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과 교회의 3가지 공통점

성경 : 요한복음 4 : 6-10

제목 : 우물과 교회의 3가지 공통점

  1. 2.26

성경에 우물에 대한 기록이 50차례 이상 나오며 우물은 단순히 물을 긷는 곳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물에서 사람을 만났고, 배우자와 일터를 만나고, 하나님을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 “우물과 교회의 3가지 공통점”이란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물과 교회는 주님을 만나는 좋은 장소입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만, 과거엔 우물에 가면, 마을 대부분의 사람을 만났습니다. 심지어 만나고 싶지 않는 사람까지 만났습니다. 만나고 싶지 않다고 우물에 가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우물에 가면 동네에 소식들, 돌잔치, 결혼식 회갑 등 동네 대부분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교육학에서 동굴증후군이란 이론이 있는데, “집밖으로 나가 타인을 만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기피하는 증상을 말합니다. 본문, 사마리아 여인이 전형적인 “동굴증후군”에 속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6절)“여섯시쯤” 우물에 물을 기르러 나왔습니다.

이는 당시 시간으로 정오로, 사마리아여인은 보통 사람들이 날씨가 더운 정오, 물을 길지 않는 시간에 살짝 나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9절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유대사회는 이방인, 남자와 여자가 쉽게 만날 수 없었기에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기 위해 우물로 가신 것입니다.

우물은 누구나 올 수 있고, 만날 수 있었기에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은 만나기 위해 우물로 가신 것입니다. 사마리아여인은 비록 남편을 다섯이나 둔 부도덕한 삶을 살았지만, 주님을 만남으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요4:42)“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고백하였습니다.

오늘날은 교회를 통해 많은 사람과 주님을 만납니다. 어린 시절, 미션 스쿨, 군대, 친구를 통해 교회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교회를 통해 배우자와 친구, 그리고 교회를 통해 주님을 만났습니다. 저도 교회를 통해 집사람과 주님을 만났습니다.

믿음의 사람, 야곱이 아내, 라헬을 만난 곳도 우물이었으며, 모세도 아내 십보라를 우물에서 만났습니다. 사래의 종 하갈은 우물에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만났으며, 본문 사마리아 여인도 우물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우리 사랑의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교회를 통해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도록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한번이라도 교회로 인도할 이유입니다. 사랑의 교회를 통해 이웃과 친구, 배우자를 만나고, 일터를 만나고,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힘쓰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1. 우물과 교회는 마을의 중심에 있습니다.

본문에 기록된 우물은 야곱의 아버지, 이삭이 판 우물로, 이삭은 기원전 2,200년대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여기 우물은 예수님 당시에 2,000년 넘었다는 말입니다. 사마리아 수가 지역을 우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 한국에서도 우물은 마을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오늘날 유럽을 보면, 보통 도시의 중심에는 교회당이 있습니다. 교회당이 있는 곳이 도시의 중심이라고 보아도 그리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당이 있는 바예까스 또한 마을 중심에 교회당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것은 삶의 중심이 “교회”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애굽한 백성들이 광야를 행진할 때와 머물 때 아주 중요한 원칙 하나가 있었습니다. 행진할 때는 항상 언약궤가 앞쪽에 있었고, 백성들은 그 뒤를 따랐습니다. 반면, 백성들이 광야에 머물 때는 성막을 중심으로 12지파들이 동서남북으로 천막을 치고 거주하였습니다.

출애굽기와 민수기에서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행진하고 머물렀던 횟수가 무려 42회나 됩니다. 성막위에 있는 구름이 떠오르면, 텐트를 걷고 행진하였으며, 성막 위에 구름이 멈추면 행진을 멈추고 성막을 중심으로 천막을 쳤습니다. 이것은 성막 중심의 신앙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의 삶이 광야와 같을지라도 우리의 인생을 성막과 함께 머물고, 출발하면 “전진”이지만 목표를 달성하고,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홀로 인생을 가는 것은 “방황”입니다. 우리에게 전진만 있는 것이 아니고, 멈춤도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와 함께 전진하며, 머무는가? 중요합니다.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24절)“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예배자의 삶을 살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세상 향락과 육체적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우물을 중심하여 생활하듯이, 영적인 삶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라마리아 여인이 처음 세상을 따라 살았지만, 주님을 만 후,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살았던 것처럼, 하나님 중심,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사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1. 우물과 교회는 생수를 공급합니다.

우물은 때로, 분쟁과 다툼의 장소로 비화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여러 차례 이삭의 우물을 막고 빼앗았습니다. 우물은 모든 생명체를 살릴 수 있는 생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물은 곧 생명을 의미합니다.

교회도 때로 분쟁과 다툼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물에 가면 다툼이 있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우물을 찾지 않는 사람이 없듯이, 교회 또한 만나고 싫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해서 기피할 수 없는 것은 생명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사12:3)“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주님 또한(14-15)“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시대마다 우물을 흙으로 메우듯, 기독교의 진리를 흙으로 메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난 세기 동안 기독교의 진리를 정면 도전한 사람 중 찰스 다윈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진화론을 주장하여 기독교의 진리를 흙으로 메운 블레셋 사람과 같은 사람입니다.

또한 공산주의를 만든 칼 마르크스입니다. 그는 무신론을 주장, 하나님이 없다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의 이단들입니다. 이단들은 오늘 날 교회를 약화시키기 위해서 혼합주의의 함정을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예수, 석가, 공자의 가르침을 동일한 진리라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는 진리”가 세상의 여러 찌꺼기들에 의해 덮여져 있기에, 우리 교회는 맑고 깨끗한 구원의 생수를 공급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교회는 주님을 만나기 가장 좋은 장소입니다. 우리가 한 사람이라도 교회로 인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중심한 신앙관을 가질 수 있길 바라며, 우리에게 맡긴 구원의 생명수를 잘 공급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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