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을 통해서 배운다.

성경 : 요한 31 : 9-12 / 제목 : 세 사람을 통해서 배운다.

2021.11. 7

요한 3서는 요한 2서에 이어 신약에서 두 번째로 짧은 성경으로, 네 사람이 등장합니다. 저자인 사도요한과 편지를 받는 가이오, 그리고 디오드레베와 데메드리오입니다. 오늘은 사도요한이 기록한 본문을 통해 “세 사람을 통해서 배운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가이오를 통해 신앙의 균형을 배운다.

체조에서 평균대라는 경기가 있는데 10cm정도 되는 평균대 위에서 걷기와 뛰기 돌기 등 동작을 합니다. 평균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이며, 균형을 잃으면 곧장 아래로 떨어집니다. “균형을 잃는 다.”는 것은 “위험하다.”는 뜻이며,” 결국 넘어지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가이오에 대해 두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1절)“참으로 사랑하는 가이오”, (3절)“진리 안에서 행한다.”라고 칭찬했습니다. 이것은 가이오에 대한 믿음의 표현으로, 가이오는 신앙의 기초가 되는 “사랑과 진리의 균형”을 갖추었다는 것을 표현한 말입니다.

사랑과 진리는 신앙의 본질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인 동시에 진리의 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한 진리이시며, 사랑의 본체입니다. “사랑과 진리”는 우리가 믿는 믿음의 뿌리로 동전의 양면과 같이 분리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요한은 에베소교회가 진리를 지킨 것에 대해 칭찬하였습니다. (계2:2-3)“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또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진리를 포기하지 않고 붙잡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반면에 에베소교회는 고난 가운데서 진리를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잃어버림으로 책망을 받았습니다. (계2:4)“너를 책망 할 것이 있나니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것은 하나님은 진리인 동시에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초기 한국기독교는 진리 운동 그 자체였습니다. 일본의 신사 참배에 항거해 순교를 기꺼이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약점은 사랑이 부족했습니다. 진리를 주장하였지만, 사랑을 잃어버림으로, 서로 다투고 분쟁하였습니다.

기독교는 진리의 종교요, 동시에 사랑의 종교입니다. 요한은 1,2서에서도 “사랑가운데서 행하고, 진리 안에 거하라”고 거듭 당부하였습니다. 비록 시대가 어둡다 하더라도 우리 또한 가이오와같이 “사랑가운데서 행하고, 진리 안에 거하라”는 성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1. 디오드레베의 반면교사를 통해 배운다.

경영학에서 메기 이론이란 것이 있습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가 고안한 것으로, 어부들이 북해에서 잡은 청어를 런던까지 이동해 오는 동안 죽게 되자, 수조안에 큰 메기 한 마리를 넣고 이동하자 청어는 메기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동안 런던에 도착하기 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을 착안하여 만든 이론입니다.

오늘날 조직사회나 기업들도 “메기 이론”을 적용하고 있는데, 회사나 부처 내, 메기와 같은 사람을 두거나 의도적으로 상사들이 부하직원들을 괴롭히고 들볶게 하여 생산성을 높이려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좋은 점이나 잘한 것을 보고 배웁니다. 또한 잘못된 것을 통해서도 배웁니다. 이것을 “반면교사”라 합니다. 요한은 디오드레베를 반면교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9절)“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 (10절)“그는 악한 말로 비방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으뜸 되기를 좋아한다.”란 말은 “다른 사람을 자기 발아래 두는 것”을 말하며, “악한 말로 비방한다.”란 “고의적으로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은 디오드레베의 부정적인 행동을 통해 이렇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11)“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첫 번째 편지에서 “너희는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상 숭배하지 말라”, “너희는 광야 백성들처럼 음행하지 말라”, “너희는 광야 백성들처럼 원망하지 말라”고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을 반면교사로 삼을 것을 교훈하였습니다.

타산지석이란 말이 있습니다. 타인이 당한 일이 나에게 교훈이 된다는 말입니다.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였지만 양심에 가책이나, 자신이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외삼촌에게 사기를 당한 후에 비로소 자신이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디오드레베를 반면교사로 사용하신 하나님께서 타인을 통해 우리 자신들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우리는 디오드레베를 통해 나는 교만하지 않아야지” 거울삼을 수 있길 바라며, 악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길 힘쓰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1. 데메드리오를 통해 인정받는 삶을 배운다.

사람들은 인정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모릅니다. 정치인들은 국민으로부터, 남편은 아내로부터,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자녀는 부모로부터, 직장인은 상사와 회사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노력합니다. 인정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그러나 인정받을 때보다 더 큰 기쁨이 없습니다.

그런데 데메드리오는 인정받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12절)“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거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거가 참된 줄을 아느니라.” 그는 한 두 사람이 아닌,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고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진리에게 인정을 받았다.”라고 말합니다. 진리가 누구입니까? 예수그리스도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님으로부터 인정받는 것보다 가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주님은 수로보니게여인에게 네 믿음의 크도다.)

그런데 데메드리오는 인정을 받기까지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약1:12)“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께 인정함을 받지 못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행동과 태도는 인정을 받지 못하였으며, 한 달란트 받은 자 또한 인정함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시험을 거친 후에야 옳다 인정함을 받아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사도요한이 우리들에게 세 가지 교훈을 해 주셨습니다. 첫째는 가이오가 가진 “사랑과 진리로 균형 잡힌 믿음”갖도록 하였으며 둘째, 디오드레베와 같은 악한 행실을 삼갈 할 것과 셋째, 데메드리오와같이 “인정받는 삶”을 살도록 교훈해 주셨습니다.

사랑과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삶을 통해, 사람과 하나님께 인정받는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