 중풍병으로 고통을 받자 예수님께 나아와 고쳐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주님은 백부장을 향해 (10절)“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라게 여겨…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하시면서 “내 믿음대로 될지어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백부장의 믿음에 대해 두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에서 처음 보는 믿음이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놀라신 경우가 딱 두 번 있는데, (막6:6)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랐고, 그리고 오늘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놀랐습니다.
주님께서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놀란 이유가 무엇입니까? (6절)“내 하인”이라 했고, (눅7:2)“사랑하는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종은 노예에 불과 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를 향해서도 우정이나 정의는 있을 수 없다. 주인과 노예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도구가 생명이 없는 노예인 것과 꼭 같이 노예는 살아 있는 도구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자신의 하인을 “내 사랑하는 종”이라고 자신의 종을 한 인격체로 보았습니다. 그의 종도 나와 똑같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였습니다. 세상에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은 사람을 인격체가 아닌 도구나 수단으로 대할 때입니다. “청소하는 사람”“심부름하는 사람”“돈벌이는 사람”으로 대할 때 비참해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백부장은 회당을 지었습니다. (눅7:5)“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회당은 작은 돈으로 지을 수 없습니다. 특히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던 유대인을 위해서 회당을 지어 준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놀란 이유입니다. 주님은 백부장이 물질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사용한 것을 보고 놀라신 것입니다.
세계에서 최대 부자로 알려진 미국의 록펠러는 33세가 되었을 때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43세에는 미국에서 가장 커다란 회사를 소유했고, 53세에는 억만 장자가 되어 세계 최대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55세 때 병으로, 1년 이상 살지 못한다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 때 그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겠습니다.”고 결심을 한 후 가장 먼저 뉴욕에 있는 유명한 리버사이드 교회를 건축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록펠러 재단을 만들어 자선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록펠러는 시카코 대학을 비롯해 12개의 종합대학과 12개의 단과 대학 및 연구소를 지어 사회에 기증하였고, 4,928개의 교회를 지어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뿐 아니라, 미국 뉴욕시민들의 가정에 수도관을 설치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물세를 내지 않고 무료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록펠러는 98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건강한 몸으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백부장이 사람을 소중하게 대하는 모습과 물질을 소중하게 사용하는 백부장을 보시고, “이스라엘 중에 이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고 칭찬하였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사람을 대하는 관계에서 나타납니다. 동시에 우리의 믿음은 맡긴 재능과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붙여준 사람을 사랑하며, 우리에게 주신 물질을 바르게 사용하는 큰 믿음의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2. 어려운 상황에서 믿음이 작아지기 쉽다.
제자들이 평소에 어떤 믿음을 가졌는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배를 타고 가다 풍랑을 만났을 때 곧바로 나타났습니다. 제자들은 풍랑을 만났을 때 (25절)“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그러자 주님은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셨습니다.
성경에 바다에서 큰 풍랑이 일어난 경우가 세 번 기록되어 있는데, 사도행전 27장, 바울이 로마로 호송될 때 지중해에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일어나 “알렉산드리아”호가 파선되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배에 탄 276명에게 (행27:25)“여러분들이여 안심하라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 하였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바울의 믿음은 더욱 돋보였습니다.
둘째는, 구약 요나가 탄 배가 광풍을 만나 배가 파선 될 위험에 처했을 때 (요나 1:5)“사공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든 지라.”
“타이타닉” 영화가 전 세계에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는데, 4만 6천 톤급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하면서 1,517명의 고귀한 생명이 수장된 비극적인 사실을 근거하여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의 압권은 배가 빙산에 부딪쳐 약 2시간 동안 서서히 침몰해 가는 위기에서 사람의 연약함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어떤 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철학자 볼테르가 “바다에서 무신론자가 없다.”라고 한 말과 같이, 풍랑 앞에서 값진 보물도 바다에 던지게 하였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조차 하나님께 기도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요나는 그 엄청난 폭풍가운데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이럴 때(시127:2)“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을 잘못 인용하는 것입니다.
