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필요를 제공한 사람들

성경 : 마가복음 15:42-47

제목 : 주님께 필요를 제공한 사람들

  1. 4.10(종려주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란 말씀은 예수님 공생애를 함축해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이며, 금주는 고난주간입니다. 오늘은 “주님께 필요를 제공한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출생 장소를 제공한 마구간 주인입니다.

인류의 구주 되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에 처음 그를 맞이한 곳은 마구간이었습니다. 누가는 (눅2:8)“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당시 각박했던 인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무명의 한 사람이 출생할 공간, 마구간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고작 마구간을 빌려 준 것이 대단한 것이냐?”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출산을 위해 마구간이 적합하다 않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시기에 최소한의 것을 제공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다니며, 굶주리고 있을 때 바르실래가 음식을 제공한 적이 있었습니다. 훗날 다윗은 바르실래에 베푼 은혜를 기억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삼하19:38)“내가 너의 좋아하는 대로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24장 리브가는 엘리에셀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고 이삭의 아내가 되었으며, 야곱과 모세 또한 양떼에게 물을 먹이고, 각각 아내를 얻었습니다. (막10:42)“또 누구든지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지금 나의 책상서랍에서 뒹굴어 다니는 1유로 동전은 별로 가치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한 가족이 하루 생활비로 사용되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절실한 사랑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나에게 아무리 무가치한 것이라도, 타인에게는 소중한 것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1. 나귀를 제공한 나귀 주인입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기 위해 제자에게 “맞은 편 마을로 보내어 매여 있는 나귀를 풀어 끌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매여 있는 나귀를 풀어 오려고 하자, 나귀주인이 왜 나귀를 푸느냐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주가 쓰시겠다.” 하자 주인은 나귀를 풀어 주었습니다.

나귀는 짐을 실어 나르거나, 이동할 때 없어서 안 될 교통수단입니다. 오늘날 직장과 사업하는 사람에게 자가용이나 다름없습니다. 주님의 요구는 이해하기 쉽도록 표현한다면, 매일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사람에게 차를 빌려달라는 것과 같은 다르지 않습니다.

4복음서 저자는 나귀 주인이 나귀를 내어줌으로 불편은 물론, 희생을 감수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마구간이 주인에게 최소한의 것이었다면, 나귀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주님은 때때로 우리에게 “최소의 것”과 함께 “필수적인 것을 요구”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최상의 것, 독자 이삭을 요구하였지만 기꺼이 순종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음과 목숨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하신 것입니다. 최상의 믿음을 소유할 수 있길 바랍니다.

  1. 십자가를 진, 구레네 시몬입니다.

주님은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했지만, 끝까지 질 수 없게 되자 군병들은 구레네 시몬에게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하였습니다.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졌지만, 이후 자신과 온 가족이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안디옥과 로마교회를 섬기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자원된 마음으로 하라”교훈합니다. 그렇지만 즐겁고 기쁜 것만 할 수 없습니다. 공부나 직장, 사업, 대인관계 등, 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때로 구레네 시몬과 같이 억지로 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눅14:27)“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하셨습니다. 우리가 지고 있는 짐이 무겁게 여겨질지라도 참고 감당할 때 오히려 그것이 유익이 되기도 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사람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요나는 마지못해 두 번째 니느웨로 가서“40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무너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모든 니느웨 백성, 12여만 명이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부모 강요나 친구 따라 교회에 왔다가 아내를 교회 태워주다 집사, 장로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저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지금 내가 진 짐이 무겁고 억지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유익을 주기 위한 것임을 알고, 나에게 지워진 십자가를 잘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1. 무덤을 제공한 아리마대 요셉입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6시간이 지난 후 숨을 거두었습니다. 예수님의 최후의 모습을 지켜보며 예수님을 장사한 사람은 아리마대 요셉입니다.

(43절)“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돋보이는 것은 “당돌히”라는 말입니다. “겁 없이”란 말입니다

요셉은 처음부터 용기를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요19:38)“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 은휘란 “숨어있다.”로, 그는 처음 유대인을 두려워하였고, 공개적으로 예수를 옹호하지 못한 “숨어 있는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주님이 돌아가신 후 살기등등한 빌라도, 공회원에게 당당하게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하였습니다. (요19:38)“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 가니라.”(45절)“내어주는 지라” 요셉은 자신이 묻히기 위해 이미 파 놓았던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때론 주변의 눈길 때문에 숨어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요셉처럼 불의 앞에 숨어 있는 제자가 아닌, 두려움 없이 진리를 믿고 따르는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은 한마디로 “머리 둘 곳이 없는 삶”을 사시면서 모든 것을 빌려 쓰셨습니다. 이런 가운데 주님에게 출생 장소와 나귀, 예수님을 대신 십자가를 지며, 무덤까지 제공한 헌신된 자들이 있었습니다.

찬송가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묻고 있습니다. 주님께 받은 은혜를 감사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