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1일(주일), 설교 : 주님의 가르침, 감당하기 어려운 요구인가?

성경 : 마태복음 5 : 38-42 /  2016.12.11.

제가 30년 넘게 목회하면서 아직도 설교하지 못한 성경이 아주 많습니다. 오늘 택한 본문 역시 난생 처음으로 택한 본문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전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전해야 하겠다고 확신한 것은 5:1절의 말씀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우리는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를 산상보훈이라 합니다. 산상보훈의 말씀은 지키기가 쉽지 않은 내용이 많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지키기 어려운 산상보훈의 말씀을 누구에게 전하였습니까? “무리들”입니다. 여기 “무리”는 일반대중으로, 주님을 잘 모르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말씀들을 무리들에게 요구 하셨을까?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오늘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을 택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언 듯 보기에“불편한 요구이며, 감당하기 어려운 요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제자와 무리들에게 “불편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요구”를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왼쪽 뺨도 돌려대라.”(보복하지 말라.)는 요구 ?

주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보복할 권리가 있는가?, 우리가 보복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으로, “보복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39)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나의 오른뺨을 때리면, 나는 그 사람에게 “왼쪽 뺨을 때리라고 뺨을 돌리라.”는 교훈이 아닙니다. 이것은 반항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상대방의 뺨을 때릴 경우는 오른뺨이 아닌, 왼뺨을 때리게 됩니다. 그런데 오른손잡이가 상대의 오른뺨을 때렸다면 그것은 분명 손등으로 때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경우는 세게 칠 수 없으며 때리기도 불편합니다. 내가 상대로부터 왼뺨을 맞았다는 것은 내가 상대에게 복수할 만큼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라는 것을 말합니다. “왼뺨도 돌려대라”는 것은 “상대로부터 사소한 피해는 물론, 그보다 더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해도 복수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에게는 복수심이 있습니다. 가령 내가 억울하게 뺨을 한 대 맞았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어떤 마음이 생깁니까? 당장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한 대 맞았는데, 보복을 할 때는 두 대, 세대, 아니 그 이상 때리고 싶어지고,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작은 싸움이 큰 싸움으로 비화되곤 합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구약에 다음과 같은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38절의 말씀은 (출21:23-24)말씀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이것을 신학적으로 동해 보상법이라 합니다.

 

“내가 손해를 당은 만큼 해를 가하는 율법”이란 뜻이지만, 복수심으로 보복하지 않도록 주신 율법으로, “내가 남의 팔”을 부러뜨리는 순간 “내 팔”도 부러져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남의 팔은 곧 내 팔”이라고 인식하게 한 교훈입니다. 즉, 남의 아픔은 곧 내 아픔이며, 남의 입장이 내 입장이라고 생각되면, 상대에게 해를 가할 수 없습니다.

 

사소한 일에 쉽게 화를 내는 이유에 대해 서울성모병원 채정호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랫사람에게 화를 내도 괜찮으며, 아래 사람은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한국의 잘못된 문화 탓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회를 내는 것은 습관이며, 피해의식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 연구팀이 연구한 내용에 따르면,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심혈관 질환 위험이 2-3배 높다.”라고 말합니다. 바울은(롬12:19)“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고 하였습니다.

  1. 겉옷까지 주며, 십리를 동행하라.”(타인의 짐을 서로지라.)는 요구 ?

(40절)“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예수님 당시만 해도 옷이 매우 귀할 때였습니다. 유대인에게 겉옷은 잠을 잘 때 덮고 자는 담요와 이불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율법에 “겉옷을 전당 잡더라도 해지기 전에는 반드시 그 주인에게 돌려주라.”했습니다. 반면 “속옷”은 “겉옷”에 비해 비교적 값이 적게 나가는 옷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값이 별로 나가지 않는 속옷을 빼앗으려고 고소를 하였습니다. 이럴 경우 맞고소하여 “겉옷까지 빼앗기는 사태가 오기 전에 먼저 겉옷까지 주어 버리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잘잘 못을 가리지 말라는 교훈이 아니라, “성도가 법적인 시비를 당해 고통을 받고, 부당한 재판으로 빼앗기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낫다.”는 교훈입니다.

