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출애굽기 18 : 13-22
2017년 새해에도 사랑의교회 성도님들의 가정에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총이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7년 교회 3대 중점사항으로, “우리 함께 일하자(약2:22)”, “둘째,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하자(시51:12)”, 그리고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 하자(미3:8)”로 정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혼자가 아닌 함께 일하라”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혼자서 일을 하게 되면 낙심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20세 이상 남자만 60만 명가량 되었습니다. 주석가들은 여자와 아이를 합치면 약 200만 명쯤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혼자 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였습니다.
모세는 백성을 가르치고, 재판하는 일 등, 모든 일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혼자서 행하였습니다. 재판하는 일만 해도 너무나 벅찼습니다. 한 사람 한사람을 재판하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의 사정을 다 들어야 함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13절)또한 많은 백성들이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이드로가 모세에게 무엇이라 말합니까? (18절)“그대와 함께한 이 백성이 필연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그대에게 너무 중함이라 그대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혼자 일할 때 “기력이 쇠한다.”고 하였습니다. “한계에 부딪힌다.”“낙심하게 되고, 원망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관공서에 갈 때마다 “일하는 사람은 적고, 일을 처리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은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은행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내가 입금한 돈을 찾아 사용하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가? 내가 혹 바보가 아닌가?”
혼자서 일을 하다 보면,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까지 지치게 되며, 원망이 나오게 됩니다. 마르다가 그러하였습니다. (눅10:40)“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사람이 혼자서 일을 하다보면 불평과 원망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가정과 교회 공동체는 혼자 일하도록 내 버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가정에서 아버지 혼자 일하는 것을 보고 있어도 안 됩니다. 어머니 혼자서 바쁘게 일하도록 버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 어떤 기관만이 일하도록 내버려 두고, 다른 기관이 모른 척 하는 것은 옳지 못한 태도입니다.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말 가운데 하나는 “혼밥, 혼술족”이란 말입니다. 혼자서 일하고, 혼자서 밥 먹고, 혼자서 놀고, 혼자서 여행가는 것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가족이 없는 독거가족”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만 “좋았더라.”는 말이 7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실 때마다“보기에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창2:18)“사람이 독처 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삼손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는 혼자서 싸웠다는 것입니다. 삼손에게 큰 힘을 가졌지만 혼자서 일함으로 넘어졌습니다. 그의 생애를 볼 때 같이 일하고, 같이 싸운 적이 없습니다. 혼자서 일을 하다 보니 약점을 보완할 길이 없었고, 넘어졌을 때에 일으켜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소는 2년이 되면 수레를 끌고 밭을 갑니다. 그러나 사람은 20년이 되어도 자립하지 못하며, 결혼을 해도 부모가 마음을 놓지 못합니다. “저는 사람이 싫어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이기적인 것은 없습니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은 함께 일할 줄 알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함께 일한 사람을 로마서 16장에는 적어도 37명 이상의 이름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성경에 “같이”란 말이 2012번, “함께”란 말이 몇 번 나오는지 아십니까? 1360번이나 나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2017년은 무엇이든지 “함께”, “같이”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 함께 일할 사람을 세워라.
(17절)“그대의 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도다.” 즉, “옳지 못하다. 나쁘다!” 혼자서 일하는 것을 “나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드로는 다음과 같이 제안하였습니다. (21절)“그대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입니다. 즉 분담과 위임의 법칙을 제시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을 세우라고 하였습니까? “백성 가운데 있는 사람” 이 말은 백성들과 동고동락한 사람 즉, 공동체를 이해하며, 이미 공동체 가운데 생활한 사람을 선택할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가룟유다를 대신하여 제자를 보선하는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습니다. (행1:21)“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11제자들과 함께 다녔던 자라고 했습니다. 왜 이런 제안을 했습니까? 제자들은 3년 간 주님과 함께 많은 것을 배웠고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고난에 동참한 사람이 적합하다고 하였습니다.
