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앙 간증,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성경 : 사도행전 22 : 3-11  /  2017.11.26.

지금은 좀 적은 편이지만, 한 때 한국교회는 신앙 간증하는 사람들이 차고 넘쳤습니다. 간증은 주로 이름이 많이 알려진 사람들, 유명 배우나 탤런트, 체육들이 많이 하는 편입니다. 얼마 전엔 연예인 60명이 간증문을 책으로 엮어 발간하기도 하였습니다.

 

“간증이란 개인적인 신앙의 체험을 통해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점에서 간증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간증은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중요한 수단이므로 간증은 많이 할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간증을 할 때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랑이 되고 사람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자기를 심문하는 자들 앞에서 간증하였습니다. 3절에서 5절까지는 예수 믿기 전 이야기를 하였으며, 6절부터 16절까지는 예수 믿게 된 경위를 말하고 있으며, 그리고 17절부터는 예수 믿은 후에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내용입니다. 오늘은 바울의 간증을 통해서 “신앙 간증은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가?”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내가 주님을 만나기 전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예수 믿기 전, 자신의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빌3:5-6) “나는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지파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또한 (6절)“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나는 율법대로 안식일을 지켰고 당대 최고 가말리엘로부터 배운 것 등 많은 자랑꺼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4절)“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20절)“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 내가 찬성하였고, 그를 죽이도록 했다.”그는 예수 믿기 전 과거의 치명적인 허물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고백하였습니다.

 

자신의 허물을 다른 사람 앞에 내 놓는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사람은 가급적이면 지난날을 미화하고 감추려 합니다. 그러나 내가 주님을 만났을 때는 비록 지난날의 허물도 부끄럽지 않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됩니다. 반대로 간증을 극적으로 하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간증을 극대화하여, 내가 전에 얼마나 악하고 못된 사람인가에 초점을 맞추려는 모습을 봅니다. “나는 전과 10범이었다. 사업이 망했고, 죽을병에 걸려 의사가 사형 선고를 내렸고, 현대 의학이 고칠 수 없는 병이라고 진단했는데, 40일 금식하고 난후 깨끗하게 낳았다.” 대개 이런 식입니다.

 

이런 극적인 간증을 들으면 나는 이런 극적인 경험이 없으므로 간증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간증이란 과거에 흉악한 일을 저질렀거나 방탕한 경험이 있어야 은혜를 끼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특히 모태 신앙이나 평범하게 신앙생활한 사람들에게 “간증할 것이 없습니까?” 하면, “제가 뭐 잘났다고 간증을 합니까?”, “저는 별로 간증할 것이 없습니다.”간증을 꺼립니다.

 

그러나 평범하게 신앙생활 한 사람도 “내가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나의 변화된 삶을 간증할 수 있습니다. 간증은 과거 내가 무슨 큰일을 했는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간증은 특별한 사람들의 전용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예수 믿기 전에 자랑거리뿐 아니라, 실패와 불행했던 경험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든지, 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이야기, 반대로 바울처럼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다른 사람에게 부당하게 피해를 준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믿기 전의 삶을 간략하게 소개하였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나기 전 내가 행한 일이 이토록 어리석은 줄 몰랐다.” 하나님 없는 삶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신앙 간증은 내 인생에 하나님이 없던 삶과 하나님과 함께 한 삶을 통해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간증을 통해 주님을 증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내가 주님을 만나게 된 경위를 증거 할 필요가 있다.

골프 하시는 분들은 한번 쳐서 들어간 “Hall in One”이야기는 만나는 사람마다 하고 또 합니다. 낚시하는 사람들은 월척을 낚은 것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이야기를 할 때마다 고기는 점점 커져 갑니다. 처음에는 손바닥만 고기가 1년이 지나면, 팔꿈치만큼 커집니다.

 

