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의 속편, 집안에 있는 탕자

성경 : 성경 : 누가복음 15 : 25-32

제목 : 탕자의 속편, 집안에 있는 탕자

  1. 5. 8(어버이 주일)

“탕자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탕자비유 앞부분은 둘째 아들이 집을 나간 후 집으로 돌아 온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본문에서는 큰아들의 반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 “탕자의 속편, 집안에 있는 탕자”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아버지는 자식을, 큰 아들은 재산을 먼저 생각하였습니다.

탕자의 속편은 집나간 둘째 아들이 돌아와 파티를 여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돌아왔을 때,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잔치의 규모는 어마어마했습니다. (22-23)“제일 좋은 옷, 손에 가락지와 신발, 살진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잔치를 하고 있을 때, 큰 아들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29-30절)“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을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큰 아들은 크게 화가 났습니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행동이 못마땅하였습니다. 아버지는 큰 아들에게 둘째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 온 아들”, “잃었다가 다시 얻은 아들”이라고 했지만, 큰아들은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버린 아들”이라고 혹평하였습니다.

앞서 둘째 아들은(12절)“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했고, 큰 아들도 동생 못지않게 아버지보다 자신에게 돌아올 재산에 더 관심이 두었습니다. 두 아들의 공통점은 부모와 형제보다 자신에게 돌아올 분깃이 먼저였고, 재산 우선이었습니다.

여러분! 탕자비유의 핵심 교훈이 무엇입니까? 둘째 아들과 큰 아들 모두, 아버지를 떠난 탕자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둘째 아들은 자신의 몫을 챙겨 아버지를 떠난 탕자라면, 큰 아들은 아버지가 물려줄 분깃과 재산을 받기 위해 집안에 있는 탕자라는 사실을 말씀합니다.

사실, 부모와 자녀, 형제는 유산이 없어도 성립되며, 아버지와 형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도 많은 자녀들은 자신에게 돌아올 “분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아버지와 형제보다 돌아올 분깃과 재산에 우선권을 둔 잘못된 탕자의 가치관이 압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유산과 재물보다 부모, 형제자매가 소중하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 또한 탕자입니다. 내가 보기는 미운동생이고, 형님, 형제자매로 보일 수 있지만, 부모에게는 소중한 자녀입니다. 우리는 적어도 유산과 재산보다 부모와 형제자매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가족이 되길 소망합니다.

  1. 큰아들은 동생이 자신의 몫을 빼앗는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월로우 크릭교회를 시무했던 “빌 하이벨스” 목사님이 소개한 내용입니다. 미국 어떤 중소도시에 아주 큰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그곳 주민들이 이주하거나 세상을 떠나 담임목사도 없이 겨우 4 교인만 남게 되었습니다.

4사람밖에 남지 않은 교회의 가장 큰 고민은 교회가 부흥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누가 예수 믿고 교회에 나오겠다는 것이 가장 두려웠습니다. 이유는 교회당 내 묘지가 4구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새로 교회당에 오는 사람이 예수 믿으러 온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자신들이 묻힐 묘지에 대한 경쟁자나 혹은 침략자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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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이 돌아온 동생이 못마땅하게 생각한 것은 자신의 몫을 빼앗으러 온 자로 생각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인이 아우 아벨을 살인한 것은 경쟁자로 여겼기 때문이며, 요셉의 10형제들이 요셉을 미워하고 팔아넘긴 것은 아버지의 사랑과 독차지하고 가로챈 자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있는 욕심과 이기심은 부모와 형제를 적대자로 만들며, 경쟁자와 약탈자로 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분명 아버지는 큰 아들에게 “아버지의 것이 모두 네 것”이라 했는데, 이것은 상속자란 뜻입니다. 그럼에도 “염소 새끼라도 주지 않는다.”라고 분노하였습니다.

(29절)“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겼다.”란 “내가 종살이를 했다.”는 뜻입니다. 큰아들은 부자관계보다 “주인과 종의 관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를 왜곡함으로, 의무감에 얽매여 일했습니다. 여러분! 부모의 마음을 잘 모르겠으며, 아직도 오해하고 계십니까?

한국에 있는 부모들에게 자녀가 무엇인가?”물어 보았습니다. “결혼한 아들은 희미한 옛 그림자, 시집간 딸은 예쁜 도둑, 며느리는 좀도둑, 손자들은 떼강도, 며느리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딸은?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낳을 땐 1촌, 대학가면 4촌, 장가가면 사돈의 8촌이 된다.”

여러분! 부모와 형제자매, 가족은 경쟁자도 아니며, 부모의 사랑을 뺏는 약탈자도 아닙니다. (딤전5:8)“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좋은 믿음의 형제, 자매, 신실한 믿음의 자녀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1. 아버지와 탕자, 집 안에 있는 큰아들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비유하신 아버지는 바로 다름 아닌 “우리 하나님 아버지시며”, 돌아온 탕자는 세리와 죄인들이며, 그리고 맏아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는 큰아들과 탕자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나 큰 아들에게 분노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둘째 아들을 위해 잔치하였으며, 큰 아들에게 “얘야,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지 않느냐? 내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라고 너그럽게 용납하며 받아 주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 아버지는 많은 탕자들을 향해서 “돌아오길 기다리시며, 돌아올 때,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시면서 기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는 집에 있는 자들을 향해 돌아온 자들을 따뜻하게 맞아 줄 것을 부탁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큰 아들은 아버지의 설득으로, 동생을 용납하며 받아 주었을까? 해답을 주지 않고 침묵한 것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이 내리게 한 것입니다. 즉,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 스스로가 결정하고, 결단해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병원이 좋은 병원입니까? 크고 작은 병을 가진 자들이 병을 고치기 위해 찾아오는 병원이 좋은 병원입니다. 오늘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는 탕자뿐 아니라, 탕자를 비난하는 큰아들까지 용납하시는 신실하신 분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 나의 부모와 형제자매, 가족이 소중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나의 부모와 형제자매, 가족 간의 허물을 용납하고 받아 줄 수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둘째아들과 같이 집밖에서, 혹은 집안에 있는 큰 아들과 같이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온, 둘째 아들과 같이, 부모와 동생을 받아주고 용납하는 사랑할 수 있는 믿음의 자녀,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