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6일 설교 :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성경 : 미가 4 : 1- 4  /  제목 :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  2016.10.16

가을의 상징은 열매입니다. 가을의 기쁨과 환희는 열매에 있습니다. 꽃의 아름다움이나 잎의 무성함도 좋지만, 그 보다 소중한 것은 열매입니다. 농부가 1년 동안 뙤약볕에서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하는 것도 모두 열매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실 때 시장하셨습니다. 길가에 있는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으려고 가까이 가셨지만, 잎사귀밖에 없는 것을 보시고 주님은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시자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죽고 말았습니다. 열매가 없는 것은 저주 받은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의 삶을 포도와 무화과나무에 비유했습니다.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 우리의 삶을 두 나무에 비유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꽃을 보기 위해 심는 나무가 아니라 열매입니다. 성경이 사람을 두 나무에 비유했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열매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또한 노동을 통해서, 우리 인생이 참된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혹 여러분들이 직업 현장에서, 일터에서, 공부를 하면서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되지?” 의심이 되는 분들이 계신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바른 노동관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우리가 땀 흘리는 수고가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인지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노동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동참하는 일이다.

요한복음 15장에 “나는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너희는 가지라” 고 하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이시며, 우리들 또한 일하길 원하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노동을 통해서 삶에 필요한 힘을 얻고, 공동체를 이루게 하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긴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요5:17)“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는 말씀과 같이 사람은 일하기 위하여 태어났다 해도 과장된 말이 아닙니다. 하루 24시간 중 8시간은 잠으로 시간을 보내며, 8시간은 일, 그리고 8시간은 일을 준비하기 위해 시간을 보냅니다. 인생의 삶을 보더라도 어릴 때와 노쇠할 때를 제외하고는 일이 삶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이란 말이 보여주듯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스페인어 “트라바호”란 말은 “세 마리의 말을 한데 묶는 것”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독일어의 “아르바이트”란 말도 “밭을 가는 것”이란 뜻으로, 일이 힘들고 괴로운 것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일이 괴롭다는 것은 우리의 삶 자체가 괴롭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인간이 범죄 함으로 일이 과중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일 자체가 저주라고 말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인간이 범죄 한 이후에도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노동을 명령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살후3:10)“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노동의 장려와 노동의 사명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고전10:31)“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현대는 직업관이나 노동관의 가치가 많이 변질된 것이 사실입니다. 대영 백과사전에 “직업이란 생계를 세우기 위한 일, 즉 어떤 목적을 위하여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일”이라 했으며, “노동이란 정신이나 몸으로 활동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혹 직업이 없을 수 있지만, 노동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돈과 관련 된 것만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며, 집안일과 아이들 뒷바라지하는 주부가 하는 일이 돈과 관련 없다고 해서 놀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내가 비록 작은 일이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참여하기 것이기에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내가 한 아이를 양육하는 일은 하나님 나라의 일꾼을 키우는 의미를 지니며, 그 아이를 통해서 펼쳐질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는 일이 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요게벳이 모세를 키운 것과 같은 심정으로 자녀를 양육해야 합니다.

 

  1. 노동은 풍요를 가져오며, 이웃에게 봉사하는 행위이다.

우리 가운데, 농사를 지은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 농부의 수고로 말미암아 매일같이 양식과 채소와 과일을 공급받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은 적이 전혀 없지만, 어부의 수고로 언제든지 신선한 생선을 먹을 수 있습니다. 노동은 직접적으로 우리의 삶에 풍요를 공급해 주지만, 동시에 그 노동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줍니다.

 

우리가 스페인에 살면서 스페인에 공헌한 것은 별로 없지만, 스페인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공급해 주고 있습니다. 의료 혜택, 치안, 문화혜택, 공공 서비스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 사람의 일은 한다는 것은 이미 자신의 유익을 넘어 타인에게 봉사하는 결과를 주고 있는 셈이 됩니다.

 

예수님은 열매는 관계를 통해서 맺는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요15: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포도나무와 줄기, 줄기와 가지는 서로 상관되어 있습니다. 열매는 서로 연결될 때 맺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서로 연결되어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나는 독립되어 있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다양한 노동과 일을 통해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노동은 단순한 우리 개인적인 생계유지의 수단만이 아닌 이웃을 위한 봉사란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야곱의 가족들은 요셉의 초청으로 애굽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애굽 바로 왕이 이민 온 요셉의 형제들에게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라고 물었을 때 그들은(창47:3)“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라고 답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은(창46:34)당시 애굽인들이 목축업을 가증히 여겼지만 자신과 조상들의 직업을 스스럼없이 목축업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자신의 직업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당당했습니다.

 

여러분! 누가 “무슨 일을 하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자신의 직업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긋지긋하다, 이제 그만 하고 싶다.”라고 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 참으로 나에게 주신 직업과 일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합니까?

밥하고 청소하는 집안일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이게 무슨 복이냐고 반문하고 싶지 않습니까?

(전3:13)“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알았도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뭐 이런 선물을 주느냐”라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외국 땅에서 살고 있기에 우리 마음에 딱 맞는 일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비록 어렵고 힘들지만,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꺼려하는 일을 찾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은 결코 수치가 아니며, 어떤 일도 천하거나 하잘 것 없는 일은 없습니다.

중국“리즈민”이란 기업가가 쓴 “모든 기업은 개미에게 배워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개미에게는 거부하기 어려운 보물이 있다. 첫째, 개미는 서로 정보교환 한다. 둘째, 개미는 서로 신뢰한다. 셋째, 개미는 폭넓게 권한을 위임한다. 넷째, 개미들은 목적을 가지고 일한다. 모든 사람이 이와 같은 정신으로 일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1. 노동과 쉼을 통해 인생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은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사람에게 가장 큰 기쁨과 만족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5절)“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는다.라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자신이 일할 수 있는 일터,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지금부터 30년 전만 해도 직장이 이토록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미가 선지자는 지금부터 2500년 전에 우리에게 직장과 일터가 소중하다는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사람이 일할 수 있는 직장과 일터가 있을 때에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지금보다 이 말씀이 실감난 적이 없습니다. 지금 세계 곳곳마다 “나에게 일을 달라”아우성치고 있습니다. 일하고 싶어 단식투쟁까지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을 마치신 후에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기에 좋았다.”란 일을 마치고 쉴 때 주어지는 성취감을 말합니다. 사람은 쉼을 통해서 성취감과 만족감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현대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 중에 하나는 “피곤하다”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피곤”이란 “피가 곤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피가 곤한 것은 비단 직장인만이 아닙니다. 공부하는 학생, 어린 아이들까지도 피곤하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위대한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아무 일도 하지 말라” 엿새 동안 일하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안식하는 것을 무시하기 싶습니다. 이것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어야지 불균형 될 때 창조의 질서는 깨지고 맙니다.

 

하나님은 안식일과 안식년이란 제도를 통해 사람과 땅을 보존하도록 하셨습니다. 안식은 창조의 결론이며 완성입니다. 일과 쉼, 노동과 안식은 분리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열심히 일도 해야 하지만 또한 안식해야 합니다. 땅도 쉬어야 하고, 사람도 안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풍요를 위해 노동을 주셨습니다. 노동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동참하는 사역이며, 우리 삶의 풍요와 이웃에게 봉사하는 것이며, 그리고 삶의 성취감을 안겨 주는 하나님의 축복이며,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직장, 일터가 곧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축복의 현장임을 믿고, 땀 흘려 수고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