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마태복음 10 : 40-42
제목 : 냉수 한 그릇의 의미와 가치 / 2017. 7.30

 

더운 여름에 가장 생각나는 것은 “냉수”입니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얼음 팥 빙수”입니다. 제가 어릴 적에 땡볕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농부들에게 “냉수”를 갖다 주면 벌컥벌컥 마시면서 “아 –시원하다.”라고 흐뭇해하는 것이 기억납니다. 여름철에는 “냉수”만한 것이 없습니다.

1901년 제1회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람은 적십자를 창설한 “앙리 뒤낭”입니다. 그의 동상이 스위스 취리히에 세워져 있는데, 그의 동상에는 금방 죽어 가는 한 병사에게 물을 마시게 하는 모습니다. 바로 냉수 한 그릇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냉수 한 그릇”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은 냉수 한 그릇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본문을 가지고 “냉수 한 그릇의 의미와 가치”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냉수 한 그릇이 영생과 구원받을 기회를 얻게 되다.

한국에서 다른 사람이 얕잡아 본다고 생각할 때“물로 보지 마!”라고 하며, 소개팅이나 입사 시험에 탈락하였을 때에 “물 먹었어!”라는 표현을 합니다. 그리고 큰 기대를 하고 갔는데, 아주 형편이 없을 때 “맹물이네!”라고 합니다.

아마 이런 표현은 “물의 소중함을 잘 몰랐을 때” 생긴 말인 것 같습니다. 물을 소중함을 안다면 이런 표현을 할 수 없습니다. 지구와 사람은 약 70%가 물로써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사람 몸에 물이 1%만 줄어도 심한 갈증을 일으키며, 5% 모자라면 혼수상태에 빠지고, 10% 모자라면 생명을 잃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의사들 하루 1-2리터 물을 마시라고 권합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주님이 수가성 여인에서 물을 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까지 오시느라 목이 말라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청하신 후에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나는 생수를 가지고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마리아 여인은 주님에게 (요4:11)“주여 물 길를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주님이 “생수”를 주겠다고 했을 때, 사마리아 여인은 우물에서 생수를 얻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그마저도 물을 길를 그릇이 없기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 자신이 생수가 되심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사마리아 여인처럼 영생이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어떻게 구원받는지 모르는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여러 길이지만 모두 정상에서 만나는 것처럼, 모든 종교도 가는 길이 다르지만 만나는 곳은 똑같다.” 라고 말합니다.

세상에는 노력하면 스스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종교나 사람이 있습니다. 이슬람교는 구제, 성지순례, 하루에 5번 기도, 선행을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요14:6)“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종교는 자신이 스스로 길을 찾아갑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구원해 줄자가 세상 안에 있다고 생각하고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인생의 바른 길을 소개하는 것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을 바르게 가르쳐 주고 인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우리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바르게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요4:15)“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사마리아 여인은 “물 한 그릇”을 통해 영생과 구원받을 기회를 얻었습니다. 물 한 그릇, 차 한 잔으로도 생수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습니다.

2. 냉수 한 그릇의 대접이 좋은 만남을 가져다주다.

창세기 24장에 아브라함이 며느리를 구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세 얻은 아들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40이 되도록 장가를 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의 종 엘리에셀에게 이삭의 아내를 구해오도록 부탁하였습니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집에서 54년 일했고, 아브라함은 그에게 모든 제산을 맡겼고, 양자까지 삼으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을 그를 믿었기에 집안의 모든 일을 맡겼습니다. 엘리에셀은 주인 아브라함의 요구에 따라 낙타 10필에 최고의 물품들을 믿고 메소포타미아로 갔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 도착한 엘리에셀은 먼 길을 여행하였기에 사람뿐 아니라 낙타까지 목이 말랐습니다.

그곳은 유목민 생활을 하였기에 물이 귀했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은 저녁때가 되면 모두 우물에 모여 물을 마셨습니다. 엘리에셀도 물을 얻기 위해 우물을 찾아 갔습니다. 우물에 도착한 엘리에셀은 한 아리따운 처녀를 만나 그에게 “나에게 물을 좀 달라.”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엘리에셀에게 “주여 마시소서!”라며, 물을 마시게 하였고, 낙타에게도 물을 마시게 하였습니다.” 그 처녀는 “리브가”였습니다. (창26:19-20)“당신의 약대도 위하여 물을 길어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하고 급히 물 항아리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려고 우물로 달려가서 모든 약대를 위하여 긷는지라.” 리브가는 처음 만난 엘리에셀에게 “주여”라는 존칭(Sr.)을 사용했고, 물을 마시게 했고 그가 데리고 온 모든 낙타에게 물을 마시에 하였습니다.

