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전도서 7 : 8-10
제목 : 전도자가 말하는, 세 가지 나은 것
2022.12.4
시작은 거창하지만, 끝이 흐지부지한 경우를 “작심삼일, 용두사미”, 끝을 잘 마무리 하는 것은 “유종지미”라고 합니다. 오늘은 2022년 마지막, 12월 첫 주일입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 “전도자가 말하는 세 가지 나은 것”이란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 일의 마무리가 시작보다 낫다.(8절)
농부에게 있어 일의 시작은 봄에 씨를 뿌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공부하는 학생에게 시작은 입학이라 할 수 있으며, 사업하는 분에게 시작은 개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시작은 중요하며,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반면, 농부에게 일의 끝이란 열매를 거두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학생에게 졸업, 사업하는 분은 결산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일의 끝”이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일 뿐입니다. 농부가 가을에 추수를 하고, 학생이 졸업한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일 뿐입니다.
궁극적으로 사람에게 “일의 끝”이란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본문에서 전도자가 말하는 “일의 끝”이란 “시작한 일을 마무리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다.”란 핵심 의미는 “시작한 일에 대해 마무리를 잘 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전도서를 기록한 솔로몬은 누구보다 시작이 좋았습니다. 역대하 1장-9장까지 솔로몬의 전무후무한 부귀영화와 성전 건축한 것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지막은 사치와 향락에 빠졌습니다.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다.”란 그의 고백은 자신이 일을 마무리하지 못한 후회입니다.
우리가 가끔, 집을 짓다가 방치한 건물을 봅니다. 건물 안에는 길고양이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비관하며, 방황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길거리에 알코올 중독자들을 봅니다. 마무리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마무리가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담에 “가다 중단하면, 아니함 만 못하다.”란 말이 있습니다. “지금은 바쁘니까 다음에 해”, “다음 기회에 해도 늦지 않아”라고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미루는 것은 단순히 습관이나, 흥미가 없는 이유도 있겠지만, 기회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긴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2023년도 마무리해야 할 일도 있지만, 2022년에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금년도 내가 해야 하는 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미루지 말고, 2023년도를 잘 마무리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 참(기다리는)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낫다.
전도자는 (8절)“참는 마음과 교만한 마음”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농부가 사과를 심고 열매를 거두려면, 이유없이 최소한 3년은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이 “참는 마음”입니다. 반면 “교만한 마음”은 3년을 참고 기다리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낳으면, 적어도 20-30년 정도는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12살 된 아들이 말을 좀 잘 듣지 않는다고 “사람 안 될 터이니 내 자식 아니다”고 하는 것이 교만이란 것입니다. 전도자가 말하는 “교만한 마음”이란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하게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많은 스포츠 가운데 축구에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축구는 1골 넣고 2-3점 얻는 농구나, 한번에 15점, 10점을 얻는 테니스와 다릅니다. 90분 동안 22명이 죽어라 뛰어봤자 1,2 점내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골의 희소성 때문에 한골 들어가면, 모든 사람들이 열광합니다.
축구에서 한 골은 대한민국 전체를 벌떡 일으켜 세우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남자도, 여자도 일으켜 세우며, 왕도, 대통령도 벌떡 일으켜 세웁니다. 농구에서 한 골과 축구에서 한 골의 느낌과 감정이 다른 것은, 골에 대한 기다림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기다림 가운데 일하셨습니다. 노아도 아브라함도, 야곱도 요셉도 끝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기다림을 요구하시고, 기다림 속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앙은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갈수록 기다림의 가치가 외면당해 기다림은 곧 “낭비”로 이해되곤 합니다. 하지만 농부가 기다리는 시간은 곡식이 영거는 시간이며, 산모가 기다리는 시간은 생명이 완성되는 시간입니다. 기다림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오늘 하루도 의미 없는 시간이 되고 납니다.
아인슈타인은 그 복잡한 “상대성 원리”를 “기다림”으로 설명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두 시간 함께 있었다면 5분정도로 짧다고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뜨거운 난로 위에 10초는 2시간 쯤 된다고 생각될 것이다.” 이것이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상대성원리입니다.
바울이 “사랑은 오래 참고”라고 했으며, 욥은(욥23:10)“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한 기다림은 결코 낭비적인 것이 아닌 값진 것임을 알고, 긴 터널과 같은 지루하고 답답한 시기들을 잘 참고 견딜 수 있길 소망합니다.
- 오늘이 과거보다 낫다.
여러분들이 부모님과 대화를 하다보면, 유난히 과거 이야기가 많은 것을 느낄 것입니다. “옛날에
내가 시집살이 할 때”, “40년 전, 내가 스페인에 왔을 때”, “옛날 내가 교회를 섬겼을 때”, 등 과거의 향수에 젖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아가, 뭐든지 옛날이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걸핏하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때가 훨씬 좋았다 애굽으로 돌아가자”라고 과거에 얽매여 살았습니다. “옛날에는, 가난해서도 가족처럼 지냈는데”, “옛날에 다녔던 우리 교회는 참으로 은혜가 넘쳤는데…”
그러나 전도자는 (10절)“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 우리는 지난, 과거의 일들을 “역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역사의 중심은 과거가 아닌 “현재”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포로생활 가운데 과거 향수에 빠져 있을 때 (사43:18)“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이사야는 포로생활이 끝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준비하라 요청했습니다.
금년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한해를 돌아볼 때, 시련도 아쉬움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금년의 염려들을 내년까지 가지고 갈 이유가 없습니다. 금년은 금년으로,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끝내야 합니다. 오늘 전도자를 통해 주신 말씀으로, 한 해를 잘 마무리 했으면 합니다.
“일의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무리는 더욱 중요하며, 참고 기다리는 마음은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며, 오늘이 과거보다 낫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금년 한해를 잘 마무리 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