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로 때문에

성경 : 요한복음12:9-11

제목 : 나사로 때문에

  1. 2.27

부사로 사용되는 접속사 “때문에”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됩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때문에 기름 값이 너무 올랐다.” “코로나 때문에 격리 중이다.” 분문에도 “때문에”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오늘은 “나사로 때문에”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나사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 나왔습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라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아니면 누가 꾸몄겠지?”라는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상황은 우리의 생각과 달리 정반대였습니다.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다.”라는 소문을 듣고, “큰 무리들이” 살아난 나사로를 보기 위해 모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를 뿐 아니라,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나아왔습니다. (9절)“큰 무리가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사람들이 살아난 나사로를 보고자 한 것은 “진자 살았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면, 예수님을 보고자 한 것은 “권세와 능력을 가진, 메시야”를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사람들은 “예수가 죽은 자를 살린 것을 보니 메시야가 맞구나!”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1, 주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은(요5:28)“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라고 하신 말씀을 확정해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주님은 무리들에게 모든 사람은 나사로와 같이 다시 살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특히 오라비를 잃고, 슬퍼하는 나사로의 누이 동생들인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함이었습니다.(요11:25-26)“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지금도 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동일한 말씀으로 묻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은 저와 여러분도 나사로와 동일하게 다시 살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죽어서 다시 살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그리스도가 죽음 가운데 게시지 않고 다시 살아 나셨다.” 선언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을 통해 우리도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1. 나사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최고 종교지도자인 대제사장들이 예수님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까지 죽이려 하였습니다. (10절)“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11:53)“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 하니라.” 이날이란 “주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날”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며, 이토록 야단들입니까? (11:45)주님이 나사로를 살린 후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고, 관심이 예수님에게 쏠리게 되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들 대부분이 사도개인들로, 그들은 부활도 천사도 믿지 않았습니다. (행23:8)“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하더라.”

이런 상황에서 “예수가 죽은 나사로를 살렸다.”하면,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르쳤던 모든 것이 거짓이 되고, 자신들은 거짓의 집단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은 그들의 정체성에 대한 치명적 도전으로 여겼기에 반드시 막아야 했었습니다.

여러분!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진리입니다. 베드로 요한이(행4:12)“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이 없다.”하자 사두개인들은 (행4:18)“도무지 예수의 이름을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지도 말라” 협박했지만, 베드로 요한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흔히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불교나, 다른 종교는 타종교도 인정하는데, 기독교만은 자기들만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데, 옹졸하고 신사답지 못하고, 독선적입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 그럴 수 있겠구나? 왜 기분 나빠하는지 이해는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거짓은 거짓에 대하여 관용할 수 있으나, 진리는 거짓에 대해 관용할 수 없습니다. 가짜는 가짜를 나쁘다거나, 가짜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비 진리에 대하여 “진리와 동일하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24K 금반지를 끼고 있는 분 있지요! 어떤 사람이 “가짜”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신 있게 진짜라고 말할 것입니다. 진짜를 진짜라고 말하는 것을 고집이 세다거나 독선적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만 구원이 있다 말하는 것은 고집이 아닙니다. 베드로 사도는 “금보다 귀한 믿음”을 가졌다고 하였습니다. 금보다 귀한 믿음을 꼭 붙잡고 살 수 있길 소망합니다.

  1. 나사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길을 가다 돌이 나타나면 약자는 걸림돌이라 하고, 강자는 그것을 디딤돌이라 말한다.” 토마스 카알라일의 말입니다. 나사로 때문에 예수를 죽이려는 사람이 있었던 반면, 나사로 때문에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1절)“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사도행전 7, 스데반이 설교했을 때, 사람들이 스데반에게 달려들어 돌로 쳤지만, 사도행전 2장 베드로가 설교를 했을 때는 무려 3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말씀을 받은 사람들의 반응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우리 삶에서도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집값이 올라가면 세입자는 걱정이지만, 집주인은 좋습니다.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가 되지만, 독사가 물을 마시면 독이 됩니다. 동일한 햇빛이지만 진흙을 비취면 돌과 같이 단단하지만, 얼음위에 비취면 물이 됩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나사로가 살아난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없었지만, 대제사장들에게는 적대적인 마음을 갖게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미련한 것이지만, 믿는 자들, 저와 여러분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나사로 때문에 주님을 믿었듯이, 나와 우리 가정, 우리 교회 때문에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해야 합니다. “나 때문에 실망하겠다.”라는 말보다 “나 때문에 용기를 얻었다.”라는 말을 듣도록 힘써야 합니다.

(다12:3)“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했습니다. “나 때문에 시험 받고, 나 때문에 낙심하는 사람보다, 나 때문에 즐겁게 믿음 생활하는 사람이 많아지도록, 힘쓰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