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꿔야 산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성경 : 누가복음 5:33-39

제목 : 바꿔야 산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2022.10.30.( 종교개혁주일)

주님이 세리, 레위의 집에서 음식을 먹을 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죄인과 함께 먹는다고 비방하였습니다. 이에 주님은 두 비유를 해주셨습니다. 오늘은 종교개혁 505주년 주일입니다. 본문을 통해 “바꿔야 산다.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란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옛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 바꿔야 산다.

본문에서 세리, 레위가 옛 사람을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건은 “사람이 과연 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27-28절)“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당시 세리는 로마의 편에서 동족을 착취하는 “매국노, 반 민족주의자”로 취급받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세리는 죄인 취급은 물론, 심지어 창기 취급으로까지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세리 레위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여기 레위는 신약, 첫 권인 마태복음의 저자와 동일 인물입니다.

주님이 레위를 부르실 때(31절)“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레위를 병자로 보았으며, 또한(32절)“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레위는 지난 과거 옛 사람을 회개하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지난날의 허물과 잘못이 있습니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내가 과거 하나님을 몰랐던 때, 16세 여자에게 임신을 시켰고, 친구와 어울려 도적질을 일삼았으며, 이단 종교 마니교에 빠져 방탕하였다.”고 했으며, 존 뉴턴도 노예상인이었지만 회개하고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했습니다. (엡4:17)“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하지 말라.” “허망한 것”은 “가치 없다.”란 말로, 오늘날 “허무주의” 철학이 나왔습니다. 허무주의 대표적인 철학자는 “니체”인데, 그는 “신은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즉, 니체는 “인생이 허무하며 가치 없다.”라는 출발점은 “하나님이 없다.”라고 하는데서 시작된다고 하였습니다. 겉으론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지만, 그럼에도 삶에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뿌리에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후3:5)“우리가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없으면 모든 것이 허무하게 될 뿐이며, 옛사람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공허함에 대한 해답은 하나님입니다. 새사람으로, 제자의 삶을 잘 감당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1. 옛 계명에서 새 계명으로 바꿔야 산다.

예수님이 죄인 취급을 받는 레위와 함께 식사하는 것은 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옛 계명의 잣대로 볼 때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두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36절)“낡은 옷을 깁을 때, 새 옷을 찢어 붙이는 사람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37절)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넣으면 모두 버리게 됨으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비유는 동일한 것으로 헌옷과 낡은 가죽부대는 구약의 옛 계명이며, 새 옷과 새 포도주는 신약 복음과 새 계명을 말합니다.

(갈3:23)“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 메인바 되고…갇혔느니라.” 여기 “매인바 되다.”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죄수가 감시를 받는 것을 뜻합니다. 즉, “죄인이란 뜻”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갖기 전에는 모두 “죄의 종”이었습니다.

옛 계명의 역할은 죄를 드러내고, 정죄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롬1:32)“모든 인간을 사형에 해당하는 자”, “죄의 삯은 사망이요” 라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옛 율법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심판하기 위해 주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롬8:1-2)“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옛 계명은 사람을 정죄하고 죽이지만, 그리스도께서 주신 생명과 성령의 법이 우리를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타인의 허물과 약점을 비판하는 옛 계명의 생각을 버리고, 새 계명의 생각으로 바꾸길 원하십니다. 새 계명이 무엇입니까? (요13:3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주님은 베드로에게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타인의 좋은 점은 보지 못하고, 허물을 보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비판과 정죄가 아닌 사랑으로 용납하고 용서하길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주신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따라 살 수 있길 소망합니다.

  1. 형식과 고정관념에서 살아 있는 믿음으로 바꿔야 산다.

로마시대 만들어진 카타콤 지하무덤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으며, 예배하며, 순교한 곳입니다. 후대의 사람들은 믿음을 지키다 순교한 자들의 신앙을 기억하며 무덤 앞에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묻힌 무덤 자체가 숭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33절)금식, 구제, 기도 등 종교적인 형식과 틀을 가지고 있었고, 종교적인 틀 안에 얽매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종교적인 형식과 틀에 매이지 않고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고, 창기로 여김 받는, 레위와 함께 식사하였을 뿐 아니라, 제자로 삼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종교적인 형식 못지않게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39절)“묵은 것이 더 좋다 함이니라.” 묵은 것에 익숙한 사람은 옛 것에 길들여, 새 것을 배척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묵은 것에 익숙한 사람은, 무조건 새것을 배제하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가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나사렛 동네 사람”이라며 배척하였습니다. “그가 모세율법을 어기고 안식일 지키지 않았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했다.”라며 주님을 배척했고, 십자가에 못 박게 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 백성들이 큰 죄인이므로, 구원의 대상이 아니고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여러분! 내가 버려야 할 고정관념은 없습니까? “내가 믿는 방식이 가장 좋아!”, “어린 아이는 믿음이 없을 거야”, “바꾸는 것을 싫어” 등 많은 고정관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의 핵심은 (37절)“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옛 사람, 옛 계명, 형식적인 종교를 바꾸지 않으면, 모든 것을 못 쓰게 된다.”입니다.

여러분! 내가 무엇을 바꾸어야 합니까? 옛 사람, 옛 계명, 종교적인 형식과 고정관념을 바꾸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게되고 맙니다. 새 사람으로, 새 계명으로, 그리고 살아 있는 믿음으로 변화되도록 힘쓰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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