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종려나무와 백향목 같은 성도

성경 : 시편 92 : 12 – 15 제목 : 종려나무와 백향목 같은 성도

2019. 6.23

성경에는 아주 많은 식물들이 등장합니다. 포도, 무화과, 상수리, 버들, 살구, 싯딤(아카시아), 향나무 등, 마치 식물원을 만들어도 될 만큼 수 십 종류에 이릅니다. 오늘 본문 시인은 우리 성도를 하나님의 집에 심겨진 종려나무와 백향목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종려나무와 백향목 같은 성도”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종려나무는 많은 열매를 맺는 나무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홍해를 건너 삼일 길을 갔으나 물을 얻지 못하자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종려나무 70주가 있는 엘림에서 물을 얻어 마시게 하였습니다. 종려나무가 있는 곳이면 사람이 살기 좋은 곳으로 고대 중동사회는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사막의 대추나무로 불리는 종려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뿌리를 깊이 내리는데, 보통 30m정도로 땅 아래로 깊이 뿌리를 내리며, 옆으로는 무려 50m까지 뻗쳐 있는 나무입니다. 아주 깊고 넓게 뻗어 있는 뿌리를 통해 물을 공급합니다. 물이 없는 사막에서도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은 뿌리를 깊게 박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12절)“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14절)“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종려나무가 번성과 열매를 상징하는 나무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종려나무의 수명은 보통 400년 정도로, 늙을수록 열매를 많이 맺으며, 죽을 때까지 열매를 맺습니다. 오늘 시인은 우리가 사막과 같이 매 마르고, 삭막한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는 비결을 말하고 있습니다. (13절)“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나무란 선택권이 없습니다. 나무가 원해서 공원이나 산에서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나무는 사막에 잘못 심겨져 뜨거운 태양열에 말라죽는가 하면, 또 어떤 나무는 1년 열두 달 가뭄이 와도 걱정이 없는 물가에 심긴 나무도 있습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을 시냇가에 심긴 나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의 차이는 어디에 심기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과 차이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여호와의 뜰과 집에 심겨 졌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며 감사의 이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라고 찬송합니다. 여호와의 뜰 안에 있을 때 비로소 번성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는 죽을 때까지 열매 맺는 삶을 살라 교훈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머릿속에 자주 떠오르는 질문은 “내 삶에 의미가 있는가?”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나이 듦에 대한 교과서가 없습니다. 인생은 편집도 수정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젊어서는 사람들에게 예쁘다는 칭찬도 받았지만, 나이 들면 그냥 할아버지, 할머니 일뿐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알 때 우리가 나이 들었다고 손을 놓으려고 하거나 쓸모없는 사람이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모세는 80세부터 사역했고, 갈렙은 85세에 헤브론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시인은 우리 성들을 종려나무에 비유한 것을 통해 우리 삶에 열매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혼돈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나이 들면 쓸모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지 못할 때 쓸모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과원지기에게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를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언제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까? 열매를 얻을 때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죽을 때가지 열매를 맺기 원하십니다. (갈5:22-23)“사랑과 희락 화평과 오래 참음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히길 바랍니다. 2. 백향목은 재목이 되는 나무입니다.사자를 “숲의 왕자”, 독수리를 “하늘의 왕자”라 부릅니다. 그런데 백향목은 “나무 중 왕자”라고 부릅니다. 백향목은 하늘을 향해 곧게 자라는 나무로, 레바논의 백향목은 해발 2천m 눈 덮인 산에서 높이가 40m, 둘레가 10m까지 자라 “구름을 뚫는 나무”로 부르기도 합니다. 백향목은 어떤 나무보다 오래 살며, 2-3천년 살 정도로 수명이 깁니다. 그래서 “백향목은 나이를 세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백향목은 곧게 자랄 뿐 아니라, “백향목은 벌레가 먹지 나무”로 불려 병충해에 강해 집이나 성전을 건축할 때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재목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을 백향목으로 지었습니다. 시인이 우리 성도들을 백향목으로 비유한 것은 마치 백향목이 해발 2천m 눈 덮인 산에서, 악조건 가운데서 수 백 년의 세월을 견디며, 비로소 성전의 재목과 기둥이 되었듯이 우리 성도들 또한 어떤 환경에도 변함없이 견디며, 주님의 일군으로 섬길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모든 건물에 기둥이 필요하듯 공동체 또한 기둥이 필요합니다. 기둥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먼저 똑 발라야 합니다. 여기 “곧다”는 것은 “정직하고 진실하다.” 뜻입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정직하지 못하면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기둥은 무엇보다 튼튼해야 합니다. 기둥은 모든 건물을 떠받치기에 튼튼해야 합니다. 아무리 곧아도 튼튼하지 못하면 기둥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공동체에서 기둥의 역할을 감당하려면 모든 어려움과 무거운 것들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둥은 한번세우면 건물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제자리에 서 있습니다. 