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경계하고, 점검해야 할 것

성경 : 시편 15 : 1-5

제목 : 항상 경계하고, 점검해야 할 것

  1. 2.13

본문은 다윗의 기도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곁길로 가지 않기 위해 항상 경계하며 부단히 노력하고 힘썼던 3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발과 입과 그리고 눈이었습니다. 오늘은 다윗의 기도를 통해 “항상 경계하고 점검해야 할 것”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나의 발, 어디로 향하여 가고 있는가?

1951년 폴란드 생케비치의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기독교 영화 “쿠오바디스”는 폭군 네로 황제가 기독교를 박해할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박해로 교인들을 두고, 로마를 떠나는 중에, 반대편에서 로마로 향해 들어오시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놀란 베드로는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쿠오바디스)묻자, 주님은 “지금은 내가 가는 곳으로 따라올 수 없지만,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대답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성도들을 두고 로마를 떠나려던 베드로가 다시금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로마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다윗은 한 가지 소원과 목표가 있었습니다.(1절)“주의 장막과 성산에서 생활하는 것”이었습니다. (시편27:4)“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장막과 성산”은 구약의 회막과 성전으로, 오늘날로 표현하면 “예배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전을 앙망하며 사모하였으며,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빨리 곳으로 달려가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무슨 소원과 목표가 이러한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다윗은 참으로 오랜 기간 쫓겨 다니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는 자리에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 예배할 수 없었던 시기는 환난의 시기였고, 고통과 불행의 시기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도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애굽에 종살이 할 때, 바벨론포로 생활할 때였습니다. 우리 한국도 예배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36년 일본의 통치를 받을 때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코로나를 비롯 여러 이유로, 온전히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지금 우리가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예배가 무시당하고, 과소평가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요4:23)“아버지께서는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예배를 사모하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1. 나의 입,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심리학자들은 사람이 기분이 좋으면, 입이 커지면서 꼬리부분이 올라가지만, 남을 비방하거나 흉볼 때는 입이 작아지고 입 꼬리 부분이 내려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입모양이나 표정을 통해 사람의 마음 상태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우리의 입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가 말하고 있습니다. (3절)“그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이웃에게 악과 비방하지 아니하며” 심라학자들이 말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면, 다윗은 “나는 상대방에게 말할 때, 입이 작아지고, 입 꼬리 부분이 내려가지 않겠습니다.”고 했습니다.

축구경기에서 공 대신 사람을 밀쳤을 때, 야구에서 타자가 친 공이 선 밖으로 나갔을 때 파울이라 합니다. 파울은 규칙을 위반했다는 뜻입니다. 다윗이 말한 허물과 비방이란 단어가 파울이란 뜻입니다. 대인관계에서 분쟁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규칙을 어긴 “파울의 말”때문입니다.

야고보는 혀는 지옥 불에서 나오는 불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약3:6)“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말의 파괴력 또한 화마가 지나간 것처럼 참혹합니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엡4:25)“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지혜자는 (잠25:11)“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은 쟁반에 담은 금 사과와 같은 말을 몇 개 골라 보았습니다.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감사해요

데이라는 사람은 말하기 전에는 반드시 세 황금 문을 지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첫째, 그 말이 꼭 필요한가?” “둘째, 그 말이 진실한가?”, “셋째, 그 말이 친절한 말인가?” 세 문을 지나서 네 입에 왔거든, 크게 외치라고 하였습니다.

말에 자유로운 사람이 없기에 우리 모두는 입술을 경계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다윗은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악하고 비방하는 말을 삼가고, 덕을 세우고 유익한 말을 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1. 나의 눈, 무엇을 보고 있는가?

주님은 (마6:22-23)“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시력이 좋아야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하다”는 “정확하다”는 뜻이며, “나쁘다”는 “부정확하다.”란 뜻으로, “눈이 밝다”란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사람이 옳고 그릇된 것을 분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다윗은(4절)“망령된 자와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 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잠언은 옳고 그릇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지혜”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겉모양과 외모를 우선시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행13:22)“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하셨습니다. 다윗은 30세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40년간 통치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을 보고,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 성에 물이 넉넉한 것만 보았지만, 죄악의 도시를 보지 못했습니다. 가룟유다는 돈에 눈이 가려 예수님을 은 30에 팔았습니다. 주님께서 채찍을 들고 돈 바꾸고 장사하는 자들을 성전에서 좇아낸 것은 바로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욕심과 이기심을 쫓아내신 것이었습니다.

네 명의 소경이 코끼리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보았기에 서로 다르게 말할 수밖에 없었듯이 사람이 보고 판단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감추어져 있는 마음을 소중히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나의 발과 입, 눈이 바르게 사용되도록 항상 경계하고 살피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발과 입, 눈이 악의 도구가 아닌, 덕을 세우고, 유익한 도구로 사용되도록 힘쓰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