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욥기 42:10-17
제목 :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비밀
2022.11.13
욥의 고난을 보면서“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이토록 큰 고난을 주시는가?”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욥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들에 대해 조금이나 해답을 얻을 수 있으면 합니다. 오늘은 욥의 고난을 통해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비밀”이란 말씀으로 은혜 나누겠습니다.
- 고난에 대해 논쟁을 삼가라.
10월29일 서울에서 일어난 이태원 참사 사건으로, 156명의 목숨을 잃었습니다. 대부분 젊은 청년들이었습니다. 이런 큰 비극 앞에 국민 대부분의 관심은 “누가, 왜, 이 큰 불행을 가져오게 했느냐?”입니다. 그래서 사고 원인과 가설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며, 책임자를 찾느라 분주합니다.
지금껏 이태원 사고에 대한 결론은 이러합니다. “서울교통공사의 무정차 때문이다.” “112 대응을 잘못한 경찰청의 책임이다.” “해밀턴호텔의 불법증축으로 골목길이 좁아진 탓이다.”, “할로윈 축제 탓이다.” 이런 논쟁들은 결과적으로, 해결은 커녕 서로를 원망하고, 비방을 낳게 했습니다.
욥기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왜 고난을 받는가?”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고난이라 했을 때, 크고 작은 질병들, 재난과 사고, 천재지변, 죽음 등, 살면서 직면하고 있는 총체적인 것들을 말합니다. 욥이 당한 고난, 역시 총체적인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욥은 동방에서 큰 부자로 10남매를 두었고, 매일 가정 예배를 드리며, 경건하게 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10남매를 모두 잃어버렸고, 그 많던 재산 또한 몽땅 잃어 버렸고, 설상가상으로 온몸에 악창까지 나서 기왓장으로 자신의 몸을 긁어야 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이런 일이 있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악담했고, 또한 친구인 엘리바스는 “내가 악을 뿌렸으니 그대로 거두었다.” 속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욥도 뒤질세라 강변했습니다. 이런 논쟁은 4장에서 37장까지, 무려 34장까지 반복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9장, 제자들이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를 보고, 죄 때문이라 말했을 때, 주님은 오히려 부모나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소경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함으로, 고난당한 자를 향해 판단하는 것을 삼가 하도록 하셨습니다.
욥기서는 고난당자를 비난하는 욥의 세 친구도, 변명하는 욥도 (42:7,8)“옳지 못하다. 우매한 것이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얕은 지식으로 고난 속에 담겨진 비밀을 깨달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육체의 고난, 가시를 주신 것은 “교만치 않고 겸손”하도록 주신 것이라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고난과 고난당한 자에 대해 논쟁보다 겸손의 기회로 삼을 수 있길 소망합니다.
- 고난은 정해진 법칙이 없다.
우리가 고난에 대해, 논쟁이나 단정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일정한 법칙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악한 사람만이 아닌 의로운 사람도 당하며 그렇다고 공평하게 고난당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성경은 고난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죄가 고난의 원인이 됨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38년 병자를 고쳐주신 후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히려 우리가 타인의 고난을 “죄의 결과”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 내 스스로는 혹 범죄한 것이 아닌가? 돌아보고, 회개할 필요가 있지만, 타인이 단정하지 말라했습니다.
유익을 위한 고난이 있습니다. (벧전1:7)“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믿음의 시련”은 “용광로”를 뜻합니다. 금광석을 용광로에 넣어 제련하여 순금을 얻듯, 고난을 통해 순수한 믿음을 얻기에, 오히려 유익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의 믿음을 보면, 잡다한 것들이 많이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세상 사람들과 비슷하게 살아 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결코 세상 사람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러 가지 시련과 고통을 통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연단하시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시련은 결코 낭비적인 것이 아닌 값진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고난 속에서 힘을 잃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얻게 된다는 교훈을 배워야합니다.
그리고 원인을 알 수 없는 고난이 있습니다. 욥의 고난이 그러합니다. 성경은 경건한 욥이 당한 고난의 이유나 원인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할 때, 욥의 고난을 생각하며, 해답을 찾도록 위함입니다.
누구도 실패와 질병, 재난과 고난을 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원치 않는 고난을 당할 때 왜 라는 질문을 통해 해답을 얻기보다 고난마저 하나님의 통제아래 있다는 것은 믿어야 합니다. 고난을 당할 때, 불순물을 제거하고, 나를 강하게 하시려고 주신 것이라고 확신하길 소망합니다.
- 고난에 대한 해답은 기도이다.
핍박받는 시대 지도자였던 야고보사도는 고난 받는 성도들에게, 농부와 선지자와 욥을 통해 교훈하였습니다. (약5:7)“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으라.” 고난을 참는 것은 쉽지 않지만, 농부가 열매를 바라보고 참고 기다리듯, 참고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농부가 참고 기다리는 동안 손을 놓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씨앗이 땅에 심겨지는 순간부터 흙이 영양분을 공급하고, 구름이 비를 내리고, 태양이 곡식을 자라게 하고 영걸게 합니다. 탐스러운 과일과 열매는 수고의 산물이지만, 참고 기다린 결과입니다.
산모는 출산 때까지 참고 기다립니다. 10개월 동안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들을 준비합니다. 건강검진, 운동은 물론 온 가족이 함께 집안일을 도웁니다. 기도하지 않던 사람도 아기를 가질 때만큼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자라게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처음 욥은 변명하며, 친구들을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욥42:10)“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 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기도가 변명과 비난을 극복하게 했으며, 기도가 곤경을 물리치고, 원망이 바뀌어 축복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욥을 통해 “고난에 대한 해답은 기도”라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여러분! 지금 어떤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나에게 왜 이런 가혹한 일을 당하게 하십니까?” 항변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까? 지금 우리의 고난과 함께 이웃의 고난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논쟁을 삼가 해야 합니다. 고난은 정해진 법칙이 없기에 단정하지 않아야 합니다. 고난에 대한 해답은 기도입니다. 오늘 욥기서는 우리가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할 때, 원망과 비난이 아니라 기도라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크고 작은 고난을 당할 때, 기도로 이길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