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창세기 13 : 8-13
제목 : 선택의 세 가지 기준
2021.12. 5
우리는 매일, 매 순간마다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선택의 중요성뿐 아니라, 무엇을 기준하여 선택해야 할 것인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사람, 아브라함이 선택한 것을 통해 “선택의 세 가지 기준”이란 말씀으로 은혜를 나고자 합니다.
- 선택의 기준은 양보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식사 중 많은 교훈을 했는데, 그것을 “식탁담화”라고 불렀습니다. “식탁담화”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두 마리 산양이 좁은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는데, 보통 산양은 양보하지 않고 서로 싸워 둘 다 물에 빠지는데, 두 산양이 양보하여 위기를 극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 조카 롯 사이에 다툼이 있었습니다. 다툼의 원인에 대해(6-7절)“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아브라함과 롯의 가축이 많아지면서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롯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9절)“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 하냐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였습니다. 가족의 생계가 걸린 중대한 문제였지만, 아브라함이 롯에게 모든 것을 양보함으로 다툼을 극복하였습니다.
믿음의 조상 이삭 또한 몇 차례나 수고하여 판 우물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빼앗았지만, 다투지 않고 양보하였습니다. 그러자 훗날 블레셋의 아비멜렉 왕이 이삭을 찾아와 (창26:28)“너와 우리 사이에 평화 언약을 맺자”고 하면서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고 인정하였습니다.
얼마 전, 저의 아들이 “어떤 학교에 교사를 지원하는 것이 좋겠습니까?”자문해 왔습니다. 그 때 저는 “다른 사람이 지원하지 않고, 힘들다고 생각하는 학교를 택하라”했습니다. 이후에 아들이 제게 말하길, 아빠 때문에 엄청나게 고생했지만, 좋은 경험이 되어 오히려 유익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시대에 있습니다. 그러나 운전하면서, 지하철을 타면서, 양보가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양보는 손해 보는 것이 아니며, 내가 가진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며, 무엇보다 양보는 축복을 받는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탄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양보하겠다는 사람입니다. 주님도 하늘 보좌를 포기하시고 낮고 비천한 사람의 몸으로 오심으로,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가정과 공동체가 화목하도록 양보하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 선택의 기준은 화평입니다.
아브라함은 다툼으로 인한 이익보다 화평을 택했습니다. (8절)“아브람이 롯에게 우리는 한 친족이라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아브라함은 다투어서 이익을 얻는 것보다, 비록 손해를 보더라도 화평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이 롯에게 우리는 골육이라”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분쟁을 해결키 위해 아브라함이 롯을 먼저 찾아갔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연장자가 손아래 사람을 찾아갔다는 의미가 아니라 “믿음이 있는 사람이 더 큰 책임을 느꼈다”는 뜻입니다. 또한 아브람은 문제해결을 위해 “우리는 한 골육” 이라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이것은 우리는 싸워야 될 대상이 아니며, 서로 적이 아닌 한 가족이란 사실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동양 문화권에서는 무언가 잘 못되었을 때 아래 사람이 윗사람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아브람이 롯을 먼저 찾아가서 화해를 청하였습니다. 가족이든지, 직장이든지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내가 먼저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갈등을 푸는 실마리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단순히 나이가 많은 자가 아니라, 갈등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신의 이익보다 화평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자이며, 가만히 분쟁이 해결되길 바라는 것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 가질 태도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당신이 먼저 사과하면 하겠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믿음의 사람의 태도가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은“여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동생 미안해, 내 생각이 짧아서!”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소아시아 흩어져 있는 교회들을 순방할 때마다 그의 가슴과 머리는 오직 교회와 성도들이 화평과 평안한 가운데 거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또한 서신의 마지막 부분에는 언제나 화평과 안부를 당부하고 끝맺었습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퇴니스는 “오늘날 사회가 점점 정신 공동체에서 이익 공통체로 변해간다.”라는 말과 같이 인간관계의 따뜻함보다는 이해관계, 법적인 관계로만 치닫고 있는 것을 봅니다. 화목을 깨트리지 않도록 자신을 점검하여 공동체가 화평하도록 힘쓰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 선택의 기준은 영적인 가치입니다.
일반적인 선택의 기준은 “어느 것이 유익하며 이익이 되는가?”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놓쳐서는 안 될 것은 영적인 부분입니다. 영적인 부분은 눈에 잘 보이지 않고, 계산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과소평가하기 쉽습니다.
롯이 그러했습니다. 롯은 눈에 보이는 넉넉한 물과 넓은 들판과 소돔 고모를 보고 결정했습니다. (10절)“온 땅에 물이 넉넉하여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더라.” 이것은 애굽문명의 화려함 이면에 숨어 있는 죄악 된 도시를 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롯은 영적인 것을 과소평가 했습니다. (13절)“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벧후2:)“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반면, 롯이 좋은 땅을 택하고 떠난 후에 아브람에게 남겨진 땅은 척박한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브람은 그 땅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은 (15절)“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이기에 그 땅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히브리 기자는 영적인 가치를 내팽개친 에서를 망년된 자라고 하였습니다. (히12:16)“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헛되고 거짓된 영혼과 마음)자가 없도록 살피라” (창25:32)“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에서는 하나님이 주신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을 뿐 아니라, 팥죽 한 그릇에 팔았으므로 망년된 자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영적인 자산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 직분, 은사들은 어렵고 급하다고 해서 세상의 어떤 것들과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양보와 화평, 그리고 영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선택하였습니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때, 양보와 화평, 영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