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르의 빈물, 마라의 쓴물, 엘림의 샘물

성경 : 출애굽기 15 : 22-27

제목 : 수르의 빈물, 마라의 쓴물, 엘림의 샘물

  1. 7.23

지금 한국과 세계 도처에서 물난리를 겪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 광야애서 3일 동안 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마라에서 물을 얻었지만, 쓴물로 마실 수 없었으며, 엘림에서 단물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수르의 빈물, 마라의 쓴 물, 엘림의 단물”이란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수르 광야에서 물을 얻지 못하다.

요즘 같은 더운 여름철에는 보통 하루에 3리터 정도 물을 마셔야 한다고 합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넌 후, 3일 동안 뜨겁고 메마른 “수르 광야”를 행군하면서 물 한 방울을 마시지 못했습니다. 아이와 노인도 있었는데, 이것은 “죽음 직전의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22절)“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백성들을 “수르광야”로 인도하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백성을 메마르고 물이 없는 수르광야로 통과하게 하셨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백성들을 물이 없는, 사막 가운데로 인도하셨습니까? 목말라 죽이기 위해서입니까? 죽이려고 했다면, 애굽에서나 홍해를 건널 때 끝장 낼 수 있었습니다. (25절)“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사” 여기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광야미드바르로 명사이며, “말씀다바르로 동사입니다. “광야”와 “말씀”은 같은 단어입니다. 즉 “광야에서 유일한 해답은 말씀”이란 뜻입니다. 주님이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 (마4:4)“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 40년 동안 백성에게 두 가지, 율법과 성막을 주셨습니다. 행진할 땐 언약궤가 맨 앞에 있어, 모든 백성이 뒤를 따랐고, 광야에 머물 땐 성막을 중심으로 백성이 포진하였습니다. 언약궤는 이동할 때, 길 위의 성전이었다면, 성막은 백성들이 머물 때의 성전이었습니다.

여러분! 비록 저와 여러분이 광야와 같은 메마르고 힘겨운 삶을 살더라도,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산다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행진”이지만, 세상에서 목표를 이루고 성공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는 인생은 “방황”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광야의 길을 홀로 걷는다고 생각하십니까? 비록 지금 우리가 광야와 같은 길을 걷는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 때, 하나님이 우리의 길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시119:105)“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확신하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1. 마라에서 쓴 물을 단물로 고치다.

이스라엘은 3일후 “마라”라는 곳에 도착하여 고대하던 물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나 “마라”란 “쓰다. 괴롭다”란 뜻과 같이 아쉽게도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었습니다. 기진맥진한 백성들은 물을 마시지 못하자 “우리를 죽일 참인가?” 이곳저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백성들은 불과 3일 전만해도 홍해의 기적을 맛보며, 기쁨과 감격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지만, 불과 3일 동안 물을 마시지 못하자,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은 온데간데없고, 단순에 불평과 원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 또한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평소 하나님을 찬양하지만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나면, 낙심하며,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에 비해 (25절)“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모세라고 힘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렇지만 모세는 고난 속에서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 결과 (25절)“그에게 한 나무 가지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여기에 던진 나무가 무엇입니까?

(벧전2:24)“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는 살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치료하기 위해 한 나무를 세우셨는데, 바로 십자가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로 우리의 고통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후 (룻1:20)“나를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하나님이 나를 괴롭게 했다.”라고 원망하였지만, 하나님은 나오미를 치료하고 회복해 주셨습니다. 나오미는 다윗의 증조모가 되었고, 예수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또한 세상을 살면서 때때로 마라를 만나게 됩니다. 받아들이기 힘든 인생의 쓴 맛을 볼 때 어떻게 믿음으로 반응해야 합니까? (사53:5)“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도다.”

이스라엘과 나오미를 고치고 치료하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연약함과 질병을 고치고 치료해 주셨을 뿐 아니라,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26절)“나는 너희를 치료하시는 여호와임이라.” 저와 여러분을 회복하고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심을 확신하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1. 엘림에서 샘물을 마시며 장막을 치다.

이스라엘은 3일 동안 수르광야와 마라를 지나면서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엘림에 도착하였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마라에서 엘림까지는 불과 10km로, 아주 가까운 곳입니다. (27절)“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거루가 있는지라.”

“엘림”이란 “큰 나무들”이란 뜻이며, 성경에 “종려나무”가 있는 곳은 물이 풍부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막에서 물이 있고, 나무가 있는 곳을 “오아시스”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엘림에서 장막을 치며, 샘물을 마셨습니다. 3일 전의 상황과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비로소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이 왜 홍해를 건너 “수르 광야”와 “마라의 쓴 물”을 통과하게 하셨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수르 광야와 마라의 쓴물을 통과하게 하신 이유를 알았을 때, “우리가 참으로 성급했구나!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지 못했구나!”라는 것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27)“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이스라엘은 광야와 쓴 마라를 지나 비로소 12샘물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 엘림에 장막을 쳤습니다. 우리 또한 고난과 긴 터널을 지날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광야와 같은 길로 인도하시는가? 우리의 길을 자꾸 막으시는가?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면서 광야를 만나고, 쓴 마라를 만날 때, 하나님이 샘물이 있고, 풍성한 열매가 있는 곳으로 인도하심을 의심하지 않고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의 길에도 “수르광야”가 있기에 길을 잃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길을 잃지 않도록 나침반과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가는 인생길에는 “쓴 마라”가 있지만, 그 때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광야와 쓴 마라의 길 뒤에 “오아시스”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장막을 치므로, 목마르지 않고 풍성한 삶을 누리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