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를 통해 주신 메시지

성경 : 마가복음 11 : 1-10

제목 : 나귀를 통해 주신 메시지

  1. 4. 2(종려주일)

오늘은 주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주일이며, 금주는 고난주간입니다. 주님께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사건은 4복음서 모두 상세하게 기록하어 있습니다.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나귀를 통해 주신 메시지”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주님이 우리의 죄 짐을 풀어주신 분이십니다.

평소 주님은 자신을 잘 알리지 않았으며, 기적을 베푼 후에도 산과 광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공생애 마지막 한 주간에는 공개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것도 말이 아닌, 나귀를 타고 들어가셨습니다. 무슨 뜻이 담겨져 있습니까?

먼저, 주님은 두 제자에게 매여 있는 “나귀를 풀어 끌고 오느라” 하셨습니다. “풀어”란 “멍에를 벗기다”란 말로, “자유와 해방을 준다.”란 뜻입니다. 성경에서 나귀는 짐을 나르며, 밭을 갈고, 연자 맷돌을 돌려 곡식을 찧는 등, 참으로 힘들고 고된 일을 하는 짐승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노예처럼 일만 하는 나귀를 풀어주신 것은, 저와 여러분의 짐과 특히 죄의 짐을 풀어 주신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사53:6)“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여기“담당”과 “풀어”는 반대로 우리에게 있는 죄의 짐을 풀어 주님에게 옮겼다는 뜻입니다.

또한 주님은 직접 십자가상에서(눅23:34)“아버지여 저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져야 하는 짐이 있습니다. 그 많은 짐들 가운데 죄만큼 무거운 짐이 없습니다. 다윗은(시38:4)“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죄는 모든 인간을 사망에 이르게 하였고,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였습니다. 죄는 우리 인생을 황폐하게 할뿐 아니라, 무엇보다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기쁨과 사랑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게 했습니다. 죄를 가지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은 영광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과 특히 죄의 짐을 풀어주기 위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11: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신 것입니다.

군중들은 나귀 타고 입성하신 이유를 모른 채 “호산나 찬송하리로다.”라고 했지만, 주님은 저와 여러분이 지고 있는 죄의 짐을 풀어, 담당하시기 위해 입성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죄짐을 풀어 대신 죄의 짐을 져 주신 주님을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찬송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1. 주님이 우리의 비천함을 회복해 주신 분이십니다.

이솝우화에서 나귀는 “약싹 빠르고 꾀 많은 동물로”, 만화영화 슈렉에서 동키는 “우스꽝스럽고, 멍청하고, 고집 센” 캐릭터로 나옵니다. 미국에서 수나귀를 “잭애스” 라고 하는데 “바보 멍청이”란 욕입니다. 지혜자조차 나귀를 미련한 자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잠26:3)“나귀에게는 재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

나귀는 옛날이나 지금도 어느 동물보다 일을 많이 하면서 욕을 먹는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7절)“예수께서 타시니” 어떤 동물도 타시지 않았던 주님이 유일하게 나귀를 타셨습니다.

밭 갈고, 짐 실고, 연자 맷돌을 돌려 곡식을 찧는 나귀가 최고로 가치 있게 사용되는 순간입니다. 나귀는 비천한 존재였으나 주님으로 인해 가장 가치 있게 사용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42:2)“인간을 상한 갈대”라고 하였습니다. 갈대는 농사가 안 되는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저주받은 식물입니다. 베드로사도는 우리 인생을 “풀의 꽃”, 야고보는(4:13)“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이것이 인간의 참 모습입니다.

전도자는 (전2:23)“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시8:5)“사람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했으며, 주님은 “온 천하보다 귀하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저와 여러분의 신분을 회복해 주심으로“구원받은 자, 하나님의 자녀 성도”가 되었습니다.

내가 거룩하기 살기 때문에 성도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구별해 주셨기 때문에 성도가 된 것입니다.

주님은 남편 다섯을 둔 사마리아 여인의 신분을 회복해 주셨으며, 돈의 종이었던 삭개오 또한 유익한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린 강도조차 변화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사람의 근본을 바꾸고, 삶의 질과 양을 변화시키며 회복해 주시는 분입니다.

(벧전2:9)“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 왕 같은 존재로 살아가도록 했습니다. 비천한 존재가 아닌 회복되고 변화 받은 자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1. 주님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심을 알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귀를 풀어 오라”고 하신 말씀은 오늘날 매일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사람에게 차를 빌려달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이 “주가 쓰시겠다.”라고 하였을 때 나귀 주인은 (6절)“허락하는지라”고 했습니다.

혹 두 제자는 잘못 이해하여 “빼앗아 가져 오너라”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나귀를 빼앗아 오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주가 쓰시겠다.”란 말씀은“나귀의 주인이 쓰시겠다.”란 뜻입니다. 즉, 나귀 주인은 자신이 주인이 아니고, 나귀 원 주인이 주님이심을 알고 허락했다는 말입니다.

(사1:3)“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한다”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처럼 오늘날 많은 사람들 또한 “인생과 만물의 주인”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나의 인생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언젠가 한국에 어떤 가수가 “내 인생은 나의 것”이란 노래를 불러서 히트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마다 자기 인생이 자기 것인 것처럼 살아가지만 인생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내 것이라면 내 맘대로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내 마음대로 안되는 게 인생입니다.

세상에 있는 것 모든 것 또한 나의 소유가 아니며, 잠시, 잠깐 위탁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법도 사람이 죽으면, 자연적으로 소유권이 이양되거나 소멸됩니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사람에게 소유권을 넘겨준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맡은 “청지기”일 뿐입니다.

(롬14:7-8)“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고백했습니다.

주님이 나귀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셨습니까? 주님이 우리 죄짐을 풀어 담당하셨을 뿐 아니라, 비천했던 우리를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 주셨으며, 주님이 인생의 주인 되심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높여, 자녀로 삼아주신 주님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고백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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