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자의 3 가지 모습과 자세

성경 : 딤후 2 : 1- 6

제목 : 직분자의 3 가지 모습과 자세

  1. 1. 15

본문은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어떤 자세로 직분을 감당해야 할 것인가?” 3가지 비유로, 교훈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직분자의 3 가지 모습”이란 제목으로, 오늘 우리가 받은 직분을 어떤 자세로 감당해야 할 것인가?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충성하는 군인 같은 모습입니다.

대한민국은 국방의 의무가 있으며, 국가가 제정한 군인정신은 명예, 충성, 용기, 신념, 임전무퇴, 애국애족의 정신, 6가지가 있습니다. 6가지를 함축하면, 충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군인에게 요구되는 것이 많지만, 충성보다 우선되는 것이 없습니다.

바울은 직분을 감당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3절)“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라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 또한 “그리스도의 군사”로, 직분자에게 요구되는 것 또한 충성입니다. (고전4:2)“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충성이라 할 때 다음 3가지를 포함되어야 합니다.

먼저, 충성이란 맡은 일에 대해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목동이었을 때 양 한 마리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습니다. 충성이란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주부가 가정에서, 직장인이 직장에서, 교회에서 맡은 지군을 잘 감당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숫자가 적다고 낙심한 적이 있습니까? 주님은“천국은 겨자씨와 같다”라고 하셨습니다. 겨자씨의 시작은 아주 작지만 나중은 큰 나무와 같이 자랍니다.

주님은 두세 사람이 마음을 모으면, 어떤 일도 감당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적다고 낙심한 적이 있습니까? (마17:20)“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산을 명하여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50년 전에 시골 아이였던 제가 목사가 되어 지금 여러분들 앞에 서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솔로몬 왕은 시작은 좋았지만 끝까지 충성하지 못했습니다. (전6:8)“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다”라고 하였습니다. (계2:10)“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충성스럽게 직분을 감당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1. 상을 바라고 달리는 경주자의 모습입니다.

운동선수가 되어 그만 두는 순간까지 쉬지 않고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연습과 훈련”입니다. 연습과 훈련을 쉬는 순간 운동선수의 생명은 끝납니다. (5절)“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여기에서 말하는 경기는 마라톤을 뜻합니다.

신앙생활은 100M, 400M, 계주가 아닌 혼자서 완주해야 하는 마라톤과 같습니다. 신앙생활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잘 달렸다고 해서 아들과 딸이 잘 달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비록 못 달려도 아들과 딸이 잘 달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경기가 비슷하지만, 특히 마라톤은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잠과 체력과의 싸움, 게으름과의 싸움, 연습과 훈련의 싸움 등 많은 장애요소들을 극복해야 합니다. 마라톤은 상대 선수보다 먼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였던 황영조 선수는 훈련기간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 적이 있습니다. “훈련기간 중 내가 왜 마라톤 선수가 되었는지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그 많은 운동 중 왜 마라톤 선수가 되었는지? 죽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경주자가 끝까지 견디며 인내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딤전 3:13)“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아름다운 지위와 큰 담력” 이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직분은 용기와 힘의 원천과 활력소가 된다.”란 뜻입니다.

지금껏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목사의 직분이 짐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허락한 “목사”라는 직분 때문에 고난 가운데서 인내할 수 있었고, 두려움 가운데 담대할 수 있었고, 슬픔 가운데 기뻐하며, 약함 가운데서 능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의 경주가 힘듭니까? (빌3:14)“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주님은 잘 달린 사람들에게 상을 약속하였습니다. (계2:10)“네가 죽도록 일에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우리에게 주실 상을 바라보고 맡은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1. 일하는 농부의 모습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농부라고 하셨습니다. (요15:1)“내 아버지는 농부라” (고전3:9)“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6절)“수고하는 농부”라고 하였습니다. 요약하면 교회는 일터요, 직분자는 일꾼이란 뜻입니다.

농부는 대체로 일이 많고 힘든 것이 특징입니다. 농부는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따가운 태양아래서 일을 합니다. 한자 쌀미(米)자를 보면, “팔을 두 번 곱한, 팔십팔(八十八)로, 이것은 농부가 여든 여덟 번의 손을 거쳐, 쌀을 거둔다고 하는데서 나온 글자라고 합니다.

교회 또한 일이 많습니다. 주일예배, 주일학교, 중고등부, 찬양팀과 찬양대, 식사 등 수고 없이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 올 때마다 “오늘은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교회 와야 합니다.

초창기 한국교회에서 직분이란 맡기 부담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직분을 맡는 다는 것은 교회 모든 살림살이와 굳은 일을 도맡아 수고하는 의미로 통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영적으로 섬김과 기도 생활, 모범을 보이는 등 희생을 감수하며 잘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직분이 감투처럼 생각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에 직분을 가진 자는 사회에서도 제법 알아주며, 또 직분을 가지고 사업을 할 때도 상당한 효과가 있었습니다. 즉, 직분이 자신의 신분을 올려 주는 역할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직분을 영적인 면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떤 자세로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교회는 전투하는 곳이며, 경기하는 곳이며, 그리고 일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맡겨주신 직분을 군인과 경주자, 그리고 농부와 같이 자세로 잘 감당하므로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 받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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