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딤후 4 : 9-11
제목 : 떠난 사람, 남은 사람, 보고 싶은 사람
2022.12.11
바울이 기록한 서신은 히브리서를 포함 14권입니다. 가장 먼저 기록한 서신은 갈라디아서(AD50) 최후에 기록한 서신(AD67)이 디모데후서입니다. 디모데후서는 순교직전에 기록한 서신입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 “떠난 사람, 남은 사람, 보고 싶은 사람”이란 말씀으로 은혜 나누겠습니다.
- 떠난 사람, 데마
유럽인이 애완동물 중, 개를 가장 많이 키우는 이유에 대해 “개는 어떤 동물보다 사람과 친밀하며, 특히 주인을 신뢰하고, 배반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답했습니다. 실제, 개는 주인을 모른 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주인이 위험할 때 구하기까지 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오늘 본문을 대할 때, 마음이 쓸쓸합니다. (10절)“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데마는 바울을 만나 주님을 영접한 후 바울과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감옥에 투옥되어 가장 어려울 때, 바울을 떠났습니다.
데마가 바울을 떠난 이유에 대해 “이 세상을 사랑하여”라고 했는데, 대마가 사랑은 세상은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믿음에서 떠나게 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14절)“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바울은 떠난 사람으로, 마음이 아팠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자신의 곁을 떠난 사람들에 대해 원망이나 허물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사람에게 버림당하는 것보다 아픔이 없는데, 사람을 배반하고 버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버림받은 적이 없습니까?
세상에는 사람을 버리고, 버림받는 일들이 많습니다. 줄리어스 시저가 가장 아낀 브루투스가 줄리어스 시저를 배반하고 암살했으며, 히틀러는 유럽인들에게 전쟁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놓고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워싱턴포스터 지는 20세기의 “최대 배반의 사건”으로 선정한 바 있습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호산나 찬송하리로다.”라고 환영하며 환호한 무리들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제자들마저 주님 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았으며, 오히려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여러분! 내가 참으로 아끼고 사랑한 사람이 내 곁을 떠났습니까? 허물을 돌리지 않길 바랍니다. (16절)“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떠난 사람 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말고, 임마누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에 감사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 남은 사람, 누가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저자로, 그의 직업은 의사입니다. (골4:14)“사랑받는 의원 누가” 누가는 바울의 주치의로써,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의술을 열악한 선교지에 있는 교회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꺼이 사용하였습니다.
의사였던 리빙스턴 또한 누가와 같이 의술을 복음을 전하는데 사용했습니다. 그가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려고 했을 때, 가족과 친구들이 만류하였지만, 기꺼이 아프리카 영혼을 위해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심장은 아프리카에 묻혔고, 그의 장례는 영국왕실의 예대로 치렀고, 영국인이면 누구나 묻히고 싶어 하는 웨스트민스터 가장 중심자리에 묻혔습니다.
리빙스턴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위해 1파운드도 낸 일이 없고, 더구나 영국을 위해 별로 한 일이 없었지만 영국과 전 세계 사람들이 그를 기억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존귀한 것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천국에서 받을 상과 영광이 크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누가는 바울선교 팀에 동행했습니다. 누가는 바울과 함께 2차 전도 여행 때에 드로아에서 빌립보까지 동행하였으며, 빌립보에서 목격한, 자주장사 루디아를 만난 것과, 점하는 여종을 고친 것, 바울과 실라가 옥중에서 갇힌 것, 간수가 복음을 받은 것들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3차 여행이 끝날 무렵, 빌립보에서 예루살렘까지 동행하며, 그리고 팔레스틴에서 로마까지 멀고도 위험한 수천 킬로의 바다여행에도 합류했습니다. 지중해에서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배가 파선되었던 위험 속에서 마치 종군기자와 같이 복음의 역사를 세밀하게 기록하였습니다.
누가는 바울의 주치의와 비서로, 재판받을 때에도 함께 했습니다. 누가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바울의 동역자로 함께 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누가에 대하여 (11절)“누가만 나와 함께 있으니라” (고후8:18)“이 사람은 복음으로서 모든 교회의 칭찬을 받는 자요”
여러분! 우리가 살면서 무엇을 원합니까? 누가와 같은 한 사람이 나의 곁에 있다면, 축복된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그보다 내가 누가와 같은 사람이라,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 보고 싶은 사람, 디모데
(9절)“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바울은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떠나가자 간절히 보고 싶은 한 사람을 있었습니다. 바로 디모데입니다. 바울은 디모데가(21절)“겨울이 오기 전에 어서 오라.”고 재촉하였습니다. 겨울이 오면 물이 얼어 항해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 복음주의 “찰스 스윈돌” 목사님은 그의 저서 “겨울이 오기 전에 돌아오라”에서 본문을 다음과 같이 각색했습니다. “디모데야 나는 네가 얼마나 간절하게 필요한지 모른다. 너는 빨리 겨울이 오기 전, 매서운 찬바람이 나뭇잎들이 가지에서 벗겨지기 전에 빨리 나에게 오라.”
바울은 지금, 감옥에서 추위와 외로움과 싸우고 있으며, 죽음을 목도하고 있는 순간이었지만, 딱 한 사람, 디모데를 보고 싶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믿음으로 낳은 아들이며, 2차 선교지인 루스드라에서 만난이래, 변함없이 바울에게서 배우며, 사역한 신실한 목회자였습니다.
여러분! 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다시 만나 보고픈 사람이 누굽니까? 만나 보고픈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도 간절히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말이며, 그에게 줄 것이 남아 있다는 뜻이며, 그는 나에게 아주 소중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왜 바울이 디모데를 보고 싶어 했습니까? 디모데는 자신의 삶의 마무리며, 뿌린 열매로, 기쁨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찌 만나보고 싶지 않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극장이나 운동장에서 만난 사람과 같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 안에 지체가 된 자들로,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죄와 허물을 용서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믿음의 형제, 자매가 된 자들입니다. 헤어져도 또 다시 만아냐 할 자들입니다. 어찌 우리가 서로 허물을 용서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 살 수 있겠습니까?
떠난 사람에게 매달리지도 말고 원망도 하지 맙시다. 끝까지 남은 자로 살아갑시다. 그리고 보고 싶은 사람, 만나고 싶은 자들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