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할 것인가? 전진할 것인가?

성경 : 왕하 6 : 1- 7

제목 : 안주할 것인가? 전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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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이솝우화의 내용과 흡사합니다. 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다 도끼가 물에 빠지자, 한 노인이 금, 은, 쇠도끼를 보이며 “어느 것이냐 했을 때, 쇠도끼입니다.”하자 노인은 나무꾼에게 모두 다 주었습니다. 오늘은 “안주할 것인가? 전진할 것인가?”란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전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엘리사시대, 온 나라가 방탕하고,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을 때, 수많은 젊은이들이 엘리사 선지자의 가르침을 받겠다는 몰려왔습니다. 이로 인해 수용할 공간이 부족하자 모든 생도들이 직접 산에 나무를 베어, 거주할 공간을 확보하겠다고 자원했습니다. 참으로 기특합니다.

엘리사의 생도들은 집을 지어본 경험도 전혀 없었고, 그렇다고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장비나 준비도 전혀 없었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현재 처한 상황을 모른 채하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즉, 물리적인 한계가 왔을 때 행동을 개시했습니다.

그에 비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조카 롯은 함께 동업을 하였지만, 그들은 가축들이 끊임없어 늘어나 초장이 턱없이 부족하고, 물도 부족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대처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런 일들이 벌어졌습니까?

(창13:6)“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13:7)“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두 사람은 물과 목초지가 부족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전혀 대처 못함으로 큰 분쟁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사람에게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제 나이도 많은데, 이대로가 좋아!”, “경기도 좋지 않은데 무슨 일을 시작해!”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즉 변화를 싫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동시에 전진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두 마음이 공존합니다.

엘리사의 생도들은 언제 결단했습니까? (1절)“우리가 거주하는 이곳이 좁으니”물리적으로 공간이 필요할 때였습니다. 배울 학생은 많은데, 시설이 턱없이 모자랐을 때, “우리가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생각하고 발 벗고 나선 것입니다.

사람은 대개 “욕구나 욕심”에 의해 행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필요에 의해 행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언제 행동해야 합니까? “욕심이 아닌 필요할 때”입니다. 우리는 “필요한 때”에 전진해야 합니다. 필요할 때 안주하지 말고, 전진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1. 전진할 때 자존심을 극복해야 합니다.

선지자의 생도들이 힘을 합쳤지만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집을 짓는데, 필요한 연장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끼를 빌려야 했습니다. (삼상13:22)“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으니라”당시 철 연장이 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끼를 빌리려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누가 누구에게 어떻게” 빌리느냐? 입니다.

제가 하기 싫은 것은 빌리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무엇을 빌리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철저히 빌려 쓰신 분이 계십니다. 우리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태어날 곳조차 없어 마구간을 빌려 쓰셨으며, 예루살렘 입성하실 때 나귀 또한 빌려 타셨습니다. 나귀 주인이 불편을 감수한 것도 그렇지만, 나귀를 빌려 타신 주님의 마음도 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뿐 아닙니다. 주님은 유월절 장소와 무덤까지 빌려 쓰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주님은 “염치가 없으신 분이셨다”라고 생각해서 안 됩니다. 주님이 모든 것을 빌려 쓰셨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빌려 쓸 때의 고민과 고통과 먼저 감내하셨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면서 빌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학생 때는 비가 올 때 우산을 빌려 썼으며, 시험 칠 때, 친구 노트를 빌려 썼습니다. 혹 사업과 형편이 어려워 돈도 빌려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가지고 온 것이 없기에 더욱 그러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무엇을 빌릴 때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질 빌릴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 혹 빌린 것이 있습니까? 무엇을 빌린다는 것은 자존심을 내려놓는 것은 물론, 책임감이 따르는 법입니다. 즉 무엇을 빌린다는 것은 곧 낮아짐을 배우는 기회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열왕기하 4, 엘리사 선지자는 빚진 생도의 한 아내에게 기적을 베푼 후 (왕하4:7)“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두 아들이 생활하라”고 했습니다. 생활비보다 우선적으로 빚부터 갚으라고 하였습니다. 빌린 사람의 고통, 빌린 것에 대한 부담감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빌린 자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시는 분이십니다. 동시에 (롬13:8)“사랑의 빚 외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 우리가 빌린 것을 꼭 갚겠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빌린 것이 있다면 꼭 갚을 수 있길 바라며, 도리어 빌려 줄 수 있길 소망합니다.

  1. 전진하려면, 잃어 버린 은사를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선지자의 생도는 도끼를 빌린 후 산에 나무를 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실수로 도끼를 물에 빠트리고 말았습니다. (5절)“외쳐 가로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너무 귀중한 것을 잃어버렸기에 ! !”라는 비명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모르긴 해도 생도가 도끼를 빌릴 때 주인이 “이보게! 젊은이! 이 도끼 얼마인지 알고 있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다네!” 그럼에도 생도는 “빌려만 주십시오! 틀림없이 반드시 돌려 드리겠습니다. 만약 잃어 버렸을 경우 반드시 변상해 드리겠습니다.” 약속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지자의 생도는 어렵게 빌려온 값비싼 도끼를 물에 빠트렸으니 집은 고사하고, 도끼 값을 물어 낼 생각을 하면, 꿈만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 선지자가 물에 빠진 도끼를 건져 줌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도끼는 어디에 사용되는 도구입니까? 나무도 하고, 장작도 패고, 집을 짓는데 사용됩니다. 반면 잘못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오래 전 휴전선 부근에서 북한군이 미군 병사를 도끼로 죽였던 소위 “도끼만행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남북한 전쟁이 일어 날 번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러 도구와 연장을 주셨는데, 성경은 이것을 “은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은사를 주셨는지 모르거나 잊어버린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은사를 주셨는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전진하려면 잃어 버린 은사를 다시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 계획한 일을 중단하거나 포기한 것이 있습니까? 언제 전진결단 합니까? “필요할 때가 곧 전진할 때”입니다. 전진하려면 자존심을 버려야 하지만, 겸손을 배울 수 있는 기회입니다. 전진하려면, 잃어 버린 은사를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주님은(눅9:62)“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고 하셨습니다. 금년도 계획한 일들, 믿음으로 전진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