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삶에 대한 해답

성경 : 고린도전서 15:12-20

제목 : 헛된 삶에 대한 해답

  1. 4.17(부활주일)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소망이 우리 성도들과 가정에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은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부활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씀을 통해서 “헛된 삶에 대한 해답”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헛된 삶에 대한 해답은 부활신앙입니다.

“허무주의”란 철학이 있습니다. “니힐리즘”이라고도 하는데 “니힐”은 “텅 빈, 가치가 없는”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허무주의는 무신론자들에 의해 만들어 진 철학입니다. 하나님 없는 세계에서 나온 허무주의는 이름과 같이 “삶의 목적과 의미, 가치가 없는 세계관”입니다.

여러분! “만약 나의 자녀가 공부하면 뭐하며, 직장 다니면 뭐하며, 결혼하면 뭐하나? 아무 소용도 없고 필요도 없어”라고 한다면, 얼마나 난감하겠습니까? 목적과 삶의 의미와 가치를 잃어버릴 때에 텅 빈 생각, 가치 없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00년 전, 고린도에서 이런 회의와 허무주의 사상이 팽배했습니다. (32절)“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고린도 사람들은 “인생이 별것 있나! 먹고 마시자”라며 허무주의로 인해 향락과 방탕에 빠져 있었습니다.

바울은 사람에게 찾아오는 헛된 삶은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다.”라고 하는 부활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라 지적하였습니다. (12절)“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속지 말라” 그런데 문제는 이런 생각들이 교회 안에까지 침투해 온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다.”라고 하는 무신론적인 세계관은 결국 괘락과 방탕, 본능적으로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현재의 삶이 아무리 만족해도 부활을 확신하지 못할 때, 내일에 대한 확신, 부활이 없는 삶은 허무할 수밖에 없고, 부도덕할 수밖에 없습니다.

30년 넘게 방탕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고백록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을 향해서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는 평안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현실에서 충실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고전15:58)“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흔들리지 않고 부활신앙을 확신하길 소망합니다.

  1. 헛된 믿음에 대한 해답은 부활신앙입니다.

세상에 믿음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의 차이는 믿음이 있느냐 않느냐 아니며 믿음의 대상의 차이입니다. 성경은 가장 먼저 믿음의 대상을 말합니다. (출20:3)“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믿음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으로 규정합니다.

그런 점에서“사도신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사도신경은 믿음의 대상이 그리스도시라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반석과 모래위에 세운 집 비유를 통해 기초의 중요성을 교훈해 주셨습니다. 부활신앙이 우리 믿음의 기초가 됩니다. (14절)“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너희의 믿음도 헛것이며” 12절부터 19절까지 계속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되고,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불쌍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태까지 몸과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고 수고한 모든 것들, 고난을 참고 기다린 것, 우리가 사랑한 것조차 헛되다는 말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11제자들은 3년 동안 주님을 따라 다니며, 갖가지 기적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부활신앙을 갖지 못했을 때, 주님을 부인하고 떠났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확신하지 못함으로, 옛 사람으로 돌아갔으며, 삶의 방향을 잃어 버렸습니다.

반면, 제자들이 부활을 확신한 후 (행4:19)“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부활을 믿지 못하던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낙심한 제자들을 생명력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였고, 사명자로 만들었습니다.

(고전15:20)“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우리 또한 주님과 동일하게 부활하게 됩니다. 확신하십니까? 확신하길 바랍니다. 주님의 부활과 나의 부활을 확신함으로 더욱 견고한 믿음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헛된 죽음에 대한 해답은 부활신앙입니다.

모든 인생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죽음”입니다.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 반드시 서야 합니다. 그런데 부활을 믿지 못하면 죽음 앞에 당당히 설 수 없습니다. 주님은 죽음 앞에 두려워 떨고 있는 자들에게 “무서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입니까?

(요11:25-26)“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부활신앙은 현재의 고난과 환난을 견디게 할 뿐 아니라, 죽음까지 무사히 통과하게 합니다.

여러분! 죽음 앞에 정복되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며 영웅도 왕도 죽음 앞에 보잘것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합니까? (고전15:52)“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아브라함 링컨은 “사람을 한두 번 속이는 것은 가능하나, 여러 사람을 항상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모든 사람을 항상 속일 수는 없습니다. 2천년동안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은 수많은 사람들이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현실의 삶에 대한 해답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과 나의 부활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믿고 수고하고, 참고 기다리고 바라는 믿음에 대한 해답도 예수그리스도의 부활과 나의 부활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 모두가 직면해야 하는 죽음에 대한 해답도 예수그리스도의 부활과 나의부활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헛된 삶과 믿음, 죽음을 이기게 하는 해답은 부활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과 나의 부활을 확신하므로, 우리에게 맡겨진 사역과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