사도행전 저자인 누가는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경위를 사도행전 9장과 22장에 기록했는데, 9장과 22장의 내용이 서로 다릅니다. (행9:7)“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했는데, (행22:9)“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고 반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시간이 지나면 기억력이 약해지기 쉽습니다. 오래 전 일을 기억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바울도 과거 자신이 경험한 것을 잘 기억하지 못하므로 잘못되게 간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간증을 할 때 정확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출애굽 사건은 아주 중요한 사건이기에 말끝마다 출애굽 이야기를 빼 놓지 않았습니다. 출애굽이야기는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반복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마다 출애굽 사건과 같은 이야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6.25 때 고생한 이야기, 가난했던 보리 고개이야기, 월남전에서 죽었다가 살아난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이야기를 합니다. 가족들은 똑같은 이야기들을 수없이 듣다보면 “여보, 아빠 그 이야기 또 해요? 이제 백 번도 더 들었을 것예요. 이제 그만해요!”라고 합니다. 본인은 신이 나서 말하는데 듣는 사람은 실증이 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밤새 한 마리의 고기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깊은 대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말씀을 듣고, 그물을 내려 많은 고기를 잡은 후 주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레위는 세관에서 일을 하다가 주님을 만났고, 나다나엘은 친구 빌립의 전도를 받아 주님을 만났습니다. 삭개오는 주님께서 “삭개오야! 라고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마르틴 루터는 친구와 함께 길을 가다가 친구가 벼락에 맞아 죽는 모습을 보고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하였고, 노예상인이었던 존 뉴턴은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죽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을 찾게 되었고, 한국 최초선교사로 순교한 토마스 목사님을 죽인 박춘권씨는 토마스 목사님이 전해 준 성경을 읽고, 주님을 영접하고, 안주교회 영수가 되었습니다.

박영식씨는 토마스 목사님이 전달해준 성경을 자기 집 벽지로 붙인 후 벽에 붙인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그 집은 한국 최초 “널다리 교회”가 되었고, 최치량씨는 토마스 목사님의 순교 장면을 목격하고 예수를 믿고 장대현교회 장로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간증할 때 나는 19601111, 210, 꿈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구원파는 구원받은 시간과 장소를 모르면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구원받은 시간과 장소를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바울처럼 변화된 때를 알 수 있지만, 베드로처럼 모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벽시계가 “똑딱똑딱”하며 소리를 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소리 연구가들은 시계가 “똑똑똑똑” 동일하게 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그러면 왜 “똑딱 똑딱”으로 듣습니까? “사람의 마음은 변화와 리듬을 추구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내가 언제 어떤 음성을 들었다.”,“내가 무엇을 보았다.”는 것보다 “전에는 내 중심으로 살며, 사람이 싫고 미워했는데, 주님을 만난 후 남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즐거워졌다.” 주님 안에서 내가 변화된 것과 구원받은 확신이 더 중요합니다. 죄인인 내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용서함 받았다는 체험을 고백하는 것이 간증입니다.

 

  1. 예수를 믿은 후 변화 된 현재의 삶이 간증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10년 쯤 지난 후 “이방인의 사도,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었다고 해서 그 날부터 당장 의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현재에 변화된 삶을 간증하는 것이 중요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를 고친 후 무엇이라 말했습니까? (행3:12)“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도다!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다.” 이 사건을 통해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3천명이나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미국 닉슨 대통령 때 “척 콜슨”은 닉슨의 보좌관이었는데,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주님을 만나 “거듭남”이란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는 “나는 대통령 보좌관일 때는 나의 영혼이 죽어 있었는데, 감옥소에서 내 영혼이 살아났다.”고 간증하였습니다. 그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간증은 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때문에 내가 변화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를 나누고 증거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변화 됩니다. 또한 내가 받은 은혜를 이웃과 함께 나누면 자신의 믿음도 새로워지며 확신이 생깁니다.

 

금년 유엔 네트워크(SDSN)가 발간한 세계 행복보고서에서 노르웨이가 세계 155 국가 중 가장 행복한 나라에 올랐고, 덴마크가 2위, 아이슬란드가 3위, 5위 핀란드, 스웨덴이 10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다섯 나라들의 선조는 야만족이라 불리는, 바이킹 해적들입니다.

 

유럽 역사를 보면 375년에 게르만 족의 이동이 일어납니다. 게르만 민족의 이동으로 서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중세 유럽이 시작됩니다. 이후 8세기 쯤 스칸디나비아에 살고 있던 게르만 족과 바이킹족들이 유럽을 침공하여 유럽지역을 정복하고 정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영국의 윌리엄 1세는 11세기 바이킹의 후손들이며, 415년 경 스페인을 침공한 서고트족은 스칸디나비아에 살던 게르만족들입니다. 그들은 유럽에 흩어져 살면서 바이킹의 원시신앙을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하였습니다. 약탈을 일삼아 야만족이라 불리던 바이킹 족들이 기독교를 받아 들여 유럽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성경은 주님을 만남으로 변화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베드로와 세리 마태와 삭개오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 이들 모두는 주님을 만남으로 새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자신이 만난 주님, 우리의 삶 속에서 만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증거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만난 주님, 나의 삶의 질과 그리고 양을 바꾸게 하신 주님을 증거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