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기억되는 복음의 동역자들

성경 : 골로새서 4 : 7-9, 12-13

제목 : 영원히 기억되는 복음의 동역자들

2022.11.27

바울은 자신과 일한 동역자, 두기고, 오네시모, 아리스다고, 마가 등 10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골로새교회를 비롯,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수고한 일꾼들입니다. 오늘은 10명 중, 3사람을 중심으로 “영원히 기억되는 복음의 동역자들”이란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마당발의 동역자, 두기고

보통 사람들이 “대인관계가 넓고, 폭넓게 활동하는 사람”을 “마당발”이라고 합니다. 첫 번째로 소개하고 있는 두기고는 한 마디로, “마당 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신을 쓰고 있고 바울은 골로새교회를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지만, 두기고를 통해 편지를 전달토록 하였습니다.

두기고는 바울이 로마옥중에서 쓴 골로새서를 비롯, 에베소서, 빌레몬서를 각 교회에 전달하였으며, (16절)라오디게아 교회에도 전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바울은 그레데 섬에서 목회하는 디도에게 어려움이 생겼을 때 두기고를 보냈습니다.(딛3:12)

당시는 우편제도나 전화도 없고, 이 메일도 없던 시절이었기에, 사람이 직접 편지와 소식을 전달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기고는 수천 킬로미터나 되는 먼 거리를 마다않고, 무거운 두루마리 성경을 지고 전달하였습니다. 두기고는 맡은 임무를 발로 뛴 마당발이었고, 우체부였습니다.

이런 두기고에 대해(7절)“사랑받는 형제, 신실한 일꾼, 주안에서 함께 종 된 자”라 하였습니다.

두기고는 여러 성도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으며, “신실한 일꾼”이라 했는데 “믿을 수 있는 일꾼, 충성스러운 일꾼”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두기고는 “주 안에서 함께 종 된 자”였습니다.

지금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이 진행 중입니다. 축구선수를 평가하는 기준 가운데, 중요한 하나는 “90분 경기 중 얼마나 많이 뛰었느냐”를 통해, 선수의 능력과 포지션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뛰지 않고, 공을 기다리는 선수에게 중요한 포지션을 맡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전 세계는 온난화로 생긴 이상기온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이는 차량 사용량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즉, 지구 온난화 현상은 사람들이 걷지 않고, 움직이지 않음으로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활동하기 싫어할 때 사람의 신체는 물론 지구까지 병들고 있습니다.

두기고가 복음을 위해 몸과 발로 뛰었습니다. 축구로 하면, 최고거리를 뛴 선수라 할 만합니다. 그 결과 많은 교회들이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몸과 발로 일할 때에 유익과 열매는 아주 큽니다. 두기고와 같은 마땅 발을 가진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1. 변화된 동역자, 오네시모

(9절)오네시모가 누구입니까? 과거 골로새에 있는 빌레몬의 노예로, 어느 날 그는 빌레몬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로마로 도망을 간 사람입니다. 도망을 간 오네시모는 로마에서 바울을 만나 복음을 받았으며, 바울의 권고로 두기고와 함께 다시 빌레몬에게 돌아갔는데, 바울은 (9절)“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네시모가 믿음으로 새 사람이 되었지만, 빌레몬에게 피해를 준 지난 일을 모르는 척할 수 없었습니다.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결자해지”란 말처럼, 바울이 골로새에 있는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돌려보내 용서해 줄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

바울이 옥중에서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해 줄 것을 간청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허물과 죄를 씻어주셨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용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용서를 받아들이는 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용기 있는 그리스도인은 비록 잘못이 있다 해도 기꺼이 용서를 구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맥아더장군의 자녀를 위한 기도문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용서를 구하는 아들이 되게 하옵시며, 또한 용서할 줄 아는 아들을 주옵소서!” 참, 멋진 기도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네시모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빌레몬에게 명령할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몬1:8-9)“네게 명령할 수 있으나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이유가 무엇입니까?

(14절)“너의 선한 일이 억지같이 되지 않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로라.”

자원된 마음이 명령과 지시보다 더 큰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교육학에서 강제적인 것은 외부귀인이라고 하며, 자율적인 것을 내부귀인이라 합니다. 강제적인 것은 순간, 강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약해지지만, 자율적인 것은 명령보다 강하며, 지속적입니다.

여러분! 부모나 때문에 교회 나옵니까? 체면 때문에 억지로 봉사합니까? 억지로 인사하고, 억지로 봉사하는 것보다 불편한 것이 없습니다. (벧전 5:2)“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된 마음으로 하며” 모든 일을 억지가 아닌, 자원된 마음으로 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1. 중보기도의 동역자, 에바브라

“중보기도”란 내가 하나님과 그 사람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한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함께 하나님께 간구 하는 것을 뜻합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소돔 고모라 성이 멸망하지 않도록 중보 기도를 하였고, 모세가 이스라엘을 백성들을 위해 중보기도 하였습니다.

12절 이후, 바울이 소개한 에바브라는 골로새 사람으로, 골로새와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 교회를 섬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눈여겨 볼 수 있는 것은 (12절)“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항상”과 “애써” 란 말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에바브라가 어떻게 중보기도 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애쓴다.”란 “씨름한다, “고통 한다.”뜻으로, 그는 골로새교회 성도들이 확고한 믿음을 갖도록 씨름 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보통 우리가 타인을 위해 기도 할 때, 쉽게 포기하거나 낙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타인을 향한 중보기도는 현상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질병에서 회복되길 원한다든지, 어려움 상황에서 벗어나길 원한다든지 하는 기도가 많습니다. 그런데 에바브라는 (12절)“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영적인 중보기도를 드렸습니다.

여러분! 에바브라의 중보기도, “믿음의 확신과 견고한 믿음의 뿌리를 내리도록 하는 기도”는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하게 필요합니다. 믿음의 확신과 믿음의 뿌리는 우리 삶에 기초가 되고, 근본이 되고, 가치관이 되길 때문입니다.

한자 사람인(人)자를 보면, 혼자서 설 수 없으며 곁에서 받쳐 주지 않으면 넘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사람이 싫어요!” 라는 말보다 이기적인 사람이 없습니다.

두기고는 발로 뛰는 동역자였으며, 무익했던 오네시모는 유익한 동역자가 되었으며, 에바브라는 교회와 성도를 위해 힘써 중보 기도한 동역자였습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 또한 발로 뛰고, 유익하고, 중보 기도하는 영원히 기억되는 복음의 동역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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