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 가운데 새 힘을 얻은 엘리야

성경 : 왕상 19 : 4-10

제목 : 낙심 가운데 새 힘을 얻은 엘리야

  1. 2.27

19장에 기록된 엘리야는 18장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18장 담대했던, 엘리야와 달리 19장에는 “나는 조상들보다 낫지 못합니다. 나는 죽고 싶습니다.”고 낙심했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 “낙심 가운데 새 힘을 얻은 엘리야”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엘리야는 낙심하며, 도망쳤습니다.

엘리야는 몇 가지 상황으로 낙심하였습니다. 먼저, 엘리야는 3년 6개월(약5:17) 기근 중 육체적으로 심히 지쳐 있었지만, 홀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싸워 승리했습니다. 그럼에도 아합과 이세벨이 약해지지 않고, 오히려 많은 선지자들을 죽이며, 자신까지 죽이려 했습니다.

겁먹은 엘리야는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단숨에 100 Km이상 떨어진 브엘세바로 도망을 갔습니다. 브엘세바는 이스라엘 땅이 아닌, 유다 땅으로 도피하여 “하나님 내 생명을 거두어 주옵소서! 나는 조상들보다 낫지 못합니다.”라며, 열등의식에 사로 잡혀 낙심하였습니다.

이를테면, 모세는 출애굽의 사명을,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을, 다윗은 이스라엘을 굳건한 반석 위에 세웠는데, 나는 하늘에서 불이 내리고 비를 내리게 했지만, 오히려 아합과 이세벨은 나를 죽이려 하지 않습니까?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이쯤해서 손을 떼고 싶습니다.

누구든지 남과 비교하면 금방 비참하게 되고 우울하게 됩니다. 참새가 독수리와 비교하거나, 고양이가 호랑이와 비교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비교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받은 은사와 재능이 서로 다릅니다.

저는 유럽총회에 유능한 목사님들이 많지만, 비교해 본 적이 없으며, 자녀 또한 타인의 자녀들과 비교해 본적이 없으며, 나아가 우리교회와 다른 교회를 비교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가진 것, 나에게 주어진 것을 사랑하고, 받아들일 때,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낙심한 것은 과대한 자책감이었습니다. (10절)“여호와께 열심히 유별(특심)하오니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엘리야는 3년 6개월 동안 열심을 다했지만, 오히려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고, 범죄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엘리야는 자신이 맡은 사명을 다했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음을 보고, 크게 자책하며 낙심하였습니다.

우리 또한 타인과 비교하거나 수고하고 땀 흘렸는데, 열매가 없을 때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고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갈6:9)“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씀을 확신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1. 격려를 받고 새 힘을 얻었습니다.

엘리야는 3년6개월 기근과 바알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싸움으로 육체적으로 쇠잔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굳게 의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지만, 육체적인 한계는 그를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지치고 낙심한 엘리야를 잠재우고 먹게 하고, 쉬게 하도록 하였습니다.

(5절)“로뎀나무 아래서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일어나서 먹으라.” 엘리야는 먹고 자고 난 후에 새 힘을 얻었습니다. 사람은 먹지 않고, 쉬지 않으면 피곤할 수밖에 없으며, 잘 자지 못하고 먹지 못하면 예민해 지고, 짜증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제대로 먹고 마시고, 자고, 쉴 때 정신과 육체가 건강하게 작동되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격려하다.”란 말로, “격려”는 “분발시키다.”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격려는 잠재되어 있는 의욕과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합니다. 어릴 때 팽이를 쳐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팽이가 넘어지려 할 때, 조금만 쳐주면 다시 돌아갑니다. 이것이 격려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살전1:3)“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를 끊임없이 기억한다.”라고 했으며, 빌립보교회에는 “내 괴로움에 동참하였으며,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라고 격려했으며, 주님은 나다나엘에게 “네 속에는 간사한 것이 없다.”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잡 코리아란 사이트에서 “가장 격려가 되는 말이 무엇인가?”란 질문에 “아직 당신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격려는 어린이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닌, 모든 사람, 특히 가족과 성도, 가까운 이웃에게 사랑과 선행의 격려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침체되고, 낙심될 때에 “식사 잘 하십니까?, 어떻게 지나십니까?”, “밤에 잠은 잘 주무십니까?” 작은 관심과 격려는 큰 용기가 됩니다. 요즘같이 힘들 때 따뜻한 격려의 말 한 마디는 큰 힘이 됩니다. (히10:24)“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사랑과 선행을 격려함으로, 새 힘을 얻을 수 있길 소망합니다.

  1. 엘리야는 혼자가 아님을 알고, 새 힘을 얻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과 싸울 사람이 아무도 없고, 혼자만 남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결과 낙심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18절)“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 천인을 남기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는 “7천명이 남았다.”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엘리야는 자기 혼자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칠천 명이 남았다는 말씀을 듣고 귀를 의심했을 것입니다. 사람은 나 혼자라고 생각할 때에 약하게 되고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엘리야도 이와 같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도 종종 엘리야와 같이 “주님 왜 나 혼자만 남았습니다.”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대마다 세상과 짝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사람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나 혼자 봉사하고, 나 혼자 기도하고, 나 혼자 믿음을 지킨다고 생각할 때에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다수의 믿음의 사람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고, 충성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대가 악하지만 하나님의 교회가 부흥되길 원하는 진실한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롬11:5)“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나 홀로 믿음을 지키고, 교회를 섬기고 있다는 생각은 편협한 생각입니다. (히12:1)“구름같이 둘러 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아직도 믿음의 동역자들이 많다는 것을 기억하고 새 힘을 얻기를 소망합니다.

엘리야는 타인과 비교하며 열심히 수고했지만, 열매가 보이자 않자 자책하며 낙심하였지만, 격려를 통해 새 힘을 얻었습니다. 엘리야는 혼자가 아닌 7천명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새 힘을 얻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홀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나 연약함 때문에 자책하지 말고, 아직도 주님의 나라를 사랑하고 섬기는 자들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새 힘을 얻을 수 있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