“재덕이 겸전한 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믿음으로 확실한 자”를 말합니다. “진실무망하며” “진실 된 사람”을 두고 한말로, 자신에 대하여 엄격한 사람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를 미워하며”, 이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해가 없는 자”를 뜻합니다. (딤후2:2)“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22절)“그리하면 그들이 그대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그대에게 쉬우리라” 이런 자들과 짐을 분담하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이드로의 권고에 따라 천부장, 백부장, 오십 부장, 십부장을 세워 함께 일을 분담하도록 하였습니다. 저희 사랑의교회도 교회 일을 분담할 수 있는 신실한 일군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하늘나라로 막 승천하려는데, 한 천사가 주님께 질문을 하였습니다. “주님 제가 베드로는 주님을 모른다고 배반하였고, 야고보 요한은 아직 성질을 고치지 않은 것 같은데, 주님께서 3년 동안 하시던 사역을 제자들에게 맡기고 떠나실 것입니까? 혹 다른 대안은 없습니까?” 하자 주님은 한 마디로 “다른 대안은 갖고 있지 않다.”라고 하신 후 승천하셨다고 합니다.
당시 제자들은 부족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제자들을 믿고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편만하게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좀 부족하다 할지라도, 맡겨 주면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미흡해도 나중에는 잘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일은 서로 분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달란트대로 봉사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21절)“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이것은 받은 달란트대로 봉사할 것을 교훈하신 말씀입니다. 신약에 달란트에 대한 두 교훈이 있는데, 마태복음 25장 달란트 비유와 누가복음19장 므나 비유입니다. 두 비유의 차이점과 공통점이 있습니다.
달란트 비유는(마25:15)“각각 그 재능대로 주셨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서로 다른 재능을 주신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나 므나 비유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똑 같이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르게 받은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예술적인 재능, 운동, 문학 등 너무 다른 것이 많습니다.
반면, 똑같이 받은 것이 무엇입니까? 한 생명, 1년은 365일, 하루는 24시간 동일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는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루 24시간을 낭비한 사람과 땀 흘려 일한 시간을 같을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서 어떤 사람이 열 명의 종들에게 각각 한 므나를 주면서 장사를 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한 므나”는 한 달란트의 1/60 정도로, 노동자 20일 품삯에 해당되는 돈으로 요즘 대략 1000유로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어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애야! 1천 유로를 줄 테니 이것으로 사업을 한번 해보라”했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오겠습니까? “장난합니까? 사람을 놀립니까? 이것으로 무슨 사업을 합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아주 적어 보이는 한 므나를 가지고 어떤 장사를 했는지 잘 알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해 열 므나와 다섯 므나를 남겼습니다. 투자한 돈의 10배, 5배를 남겼다면 아주 장사를 잘 한 것이 아닙니까?
우리 믿음생활을 장사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마13:45)“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여기 “장사”란 헬라어에 “더 좋은 것을 찾는 사람”이란 뜻으로, 진리를 찾는 사람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믿음생활을 장사에 비유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태도가 필요합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 종은 한 므나를 보자기에 싸 두었습니다. 경제에서 가만히 두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 없습니다. 경제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몸도 가만히 두면 쇠약해집니다. 예술적인 재능도 가만히 두면 소명됩니다. 물도 가만히 두면 섞습니다. 땅도 버려두면 잡초가 무성해 식물이 자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재능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미국 켄터키 주에 맘모스라는 큰 동굴, 호수 안에 각종 고기가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곳에 사는 모든 물고기들은 앞을 볼 수 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어두운 동굴에 있다 보니 눈을 사용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므나비유”의 핵심은 “우리가 받은 재능을 버려두면 소멸된다.”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와 능력은 놓는 순간 소멸되는 것입니다. 달란트비유에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했고, (22절)“악한 종”이라고 책망했습니다. 주인이 책망한 것은 적게 남겼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받은 것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은 것을 가만히 두는 것은 분명 악한 것이며, 게으른 것입니다.
혼자서 일을 하게 되면 낙망하기 쉽습니다. 함께 일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받은 달란트를 묻어두지 말고 잘 활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능들을 땅에 묻어두지 말고 부지런히 잘 사용하여 열배, 다섯 배, 두 배를 남겨 칭찬 받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