여러분! 낙타가 배부르게 물을 마시려면 얼마의 물이 필요한지 아십니까? 보통 낙타 한 마리는 한 번에 약 100리터의 물을 마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낙타가 열 마리나 되었습니다. 그러면 리브가는 물을 얼마나 길어야 했습니까? 100리터는 5리터 보떼야 20개입니다. 리브가는 최소한 5리터 보떼야 100개나 되는 물을 길어야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리브가는 참으로 대단한 처녀였습니다.

그런데 더 대단한 사람은 엘리에셀입니다. 이런 리브가를 한 눈에 알아보고 “이삭의 아내”라고 확신한 엘리에셀의 안목이 더욱 돋보입니다.

결혼을 앞둔 여러분! “물 좀 주세요!” 해보세요! 물을 준다면 결혼 상대자다 아닌가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이 “물 좀 달라!”한다면, “무슨 저런 사람이 있어?” 하지 말고, 한 그릇이 아니라 한 병을 주세요!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냉수 한 그릇이라도 상을 잃지 않겠다.” 그런데 리브가가 대접한 냉수는 몇 그릇이 되겠습니까? 제가 대략 계산해 본 결과 1500 그릇 정도 되었습니다.

리브가가 받은 상이 무엇입니까? 먼저 믿음의 귀한 신랑감을 만나 결혼하였습니다. 두 민족의 어머니가 되었고, 12아들과 딸 하나를 낳았습니다. 무엇보다 예수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냉수 한 그릇의 대접은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지만, 좋은 만남, 좋은 사람을 만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타인에 대한 배품이 귀찮은 것 아닌, 축복이 됨을 기억할 수 있기 바랍니다.

3. 냉수 한 그릇이 최고의 값진 제물이 되다.

사무엘하 23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다윗은 블레셋 군사가 점령하고 있는 고향 베들레헴에 있는 우물물을 마시고 싶었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이 우물물을 마시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향수심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윗이 우물물을 마시고 싶다고 하자, 다윗의 세 용사가 단번에 블레셋 진영에 들어가 군대와 충돌하고 우물물을 길러왔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물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삼하23:16-17)“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충돌하고 우물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이는 그 사람들의 피니이다.”

다윗은 세 용사들이 적진을 뚫고 길러온 물을 “피”라고 하였습니다. 세 용사가 가져온 물은 일번 물과 달랐기에 다윗은 그것을 하나님께 부어 드렸습니다. “부어드렸다”는 “제물”로 드렸음을 말합니다. 구약에서“물”을 제물로 드린 경우가 여기뿐입니다. 다윗이 부어 드린 “물”은 목숨을 걸고 길러 온 물이였기에 최고로 값진 희생제물이 된 것입니다.

(레2:2)“제사장은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기념물”을 히브리어로 “아즈카라”고 했는데, “한 부분이 전체를 의미한다.”라는 뜻입니다. “고운 기름 한 줌은 모든 식물을 대표한다.”는 뜻으로, 비록 “기름 가루 한 줌”이지만 이것은 모든 “식물을 드려 제사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뜻입니다.

본문에서 주님께서 “냉수 한 그릇”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냥 시원한 냉수 한 그릇”만이 아니라
냉수 한 그릇 속에는 그 사람의 관심과 정성, 헌신과 희생이 담겨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목할 것은 그냥 물이 아니라 “냉수 한 그릇”입니다. 물 자체가 귀한 팔레스틴과 같은 더운 곳으로, 오늘날과 같이 냉장고도 없던 시절에 “냉수”란 물이 아닌, “최고로 값진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냉수 한 그릇에 대한 가치가 아직 떠오르지 않습니까? 주님은 가난한 과부가 드린 두 렙돈(한국 돈 100원 짜리 동전 2개)에 대하여 “생활비 전부”를 드렸다고 하셨습니다.

수넴의 여자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위해 “작은방”을 준비한 결과 죽은 아들이 살아나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사렙 땅 과부는 엘리야를 위하여“작은 떡 하나”를 드림으로, 무서운 죽음의 흉년을 이겼습니다. 어린아이가 드린 보리떡 5개 물고기 2마리는 5천명이 먹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나의 수고가 뭐 대단하겠느냐? 잘 알아 듣지 못하는 어린이에게 두 시간,세 시간을 준비해서 가르친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회의적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국 리버풀의 공장에서 일하는 15세 되는 소년이, 주일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아직 아프리카에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말을 듣고 의료선교사가 된 사람이 바로 리빙스턴입니다.

믿음의 싸움이 혼자입니까? 기도가 혼자이며, 봉사하는 것이 혼자입니까? 주님은(눅12: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고 하십니다.

냉수 한 그릇이 영생과 구원받을 기회를 얻게 했습니다. 냉수 한 그릇이 좋은 만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냉수 한 그릇이 최고로 값진 제물이 되었습니다.

(잠19:17)“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계22:12)“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우리가 행한 모든 수고, 냉수 한 그릇까지, 주를 위해 흘린 땀, 수고와 헌신을 갚아 주실 약속을 믿고,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