 

속옷즉 사소한 일로, 더 큰 시비와 더 큰 문제에 휘말리지 말 것을 말합니다. 더 적극적인 교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과 은혜, 물질이 시비꺼리가 되지 말 것을 교훈한 것입니다.

 

(41)“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이것은 로마시대에 만든 규정으로, 로마 군인들이 민간인을 징용하여 군수물자를 운반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 때에 오리 정도는 갈 수 있도록 정했습니다. 여기 오리(밀리오)는, 1000보에 해당되는 거리를 말합니다. 그런데 열심당원들은 이런 로마의 행위에 대하여 반발하며, 저항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러한 로마의 정책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일을 당할 때에 결코 분을 품거나 대항하지 말 것을 교훈한 것입니다. 이런 관습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로마병사들은 구레네 시몬에게 주님의 십자가를 강제로 운반하도록 한 것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은 타인으로부터 강제적인 요구를 당할 때, 기꺼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장이나 회사에서 부당한 요구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강제적으로 억압당하는 경우도 있고, 부당하게 취급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갑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부당하게 권리와 인권을 침해를 당하므로, 분쟁을 일으키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갈6:2)“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 여기 짐은 “바로스”란 말로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져야 하는 짐이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짐이 있습니다. “서로”란 지금 내가 관계하고 있는 사람의 짐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나누어야 합니까? 첫째 슬픔을 나누어야 합니다.(롬12: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우리말에도 “기쁨을 나누면 배로 늘어나고, 슬픔을 나누면 배로 줄어든다.” 둘째, 좋은 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갈6:6)“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셋째, 기도를 나누어야 합니다. (욥42:10)“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주님은 우리가 져야 할 짐을 대신 지셨습니다. (사53: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주님께서 우리의 짐을 져 주셨기에 우리 또한 타인의 짐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내가 공동체에서 져야할 짐이 무엇인가를 찾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최소한의 요구를 거절하지 말라.”(필요를 거절하지 말라.)는 요구 ?

(42절)“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우리가 온갖 고생하며 때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얻은 대가를 어찌 타인이 요구하는 대로 주라고 하는가? 이렇게 생각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요구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무한정 돈을 빌려 달라는 대로 주라는 교훈이 아닙니다. 더구나 돈이나 물질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본문 구한다.”, “꾸고자라는 동사는 그가 필요한 것을 구할 때”, “그가 꼭 필요한 것을 요구할 때라는 뜻입니다.

 

누가는 (눅4:25-27)에서, “엘리야 시대 3년6개월 기근 중에, 엘리야는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단 한 사람, 시돈 땅, 사렙다 과부 한 사람에게만 필요를 제공해 주었으며, 엘리사 시대, 엘리사는 그 많은 문둥병자 가운데, 오직 나아만 한 사람만 고쳐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리들을 보실 때마다“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최소한의 사람에게 최대의 은혜를 베 푸셨습니다.

 

사도행전 3장,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서 나면서 앉은뱅이가 구걸하였을 때, 베드로와 요한은 (행3:6)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앉은뱅이는 “은과 금”을 요구하였지만, 베드로 요한은 “은과 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공급하였습니다.

 

(삼상30:24-25)다윗이 시글락을 공격할 때에 600명 중 400명만이 싸워 전리품을 획득했습니다. 그런데 그 전리품을 나눌 때는 전장에 나간 사람이나, 함께 동참하지 못한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같이 분배하도록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일생에 가장 빛날 때는 100세에 아들을 얻었을 때가 아니라, 이삭을 모리아 산에 번제물로 바칠 때입니다.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에게 물 한 그릇을 베풀므로 이삭의 아내가 되었고, 사마리아 여인은 주님에게 냉수 한 그릇을 베풀므로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감당하기 어렵고, 불편한 요구를 하신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무관심하고 외면해야 되는 말씀만 아닙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베 풀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요구, “사소한 일로 인해 보복하지 말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짐을 지라.”고 하신 말씀, 그리고 “최소한의 필요를 외면하지 말라”고 하신 요구는 우리가 외면해야 할 정도로 무리한 요구는 아닙니다. (마11:29-30)“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요구, 불편한 요구라고 단정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실행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