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쉼을 얻으려면?

성경 : 마태복음 11:28-30

제목 : 마음이 쉼을 얻으려면?

  1. 8.21

요즘 현대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는 “피곤”이란 말이라고 합니다. 실제 현대인은 피곤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주님은 저와 여러분이 평안과 쉼을 얻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오늘은 “마음이 쉼을 얻으려면?”이란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마음의 쉼은 온유한 마음을 통해서 얻게 됩니다.

여러분! 직장생활 사업하시기 힘드시지요! 주부와 학생, 모두 피곤할 것입니다. 요즘 유치원생도 “내가 피곤하니 건들지 말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 주님께서도 우리 인생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쉼을 얻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29절)“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여기 “온유”란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뜻합니다. 부드러움은 약한 것이나 상대에게 굽히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인체 중 가장 강한 것이 이발이며, 가장 부드러운 것이 혀입니다. 그러나 가장 강한 이빨이 다 빠져도, 혀는 끝까지 남습니다.

주님은 온유한 마음을 가질 때, 우리가 참된 안식과 쉼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동시에 (마5: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그러나 마음에 화를 품고 있을 때, 마음이 미움으로 채워져 있을 때, 쉼을 얻을 수 없으며, 삶이 무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살벌하고 포악해지고 있습니다. 농촌도 옛날과 달리 얼마나 격해졌는지 모릅니다. 농민들은 쌀값, 배추, 사과 값이 떨어졌다하면, 고속도로를 막고, 곡식을 밟고 불태워 버립니다. 걸핏하면 노조들이 파업을 일삼으며, 자기 마음에 맞지 않으면 고함치며, 으르렁거립니다.

여러분! 마음에 평안과 쉼을 원하십니까? 바닷가에서 파도소리를 듣고, 얼마간 휴식을 취하면 신체적인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마음의 평안과 쉼은 환경이나 상황이 바뀜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온유한 마음을 가질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온유의 반대말은 “완고함”으로, 굳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간이 굳어졌다.”는 생명의 가능성의 희박을 말합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사자, 호랑이, 곰, 등 포악한 짐승들은 갈수록 개체수가 줄고 있어, 사람의 보호를 받아야 생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지난 주간 마음이 평안했습니까? 날씨도 더운데, 사소한 일로 화내고 신경질 부리지 않길 바랍니다. 날 때부터 온유한 사람은 없습니다. 온유는 배워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누구보다 마음이 온유했습니다. 쉼을 얻고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도록 온유한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1. 마음의 쉼은 겸손한 마음을 통해서 얻게 됩니다.

(29절)“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겸손”은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겸손”은 “땅”(휴뮤스)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땅이 모든 사람과 동, 식물 등 모든 것을 수용하는 것처럼, 겸손이란 땅과 같이 모든 것을 수용하는 것을 뜻합니다. 참된 안식과 쉼은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수용할 때주어집니다.

2000년 전 로마교회는 귀족과 노예, 유대인과 이방인 등으로 구성원들이 다양했습니다. 유대인 신자들은 율법에 따라 안식일과 절기들을 잘 지켰으며, 목매여 죽인 것과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습니다. 반면 이방인 신자들은 아무것이나 잘 먹고 마셨습니다. 그 결과 유대인신자들은 이방인 신자들을 부정하다 멸시했고, 이방인신자들은 유대인 신자들을 율법주의자들이라 비난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내 놓았습니다. (롬14:3)“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경멸, 얕보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비방)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받으셨는데, 서로 용납하고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해외교회도 다양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모입니다. 아주 엄격한 신앙관을 가지고, 예배 시간에 박수를 쳐도 안 되고, 복음성가도 불러서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한 예배 시작 때는 사도신경, 마칠 때는 주기도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약, 교회 안에 아직 담배를 끊지 못한 성도가 인사를 하다가 주머니에서 담배 갑이 툭 떨어졌다고 합시다. 이를 보고 “모태신앙이란 사람이 아직 담배를 피우다니” “우리교회 큰일 났네!” 하면서 동네방네 소문을 낸다면 아마 모태신앙이 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좋겠습니까?

“아직 담배로 고생하시군요! 담배 값도 만만치 않겠습니다. 저도 겨우 끊었습니다. 조금만 노력하시면 조만간 끊을 수 있을 것입니다.” 힘들어도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교회 안에 대부분은 진리 때문에 일어나는 갈등이 아닌, 사랑의 결핍에서 오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나에게 겸손을 배우라!”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용서하고 용납한 사람을, 우리가 미워하고 배척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용납할 때, 자신과 교회가 평안하게 됩니다. 주님이 우리를 용납해 주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용납하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1. 마음의 쉼은 자신의 짐을 잘 감당할 때 얻게 됩니다.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향해 (마16:24)“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30절)“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여기 “짐”은 비행기 안에 휴대하는 “핸드 캐리” 같은 것을 말합니다.

멍에는 소가 밭을 갈거나 수레를 끌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멍에를 메지 않고는 밭이나 수레를 끌 수 없으며, 힘들기 만합니다. 새에게 날개는 무거운 것이 아니듯 저와 여러분이 각기 지고 있는 짐은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니라 평안과 쉼을 주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머니에게 학교 가기 싫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유를 물었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날 싫어하며, 모든 선생들도 날 싫어합니다. 이번에는 그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학교 가야할 이유가 있으면 학교 가겠는가?” 물었습니다. 첫째, “너는 55살 된 어른으로, 가장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학교 가야하고, 둘째, 너는 그 학교 교장이기 때문에 가야 한다.”

세상에 살면서 짐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학생들은 공부의 짐이 있으며, 직장인이 져야 할 짐, 부모와 부부가 져야 할 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대신 질 수 없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이 우리그리스도인에게 맡긴 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그 짐이 무겁다고 생각하지만, 오늘 주님은 무거운 것이 아리라 쉽고 가벼워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낙타는 하루가 시작되면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짐을 지어 주길 기다리며, 또 해가지면 주인이 짐을 내려주길 기다린다고 합니다. 주인은 낙타가 지고 갈 짐만큼 실어주며, 낙타 또한 주인이 질 수 있을 만큼 짐을 지운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워진 짐을 마다않고 지고 간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평안과 쉼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온유한 마음을 가질 때입니다. 낮아진 마음, 용납하는 마음을 가질 때 쉼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각자에게 지워준 짐을 감당할 때 참 평안과 쉼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 온유와 겸손 그리고 주님께서 맡겨주신 짐을 잘 감당하므로 쉼과 안식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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