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을 업신여기지 말라.

성경 : 마태복음 18 :10-14

제목 : 작은 것을 업신여기지 말라.

  1. 5.15

큰 것을 좋아는 대표적인 나라가 있습니다. 영국인은 자기 나라를“대영제국”이라 부르며, 일본은 “대일본제국”이라 하며, 한국은 “대한민국”부릅니다. 보통 사람들은 큰 것을 선호하는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작은 것을 업신여기지 말라.”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작은 어린 아이를 업신여기지 말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어린아이를 업신여기지 말라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작은 자”란 소외되고 힘없는 자들과 함께 어린아이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업신여기다.”는 “거만한 태도로 상대를 무시하거나 비위를 상하게 하게 하는 것”뜻합니다.

한국도 과거에는 어린이들이 무시당했습니다. 손님이 오면 부모는 “너희들은 밖에서 놀아”했고, 아이들이 자기 의견을 말하면 “너희들이 뭘 알아!, 조용해!”라고 했고, 집에 아이들만 있으면, “이 집에 사람이 없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도 아이는 숫자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업신여기지 말라의 적극적인 교훈은 소중하고 가치 있게 여기라.는 뜻입니다. 어린아이들이 현재 철없고, 말썽부리는 모습만 보고는 소중하게 여길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의 미래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어른과 부모가 된 분들, 모두 영락없이 과거 철부지 아이들이었습니다.

워즈워드의 무지개란 시가 있습니다. “하늘의 무지개 바라볼 때면 나의 가슴 설렌다. 내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 나 어른이 된 지금도 이러하거니,…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여라.” 어린아이는 철없는 존재로만 계속 남아 있지 않고, 미래에는 부모의 어른이 된다는 것을 노래하였습니다.

여러분 “지금 내가 어린 자녀를 위해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가르친들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회의적으로 생각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미래에 모든 것을 맡겼기 때문입니다.

(시127:3)“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과 같다.” 시인이 “자녀가 부모의 최고 기업이며, 결과물인 동시에 부모를 보호해 주는 공격용 무기”라고 하신 말은 옳은 말입니다

어릴 때는 부모가 자녀를 걱정하지만, 성장하면 자식이 부모를 걱정합니다. 어릴 때 부모가 사랑한다하지만, 성장하면 자녀가 부모에게“사랑합니다.”말합니다. 어릴 때 부모가 자식의 손을 붙잡지만, 성장하면 자식이 부모를 업고 갑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자녀를 잘 양육하길 소망합니다.

  1. 작은 숫자를 업신여기지 말라.

중국 칭화대 왕중추 교수의 베스트셀러 디테일의 힘은 전 세계 CEO들을 영광 시킨 책입니다. ‘100-1=0, 100+1=200 공식’을 만들어 냈는데, 100이, 1%의 부족 때문에 ‘0’이 될 수도 있고, 1%의 정성으로 ‘200’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한 냉동새우 판매 회사가 유럽에 1000t을 수출했다가 항생물질 0.2g이 발견돼 손해배상과 새우 전량을 폐기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는 50억분의 1로, 새우를 손질하던 직원의 손에 묻어 있던 항생제 연고가 한 마리의 새우에 들어간 것이 발견되어 패기처분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13절)에서 잃은 양, 한 마리의 비유를 통해서 “작은 숫자의 소중함을” 강조하셨습니다. 100마리 중 한 마리는 숫자적으로 1/100에 불과 합니다. 그런데 “한 마리”는 1/100이 아닌 전체와 연결된 100% 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신체가운데 뇌의 무게는 약 1.5 Kg으로, 이는 몸 전체의 2%에 해당 되는 무게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도, 뇌의 중요성을 인체의 2%로 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거울이 1%만 깨어져도, 전부를 교체해야 하는 것은 1%가 전부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만찬예식을 행하실 때, 몸과 피, 전체를 상징하는 의미로 “떡과 잔을 주시며 나를 기념하라.”하셨습니다. “기념”은 “한 부분이 전체를 대신 한다.”란 뜻입니다. 주님은 아주 작은 “떡과 잔”을 통해서 주님의 최대 사역인 십자가와 부활을 상징하도록 하셨습니다.

주님은 과부의 적은 연보에 대해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고 말씀하셨으며, 보리떡 5개와 작은 물고기 2마리는 사람들의 눈에 아주 보잘 것 없어 보였지만, 주님은 이 작은 것을 통해 5000명이 먹고도 남음이 있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사과나무에 달린 사과는 셀 수 있지만, 사과 씨 속에 들어 있는 사과나무는 셀 수 없다.”라는 말과 같이, 우리가 가진 적은 것 하나 하나가 소중한 것은, 그 작은 것이 어떻게, 얼마만큼 결실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길 수 있길 바랍니다.

  1. 작은 수고와 열심을 업신여기지 말라.

몽골초원 유목민들의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습니다. 유목민들은 1년에 두 차례 이사를 하는데, 보통 10일 정도 걸린다고 했습니다. 이사 중 가장 큰 걱정거리는 양과 염소들이 길을 잃어, 찾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양과 염소를 잃으면 이동을 멈추고 찾아 나서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12절)“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작은 것에 대한 수고를 강조하셨습니다.

다윗이 그러하였습니다. (삼17:34-35)“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

작은 양 한 마리를 구하고자 자신의 목숨을 걸었습니다. 누가 봐도 어리석은 일로 보이지만, 하나님은 다르게 보셨습니다. 작은 양 한 마리를 지키기 위해 사자와 곰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워 구해 낸 다윗의 모습을 보신 하나님은 그에게 이스라엘을 통째로 맡겼습니다.

우리 힘으로 무슨 일을 하고, 선교를 하겠는가?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삼상14:6)“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한국에 처음 선교사들이 오게 된 것은 큰 교회나 선교단체가 아닌 몇몇 대학생들이 수업 후에 가진 기도회를 통해 파송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나의 믿음이 작습니까? 우리 교회의 숫자가 작습니까? 우리의 수고와 열심히 작습니까?

(눅12:32)“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작다고 얕보지 말고, 작은 것을 통해 역사하는 하나님을 능력을 바라보고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믿음 갖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