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요한복음 1 : 43 – 47
제목 : 빌립과 나다나엘, 베드로의 믿음을 점검한다.
- 1.14
본문은 주님이 빌립과 나다나엘을 제자로 부르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나다나엘을 “바돌로매”로 기록하고 있으며, 나다나엘은 빌립의 전도를 받아 주님 제자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빌립과 나다나엘, 베드로의 믿음을 점검한다.”란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증주의 믿음을 가진 빌립
실증주의 철학이란 것이 있습니다. “경험과 실험으로 검증할 수 있는 것만이 확실한 지식”으로 인정하는 하는 사상입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콩트”라는 철학자에 의해서 구체화 되었습니다.
신의 섭리라든가 초월적이고, 신학적인 사상을 배격하는 인본주의 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문 빌립이 바로 실증주의 철학에 기초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오병이어 기적을 베 푸실 때 제자들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게 하겠느냐?”물었을 때 빌립은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빌립이 오천 명을 먹이려 할 때 200 데나리온의 돈이 필요하다고 계산한 것이 잘못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계산적이다.”라는 말과 “저 사람은 계산을 잘한다.”란 말은 서로 다릅니다. 전자는 인색하거나 이기적인 뜻을 담고 있다면, 후자는 “신중하다.”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빌립은 무리들의 배고픔 상황을 실제가 아닌, 이론적으로 해결하려 했습니다. 마치, “내가 복권에 당첨이 되면 당신을 도와주고, 구제도 하겠다.”라는 논리와 같습니다. 빌립이 계산한 것이 잘못이 아니라, 빌립의 계산이 공허하고 이론적이었다는 점에서 대안이 될 수 없었습니다.
계산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공허할 때 소용이 없습니다. 이보다 빌립의 약점은 (요14:8)“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하나님은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빌립은 한 마디로, 계산을 하고, 하나님마저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야 믿겠다는 “실증주의 철학에 기초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나, 부활과 기적들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갖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눈으로 봄으로 이해하고 믿으려 하였습니다.
진리는 경험이나 눈으로 본다고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계산을 잘 해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가치를 돈으로 계산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것이 없습니다. 주님이 빌립에게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고 하신 말씀을 확신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 편견을 가진 나다나엘의 믿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편견”입니다. “편견”이란 “어떤 근거나 확정도 없이 치우친 생각이나 선입견”을 말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의대의 한 교수님이 은퇴를 앞두고 전문의들에게 마지막 강의 시간에 질문 하나를 던졌습니다.
어떤 부모가 첫 자녀는 소경, 둘째는 병으로 죽었고, 셋째는 귀머거리, 넷째는 결핵을 앓는 중 다섯째 아이를 임신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모든 학생들은 유산시켜야 한다 했습니다. 그러자 교수는 여러분은 지금 베토벤을 죽였다고 하였습니다. 다섯 번째가 바로 악성 베토벤입니다. 교수는 여러분이 의학적 지식을 가졌다고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마지막 강의를 마쳤습니다.
빌립이 훌륭한 것은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 곧바로 나다나엘에 찾아간 점입니다. (45절)“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그 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하자 나다나엘은 (46절)“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시골 나사렛 출신, 예수에게 기대할 것이 있겠느냐?” 이보다 사람을 무시하는 말이 없습니다. 한 마디로 편견이었습니다. 모로코 사람에게 소매치기 당한 사람이 “모로코 사람은 모두 도둑”이라고 하는 것보다 편견은 없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46절)“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하였습니다.
오늘날 생각보다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하여 편견과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에게 방어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선생님의 생각이 기독교의 전부는 아닙니다. 직접 교회에 와서 한 번 들어 보세요!”라고 하면 됩니다.
예수님의 고향사람들 또한 예수님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마13:53)“이 사람의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그가 배운 적이 없는데 어떻게 저런 지식을 가졌느냐?”라며 예수님의 교훈과 가르침에 대해 부정하며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편견을 가진 나다나엘에게 (47절)“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주님의 칭찬으로, 나다나엘은 신실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좋은 친구란 예수 안에서 맺어진 친구입니다. 믿음 안에서 좋은 친구를 만들고, 사귈 수 있길 소망합니다.
- 성질이 급하고, 말이 먼저인 베드로의 믿음
베드로의 최대 장점은 열정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불타는 열정이 있었지만,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좌충우돌하여 자주 실수를 저 질러기도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기려고 할 때에 베드로는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라고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하자 “주여 내 발 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셨을 때, 다른 제자들은 유령인 줄 알고 벌벌 떨었지만 베드로 혼자 배에서 뛰어내렸습니다.
뒷일을 생각지 않고 그냥 뛰어 내렸는데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물에 빠져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명색이 어부인데 수영도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깨어 기도 하라.”고 했을 때 베드로는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자만했습니다.
여러분! 나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나에게 부족하거나 약점이 무엇입니까? 누구에게나 약점이 있습니다. 삭개오는 키가 작은 약점이 있었고, 모세는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었고, 바울은 신체적인 질병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꿀 수 있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빌립은 계산적이었고, 실증주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나다나엘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후, 신실한 주님의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고전1:27)“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하는 것을 가지고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과 약점까지 사용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하시고, 우리에게 맡겨주신 직분을 잘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