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마지막 소원과 기도

성경 : 시편 90:12-17

제목 : 모세의 마지막 소원과 기도

2022.12.18

보통 어린 아이들은 나이를 먹을 때 좋아하는 편이지만, 어른들은 반대입니다. 그것은 한 살 더 먹는 만큼 자신의 생명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120년을 살다가 세상을 떠난 모세의 기도입니다. 오늘은 “모세의 마지막 소원과 기도”란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나이를 계산하는 지혜를 주소서!
    일찍이 믿음의 조상, 야곱은 애굽 왕 바로가 “당신의 나이가 얼마냐?”라고 물었을 때, (창47:9)“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적지 않는 130년의 세월, 대부분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모세, 또한 인생을 “티끌”,“한 순간”, “풀” 등으로 표현하며, 인생이 아주 짧은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인생이 짧을 뿐만 아니라 (10)“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고생과 슬픔”뿐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고백이라 여겨집니다.

이런 가운데 모세는 (12절)“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라고 기도했는데, 이것은 “나의 죽는 날과 시간을 알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가치 있고,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성경은 시간을 크로노스카이로스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크로노스”는 물리적인 시간으로, 의미 없이 흘러가는 수평적인 시간을 말합니다. 주님이 가룟유다에게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 하셨는데, 유다는 그의 생애, 단 하루도 가치 있는 삶을 살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반면, “카이로스”는 시간의 길이와 상관없이 “의미와 가치 있는 시간”을 말합니다. 마가복음 주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인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기억하리라”하셨는데, “하나님이 기억하고 인정하시는 시간”을 “카이로스”로 표현하였습니다.

모세는 창세기 4, 5장에서 가인과 셋의 두 족보를 비교해서 기록했습니다. 셋의 후손들은 그들이 살았던 나이를 꼼꼼히 기록했지만, 가인의 후손들에 대해서는 나이를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가인의 후손은 하나님과 무관한 정욕적인 삶을 살았기에 기록할 의미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는 하나님이 인정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살았다 해도 하나님과 상관없으면 그 시간은 가치 없는, 낭비된 “크로노스”시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삶, 가치 있는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1.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여러분! 식사를 맛있고, 즐겁게 먹는 것이 잘못입니까? 재미있고, 즐겁게 여행하는 것이 잘못입니까? 그런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 특히 한국인들은 즐기고, 재미있게 사는 것을 금기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일찍부터 철학적으로 스토아학파에서 금욕주의를 강조해 왔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쾌락주의인 에피쿠로스 학파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불교와 유교에서도 쾌락을 금기시 해 왔습니다. 나아가 기독교 또한 세상에서 즐기는 것은 곧 세속적인 행위로 간주하면서 기쁨을 표현하는데,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14절)“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했는데, 그것도 “일생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파격적으로 소원을 갖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기도를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저는 아직 이런 기도를 해 본적이 없습니다.

소 요리 제 1문답에 사람의 제 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사람의 제 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보고, 즐기는 것이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 했는데, 우리는 마음껏 하나님을 즐거워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3:12)“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지혜자 솔로몬이 이 사실을 깨닫는데 한 평생 걸렸습니다. (빌4:4)“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축복에 대해서 만족하고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잠31:22)“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방석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 저는 우리 기독교가 이토록 풍성한 종교인줄 몰랐습니다. 이것은 사치해라는 말이 아닌, 가족과 이웃을 위해 희생했다면, 당연히 자신을 위해서도 최고의 것을 누릴 특권이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인생을 비극적으로 살지 않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슬픔의 종교도 비극의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형통함을 하나님이 주신 가정과 자녀, 기업에 대해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세의 기도처럼 “일생 즐겁고 기쁘게 사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1. 우리가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요즘은 과거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일들에 대해 고민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한국은 “농업 후계자가 없다.”고 아우성인데, 농사를 짓겠다는 사람은 10명 중 2명도 안된다고 합니다. 인간 문화제 역시 “이을 후계자가 없다.”고 하며, 국가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징계하는 방법 중 하나는 대를 끊는 것입니다. (신5:9)“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 이르게 하거니와” 이것은 대를 끊겠다는 뜻입니다.

모세는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이런 소원과 기도를 한 것입니다.

(17절)“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 손이 행한 일”이란, 후손들이 애굽에서 400년 종살이 가운데서 출애굽한 사건, 홍해를 건넌 일, 그리고 광야 40년을 통과한 일 등,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잊지 않고,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모세에게 여호수아는 참으로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계승자였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일 설교에서 언급한 것처럼, 바울이 그 많은 사람들 중에 그토록 디모데를 보고 싶어 한 것은, 디모데가 자신이 이룬 사역을 견고하게 할 후임자였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그러하였던 것처럼 우리 또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반복적으로 기도해야합니다. 모세는 후손들에게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율법을 물려주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또한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공경과 믿음을 물려주도록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모세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가치 있고, 유익하게 사용할 것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겁고 기쁘게 살면서, 우리가 수고한 것들을 자녀와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힘 다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모세의 소원과 기도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유익하고 가치 있게 사용하며, 즐겁고 기쁘게, 그리고 우리가 행한 일들이 후대에까지 계속 계승되도록 힘쓰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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