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레 23:10-14
제목 : 너희가 수확할 때, 이삭 한 단을 드리라.
2022.11.20(추수감사)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우리가 농사도 짓지 않고, 수확도 없는데, 추수감사절을 지켜야 하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추수감사절을 농사와 목축을 하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너희가 수확할 때 이삭 한 단을 드리라.”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 첫 이삭 한 단은, 전체를 드리는 것이 되다.
대체적으로 구약시대는 목축과 농사가 주업이었습니다. 아무리 작은 땅에 보리나 밀을 심는다 해도 이삭의 숫자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 이삭 한 단은 전체 가운데 아주 작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삭 한 가마니가 아닌, 한 단을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10절)“너희가 곡물을 거둘 때에 너희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첫 이삭 한 단”이라 했습니다. 농부가 첫 이삭 한 단을 드리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살피고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여기 이삭 한 단은 양의 문제가 아닌 상징과 대표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소제는 은혜에 감사하여 자발적으로 드리는 헌신의 제사로, “일부분을 드림으로 전체를 드린다.”는 기념과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을 히브리어로 “아즈카라”라고 합니다. 즉, 첫 이삭 한 단을 드리는 것은 수확한 전체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내포하는 것입니다.
“아즈카라”의 상징적인 의미는 성만찬 예식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주님께서 “떡과 잔”을 떼어 주시면서 “이것은 내 몸이며, 내 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작은 떡과 잔을 통해 제자들에게 주님의 몸과 피, 죽으심을 기억하며, 기념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삭 한 단은 아무리 어려워도 드릴 수 있는 최소의 것입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 모두 똑같이 드리도록 했습니다. 구약에서 생명의 속전(살아 있는 증표) 또한 부자와 가난한 자 똑같이 반 세겔을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닌, 마음과 자세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루에, 5-10분 말씀과 기도로 시작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느냐?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하루 전체를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 예배드리는 것이나, 시간과 물질을 드리는 행위 또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믿고, 드린다는 신앙고백적인 행위입니다.
주님은 아주 작은 과부의 두 렙돈을 보시고 “그의 모든 소유를 드렸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과 물질, 달란트, “너무 작아서” 라고 과소평가하지 않아야 합니다. 가장 작은 것 속에 전체를 드리는 소제물의 정신과 믿음을 소유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 첫 이삭 한 단은, 감사의 예물이다.
(12절)“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을 여호와께 번제로 드리고”첫 이삭과 함께 흠 없는 수양을 번제를 드리라고 하신 것은, 곡식제사는 피 흘림이 없음으로 항상 짐승의 제물이나 기름과 함께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은 피 흘림을 통한 속죄를 말하는 것으로, “첫 이삭 한 단과 수양은” 주님께서 우리를 대속하신 것에 뜻합니다. 비록 첫 이삭 한 단은 아주 적은 것이지만, 우리를 죄에서 속량해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의 예물입니다. 오늘 말씀을 바로 깨달을 때,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합3:17-18)“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없는 것이 6가지이지만, 이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어떤 수확도 열매도 없는 전무한 최악의 상황에서 최대로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구원의 하나님”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아무 것도 없는 최악의 상황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 감사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 또한 옥중에서 가장 많은 감사와 찬양과 기쁨이 넘쳤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옥중에서도 “감사하는 자가 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는데, 명령이 모자라 또 “감사하라” 명령하시는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우리의 믿음을 지키는 최후 보루이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잃어버리는 순간, 원망과 불평, 미움과 시기 등 받은 은혜를 쏟아 버리게 됩니다.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환경이나 조건은 없습니다. (딤전 4:4)“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감사는 우리를 부요하게하며, 감사는 불평을 기쁨으로, 온전하게 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촛불을 보고 감사하는 자는 별빛을 주시고, 별빛을 보고 감사하는 자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자는 햇빛을 주신다.” 좋은 일이 있을 때, 평범한 일에도 그리고 어려운 일을 만나도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 첫 이삭 한 단은, 부활에 동참하는 고백이다.
(13절)“기름 섞은 고우 가루 십 분의 이 에바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로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첫 이삭 한 단과 수양의 기름으로 드리는 화제는 완벽한 희생과 죽음을 말합니다. 여기
첫 이삭 한 단은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고전15:20)“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첫 열매는 “견본”이란 말로, 저와 여러분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과 동일하게 부활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포도나무 비유를 해 주셨습니다.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이 한 알의 밀알이 됨으로, 저와 여러분이 생명을 얻게 되었고, 또한 부활의 첫 열매인 주님과 함께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롬6:4-5)“세례를 받음으로 주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세례 자체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을 확신하는 자가 받는 세례는 주님의 부활에 참여하는 표식이란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도 처음 것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도 처음 것을 아주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겔48:14)“그 땅의 처음 익은 열매를 남에게 주지도 못하리니 이는 나 여호와에게 거룩이 구별한 것임이라”했습니다.
첫 이삭 한 단을 드리는 것은 전체를 드리는 신앙고백이며, 첫 이삭 한 단은 감사의 예물입니다. 첫 이삭 한 단은 주님과 동일하게 부활에 참여하게 된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여러분이 드리는 섬김과 헌신, 희생, 헌금 속에는 너무나 소중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감사를 통해 더 큰 감사와 기쁨, 풍성함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