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창세기 50:19-21
제목 : 인생의 문제를 푸는 3가지 열쇠
- 2.19
믿음의 사람, 요셉의 인생은 실타래와 같이 꼬여 있었지만, 복잡한 문제들을 3가지 열쇠를 통해 지혜롭게 잘 풀었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 “인생의 문제를 푸는 3가지 열쇠”란 말씀으로, 우리에게 직면한 문제들 또한 어떻게 풀 것인가를 생각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아야 인생의 문제가 풀립니다.
어떤 부모님이 두 자녀와 함께 스페인에 이사를 왔습니다. 큰 아이는 고등학생, 둘째는 중 1정도 되었습니다. 형은 학교에 등록하여 스페인어를 좀 배웠지만, 둘째는 아직 입학하지 못해 스페인어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두 형제는 T. V. 앞에서 함께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를 본 후, 동생은 영화 내용을 대부분을 이해했지만, 형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동생은 말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화면을 통해 전체 스토리를 중심으로 영화를 보며 이해했지만, 형은 스페인어 단어와 문법중심으로 이해하려고 신경 쓰다 보니, 전체 스토리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요셉의 인생은 참으로 험난했습니다. 어릴 때 어머니를 잃었고, 10명의 형제들로부터 미움 받아 웅덩이에 던져졌고, 17살 때는 종으로 팔렸습니다. 또한 성 추행범으로 몰려 감옥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요셉이 청소년 시절을 부분적으로 떼어서 본다면, 절망과 낙담뿐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레고”나 “퍼즐”조각들은 무엇인지 잘 알 수 없지만 전체를 맞추면 아주 멋진 그림이나 훌륭한 작품이 되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레고와 퍼즐같이 부분적으로 보면, 해석하기 어려울 때가 있지만, 인생전체를 보면, 아픔과 슬픔도, 고난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왕궁에서 생활한 40년만 떼어서 본다면,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또한 광야 40년만 떼어서 본다면, 그의 고백같이 “허송세월했다.”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120년의 생애 전체를 볼 때, 그의 삶이 참으로 위대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의 인생이 흑백 사진과 같이 어두운 시기입니까? 요셉과 같이 웅덩이 빠져 허덕이는 시기인지 모세와 같이 광야의 시기입니까? 인생에서 불행하고 암울했던 단면만을 떼어서 보면 실망할 수밖에 없겠지만, 전체를 보면 인생의 어두운 부분조차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진을 찍을 때 빛과 어두움이 공존하듯 우리인생도 빛과 어두움이 어우러져야 그려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아름답게 완성해 가시는 탁월한 화가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 있길 소망합니다.
-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확신할 때 인생의 문제가 풀립니다.
요셉의 삶은 한마디로 “악이 선으로 바꾸어진 삶”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20절)“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형제들이 요셉을 노예로 팔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지만, 하나님은 도리어 유익하게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이 자신을 종으로 팔아 이곳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20절)“하나님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다.”고 말했는데, 즉, “하나님이 7년 기근 가운데, 우리가족을 구원하기 위해 나를 이곳에 먼저 보내셨다.”라고 했습니다. 요셉이 이같은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확신하였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전화위복”“화가 변하여 복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 옷을 벗긴 채로 심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매를 맞고 옥에 갇히는 일은 환영받을 일이 아니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서 간수와 가족이 주님을 영접하였고, 빌립보교회 멤버가 되었습니다.
한국에 친구 장로님이 건축업으로 돈을 많이 벌였습니다. 그러다 IMF로 어려워 도망을 다닐 정도였습니다. 친구가 왔다고 식사대접을 하면서 제게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사업이 잘 될 때는 하나님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느끼며 산다.”했습니다.
바울은(롬8: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 합력”이란, 기쁜 일과 슬픈 일, 자랑스러운 일과 부끄러운 일 등, 모든 것들이 합해져서 유익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습니까? 꼭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낙심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신을 해하려 한 일에 대하여 “기근 가운데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보기에는 실패로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기회이며, 은혜일 수 있습니다.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낙망하지 말고,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확신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 사랑만이, 해결할 수 있음을 믿을 때 인생의 문제가 풀립니다.
예루살렘에 유대인들의 수난사를 재현해 놓은 “야드바셈”이란 박물관에 이런 글이 쓰여 있다고 합니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완전한 용서는 아니지만,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용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용서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제들의 허물을 모두 용서했습니다. 창세기 45장에서 50장을 보면, 요셉이 형제들의 잘못을 용서하는 마음이 구구절절이 묻어 있습니다. (21절)“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그들을 간곡히 위로하였더라.” 어떻게 가능합니까?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뚜렷한 차이점은 “죄 사함과 용서”입니다. 죄 사함과 용서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엡2:16)“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우리가 용서할 수 있는 이유와 배경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타인의 허물과 죄를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주님이 우리의 모든 잘못과 허물과 죄를 용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하신 것입니다.
요셉이 형제들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인품이 좋았기 때문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이 복잡하고 매듭이 풀리지 않고 자꾸 꼬입니까? 용서하지 못하고, 용서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용서하고 용서 받으면 매듭이 풀립니다.
인생의 문제는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아야 풀리며, 인생은 문제는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확신할 때, 그리고 사랑만이 해결할 수 있음을 믿을 때 풀립니다.
금주, 2월22일(수)부터 주님께서 우리의 허물과 죄를 위해 고난 받으시고 부활하신 사순절이 시작 됩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용서해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