선장이 잠자고 있는 요나에게 무엇이라 말합니까? (요나1:6)“선장이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말합니다. 불신자인 선장이 풍랑 가운데 잠을 자고 있는 요나에게 “네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불신자들이 “목사님 그만자고 나라를 위해 기도 좀 하십시오!”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을 향하여 “좀 정직해라” “기도 좀 해라” “예수를 믿으려면 제대로 믿어라”고 합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7장에서 모래위에 집과 반석위에 집이 평소에는 차이가 없지만,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났을 때에 비로소 차이가 난다고 교훈하셨습니다. 학생이 극장에서나 음식점에서는 그 실력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험을 칠 때 드러납니다. 교수가 식사하고, 골퍼 칠 때는 실력이 나지 않지만 강의실에서 나타납니다.
우리 믿음 또한 평소에 드러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 믿음은 어려움이 닥칠 때 드러나게 됩니다. 성공할 때보다 실패하였을 때, 건강할 때보다 병들었을 때, 결혼 전보다 결혼한 후에 그리고 낮아 져 있을 때보다 높아 졌을 때 참 믿음이 드러납니다.
사울은 왕이 되기 전에 아주 겸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왕이 된 후 아주 교만함으로 버림받게 되었습니다. 반면 아람나라 군대장관 나아만은 처음부터 교만한 사람이었지만, 억지로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병을 고침 받았습니다.
(시편119: 67)“내가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다윗은 고난 속에서 믿음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우리의 믿음 또한 고난 속에서 더 강해지길 바랍니다.
3. 경제적인 손실 앞에서 믿음을 버리기 쉽다.
오늘 본문 8:28-34절에서 주님은 “가다라(거라사)” 지방에 귀신들린 자를 고쳐 주시기 위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 큰 광풍을 만났습니다. 주님은 그 곳에서 귀신으로부터 고통을 받던 자를 깨끗이 고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가다라 사람들은 “우리 동네에서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이유는 귀신이 돼지 떼에 들어가 2000마리나 되는 돼지가 바다에 빠져 몰사하였기 때문입니다.
돼지 2천 마리를 잃어버린 것은 참으로 큰 피해입니다. 오늘날 돈으로 환산을 해도 큰돈이며, 적지 않는 손해가 발생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거라사인들은 물질적인 손해 때문에 주님을 추방하였습니다. 가다라 지방 사람들은 귀신들린 사람이 고침을 받는 것보다 돼지 떼가 죽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현실에서 돈과 재물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도 복음서 중 1/4 가량 재물과 관련하여 교훈 하셨으며, 성경에 돈과 연관된 교훈과 가르침이 무려 2350여 번이나 됩니다. 돈을 경계하지 않으면 패망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돈 때문에 주님을 떠나간 청년 이야기,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 등 수없이 교훈하고 있습니다. 돈은 우리 인생을 완벽하게 굴복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이 30년 우정을 빼앗고, 믿음을 앗아간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아는 두 사람은 학창시절부터 절친한 친구로, 결혼 후에는 부인까지 친구가 되었습니다. 같은 교회를 섬겼습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동업을 하였는데, 한 사람은 돈을, 다른 한 사람은 기술을 투자했습니다. 돈을 투자한 사람은 친구의 말만 믿고 회사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회사를 맡은 사람은 친구 몰래 수입의 일부분을 빼 돌렸습니다. 그러면서 회사가 어렵다고 돈을 더 투자할 것을 친구에게 요청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친구는 회사운영에 대한 상황을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자 자신을 믿지 못한다고 동업을 파기하고, 따로 회사를 차렸습니다. 그 후 두 회사는 경쟁관계가 되었고, 서로 비방하고, 모함까지 일삼았습니다. 그런데 돈을 투자한 친구가 고의적으로 돈을 빼돌려 동업을 파기하고 회사를 차렸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지금까지 원수가 되어 서로 만나지 않고 있습니다.
신앙과 재물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성경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다면 마침내 돈의 함정에 빠져나올 수 없게 됩니다. 재물은 신앙의 기준이라 말하지 않지만, 적어도 신앙의 기초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손해 앞에서 믿음을 떠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대인관계 속에서, 대물관계 속에서 나타납니다. 나의 믿음은 내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와 축복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평소에는 믿음이 커 보이기도 하지만 어려운 상황을 만나거나 경제적인 손해 앞에서 믿음을 버리기 쉽습니다.
여러분! 대인관계 속에서, 어려운 상황에서 그리고 경제적인 손실 가운데서도 우리의 믿음이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크고 담대한 믿음으로 나타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