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통할 때가 있고, 곤고할 때가 있다.

성경 : 전도서 3 : 1- 8

제목 : 형통할 때가 있고, 곤고할 때가 있다.

  1. 6.19

“새옹지마”란 말이 있습니다. 좋은 일 가운데, 안 좋은 일이 있고, 안 좋은 일 가운데, 좋은 일이 있다는 말입니다. 1절-9절까지 28가지의 때가 나오는데, 좋고 기쁠 때가 14가지, 슬플 때가 14가지 나옵니다. 오늘은 “형통할 때가 있고 곤고할 때가 있다.”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형통할 때에,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기쁘고 형통할 때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형통할 때란 열매를 거둘 때입니다. 수확만큼 큰 기쁨이 없습니다. 씨를 심을 때는 어렵지만, 거둘 때는 기쁩니다. 사업을 시작할 때는 힘들지만, 열매를 거둘 때는 더 없이 기쁘며, 공부할 때는 괴롭지만, 졸업할 때는 기쁩니다.

“열매를 거둔다.”는 것은 단순히 “열매를 거두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할 수 있는 환경, 이를테면 일터와 건강, 일할 수 있는 조건과 능력을 주셨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뼈 빠지게 수고했으나, 노예였기에 아무 것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입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보다 큰 기쁨이 없습니다. 성경에서 사람이 태어나는 것에 대한 가치를 모세의 율법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에게는 3-4대까지 허락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는 천대까지 이르게 하시겠다.”약속하셨습니다.

이런 이유로, 요셉은 그의 형들로부터 배척을 받아 종으로 팔렸지만, 요셉이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을 때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창41:51)“요셉이 그의 장남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므낫세”란 “다 잊어 버렸다” 뜻으로, 요셉은 아들을 낳은 후 지난날 형제들이 모함하여 종으로 판 모든 사건과 아픔과 괴로움을 잊었습니다. 요셉은 자녀를 얻었을 때, 지난날 아픔과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들의 과오를 용서하고 잊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성공하거나, 힘이 있을 때 지난날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을 보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형통하고 기쁠 때 지난날 아픔을 잊을 수 있어야 하고,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하여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자녀를 “저 웬수!” “돈 먹는 하마!”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시127:3)“보라 자식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우리가 자녀들을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되새길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도록 주신 선물입니다.

  1. 곤고할 때에,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곤고한 날”이란 고난의 때를 말합니다. 곤고할 때가 언제입니까? 본문에 14가지로 말합니다. 잃어버렸을 때, 찢어질 때, 미움 받을 때, 슬퍼하고, 울 때, 전쟁으로 평화가 깨질 때입니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 때, 미움을 받을 때는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가 살면서 질병에 걸릴 때도, 직장에서 해고될 때도, 진학에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요즘 같은 때는 수입이 없고, 지출만 늘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무지개와 같은 아름다울 때도 있지만, 흑백 사진과 같이 어두울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혹 지난 주간에 어떤 일로, 잠을 이루지 못했거나, 슬프고 아팠던 일들이 없습니까? 우리가 나그네로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천국이 아니기 때문에 아픔이 있고, 눈물이 있습니다. 사람이 출생해서 죽기까지 아픔과 눈물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야곱은 (창47:9-10)“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오래 살았다는 것은 “슬픔을 많이 경험했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벧전1:7)“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 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는 것은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한 신앙을 소유하기 위함이라 하였습니다.

(전7:14)“형통한 날에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 되돌아 보아라”고 하였습니다. 곤고한 날에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하나님을 더욱 더 의지할 수 있게 된다면, 곤고함은 화가 아니라 유익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한 시련은 결코 낭비적인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때대로 우리가 당하는 곤고한 날들은 통과해야만 하는 터널이기도 합니다. (시30:5)“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우리에게 곤고한 날이 올 때 믿음으로 무장하고, 단련하는 시간임을 기억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련들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형통할 때에, 곤고할 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감춘 몇 가지 비밀이 있는데 죽음의 비밀입니다. 성경은 죽음의 때를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형통과 곤고함의 비밀입니다. (전7:14)“형통한 날과 곤곤한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솔로몬은 은이 돌처럼 사용했을 정도로 풍요로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풍요와 부요를 허랑방탕하며 낭비하였습니다. 이뿐 아니라, 그가 형통할 때, 하나님 앞에 겸손대신 교만을 비축하였습니다. 결국 솔로몬은 낭비와 교만이 그와 그의 나라를 망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통할 때에 곤고한 때를 대비하였습니다. (창41:48)“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축하되” (41:34절)“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1/5를 거두되” 우리가 눈여겨 볼 대목은 요셉은 수입의 20%를 미래를 위해 준비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성공하면 낭비하며, 방탕하기 쉽습니다. 직장에서도 소위 잘 나가는 시절이 있습니다. 이력서만 넣으면 스카우트되고, 내가 원하는 직장을 골라서 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부러움의 대상이 된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은 평생직장이 거의 없다고 말합니다.

인생에게 봄날과 같이 따뜻한 때가 있는가하면 추운 겨울도 찾아옵니다. 그러나 언제 형통할 때가 올 것인지, 곤고할 때가 올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환희와 감격할 때가 있는가 하면, 곤고하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오늘 전도자는 모든 경우에, 우리에게도 “형통할 때도 있지만, 곤고할 때도 온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형통할 때와 곤고할 때가 언제 찾아올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형통할 때, 곤고할 때를 대비해야 합니다. 반면, 곤고할 때는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곤고한 때인 것 같습니다. 곤고한 때일수록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고, 주님을 더욱 굳게 의지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