기둥은 다른 것과 달리 뜯었다 붙였다 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기둥은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가 종식직인 이유는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라는 뜻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믿음직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을 “기둥 같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초대교회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기둥 같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갈2:9)“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주님은 이들을 3년 동안 고치고 다듬어서 완벽한 기둥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런 점에서“기둥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듬어야한다.”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이 조각가 미켈란젤로에게 “당신은 어떻게 해서 저 위대한 다윗 상을 조각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쓸데없는 부분들을 골라 파 내다보니 이런 작품이 나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쓸모없는 부분을 하나씩 제거하다보면 기둥으로 다듬어 지게 됩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불같은 성격과 1등이 되고자 하는 콤플렉스와 경쟁심이 강했지만, 이후 사도행전에서 사랑과 섬기는 사람으로 다듬어졌습니다. 야고보는 분노와 교만의 사람이었지만 온유한 사람이 되었고, 사도로서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요한 또한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매 주일 교회에 나와 봉사하며, 식사 준비하며, 가르치며, 달란트로 봉사하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과 자신이 선 자리에서 책임을 감당하는 것보다 귀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에 쓰임 받는 것을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3. 종려나무와 백향목은 항상 푸르며, 원기 왕성한 나무입니다. 세계 3대 영화제,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와 함께 칸 영화제가 있습니다. 칸 영화제는 매년 5월 프랑스 남부 칸에서 열리는데, 칸영화제의 심벌은 “종려나무”로 최우수 수상자에게 “황금종려상”을 수상합니다. “황금종려상”은 영화제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푸른 칸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종려나무는 물이 없는 황무지나 사막의 악조건 가운데서 변치 않고 푸름을 간직한 상록수입니다. (14절)“늙어도 여전히 결심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진액이 풍족하다.”란 “생산성과 원기가 넘친다.”는 뜻이며, “빛이 청청하다.”란 늙도록 잎사귀가 푸르고 풍성하다는 뜻입니다. 진액이 속에서 항상 공급됨으로 푸름이 가지로 전달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피터 톰킨스가 저술한 “식물의 정신세계”라는 책에서 “식물도 바흐의 부드러운 음악을 좋아하지만 시끄러운 록음악을 싫어한다.”라고 식물도 감각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 때에 오늘 시인이 우리 성도의 삶을 종려나무에 비유한 것은 참으로 많은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활기가 넘치며, 푸르며, 풍성합니까? 믿음은 살아 있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은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자라야 합니다. 우리 믿음이 살아 있는 명백한 증거는 성장하는 것입니다. (벧후3:18)“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알고 기억할 때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백향목 또한 찬바람이 몰아치는 산악지대와 어떤 악조건에도 변함이 없이 푸름을 간직한 상록나무입니다. 보통의 나무들은 비바람 폭풍우가 몰아치면 휘어지고 구부러집니다. 그러나 백향목은 섞지 않고, 결코 휘어지거나 구부러지지 않습니다. 백향목은 변함이 없는 나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녀를 낳으면 백향목을 심으며, 아들이 자라 결혼을 하게 되면 그 나무를 베어 침대를 만들어 주는데, 그것은 찬바람이 불어오는 시련을 견디며,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잘 하라는 마음에서라고 합니다. 우리의 현실도 때로 사막과도 같아서 메마르고 삭막한 삶을 통과해야 하며, 때론 찬바람이 부는 시련도 참아야 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적응하고 악조건들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벧전1:7)“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금을 제련하듯이,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도 고난과 시련을 통해 연단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보면 잡다한 것들이 많이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세상에 살면서 점차적으로 본래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세상 사람들과 비슷하게 살아 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동일하게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시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시련이라는 용광로를 통해 우리 속에 있는 불순물을 기꺼이 제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한 시련은 결코 낭비적인 것이 아닌 값진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시인은 우리 성도를 종려나무와 백향목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종려나무는 죽을 때까지 열매를 맺습니다. 백향목은 기둥으로 사용됩니다. 종려나무와 백향목은 사시사철 푸름을 간직한 나무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처한 환경은 안락한 환경이 아닙니다. 그러나 혹독한 환경에서도 종려나무와 백향목과같이 번성하고 계속 성장하여 하나님의 집에 귀히 쓰임을 받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