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성경 : 누가복음 8 : 22-25

제목 :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1. 9.19

오늘 본문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큰 폭풍을 만나 배가 파선 위기에 처했을 때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제자들이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했던 말씀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큰 광풍이 일어날 때입니다.

성경에 “사랑하라”는 말보다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하는 말씀이 더 많습니다. 성경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366번 기록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어떤 분은 1년이 365일인데, 366회 기록된 것은 하나님이 윤달까지 계산하셨기 때문으로, 사람은 매일 “두려워하고 있다.”라고 해석했습니다.

주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를 건너갈 때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이때 상황을 23절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광풍으로 바다 물이 배 안에 가득 찼습니다. 배는 곧 침몰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제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호소하였습니다.

성경에서 큰 풍랑이 일어난 경우가 세 번 있었는데, 풍랑이 일어난 이유까지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째, 요나가 탄 배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욘1:4)“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도망가는 요나를 막아 니느웨 백성들에게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키 위한 풍랑이었습니다.

둘째, 27 바울이 지중해에서 “유라굴로”라는 큰 광풍을 만나 “알렉산드리아”호가 파선되어 멜리데 섬에 도착하였습니다. 풍랑으로 바울은 멜리데 섬에 살고 있는 토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추장을 비롯한 멜리데 섬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셋째, 오늘 본문입니다. 주님은 광풍을 통해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셨을 뿐 아니라 비록 주님이 함께 배에 계신다고 하더라도 풍랑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바다에서 언제 폭풍이 불어올지 예측할 수 없듯이 우리의 삶 또한 언제, 어디에서 폭풍이 불어올지 알 수 없습니다. 정말 내일을 모르는 것이 우리 인생이며, 우리의 선택과 의지로 되어 지지 않은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결혼, 직장, 사업, 자식, 계획한 일 등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가 주님과 함께 살아가더라도 예기치 않게 폭풍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폭풍가운데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며,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해 주시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확신하며,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1. 경제적인 손실이 있을 때입니다.

갈릴리 바다의 폭풍은 생명의 위험은 물론이지만, 막대한 경제적인 손실을 가져오기에 충분했습니다. (막4:36)“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라고 “배”가 복수인 것으로 보아 광풍으로 여러 배들이 파선되거나 깨어지면 경제적인 손실 또한 적지 않게 됩니다. 배는 일터요, 직장이요, 삶의 터전입니다. 삶의 터전이 위협을 받을 때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할 수밖에 없습니다.

1991, 제가 라스에 있을 때, 30년 전 경험한 일이지만 배가 바다에서 파선하여 31명 선원전원이 바다에 수장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가 출항예배를 드린 후 일주일 후 조난 소식을 듣고,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조난 소식을 듣고 한국에서 유가족들이 와서 아들, 남편, 아버지를 살려내라고 난리가 났습니다.

누구도 유가족들을 제어할 수 없었고, 대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쯤 지나자 아들, 남편, 아버지 살려내라 했던 분들이 “얼마 보상해 줄 것인가?”라는 문제로 바뀌었습니다. 5천만은 적고, 1억을 주면 합의하겠다는 것을 보면서, 경제적인 문제가 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처음 코로나가 시작하였을 때, 하루에 몇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러다 나도 죽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죽는 두려움보다 사업이 어떻게 될 것인가? 살림살이 어떻게 될 것인가? 바뀌었습니다.

사람에게 먹고 사는 문제, 경제적인 문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한 것은 의식주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산으로 피하였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도 외국에 살면서 흉년을 만났으며, 이삭은 생영과도 같았던 우물을 팠을 때, 이웃사람들이 우물을 흙으로 매우기도, 빼앗기도 하였습니다. 요셉이 총리로 있을 때, 7 년의 흉년을 경험하였습니다. 이럴 때 “주여 우리를 살려주옵소서!”라는 말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 또한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간절히 부르짖는 일입니다. 부르짖읍시다. 그래서 어려운 난관을 극복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1. 믿음이 적을 때입니다.

(23절)“광풍”이란 헬라어 “메가”로, 메가톤 급 광풍이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을 때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크다는 “메가톤”이란 말입니다.

반면,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 “믿음이 어디 있느냐?”하셨고, (마8:26)“믿음이 작은 자들아”하셨습니다. 큰 광풍과 작은 믿음이 서로 대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즉, 두려움과 믿음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믿음이 적을수록 두려움을 갖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빛의 화가 렘브란트는 본문을 배경으로 “폭풍가운데 예수님과 제자들”이란 그림을 그렸습니다. 칠 흙 같이 어두운 밤에 배는 거의 45도쯤 기울어진 상태에서 겁에 질린 제자들, 돛대를 붙잡은 제자들, 예수를 깨우는 제자 등 다양한 모습으로 생동감 있게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배에 탄 사람은 예수님과 제자, 13명이 아닌 14명으로, 렘브란트 자신을 포함시켰습니다.

그런데 14사람 중 오직 한 제자만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두려움을 만날 때 기도하는 사람이 아주 적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두렵고 걱정되는 일들이 많을 것입니다. 사업을 계속 지탱 할 수 있을 것인가? 언제까지 직장 생활할 수 있을까?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할 수 있을 것인가? 자식들이 반듯하게 자랄 수 있을까? 생각하면 두려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적을수록 두려움이 크지만, 아무리 두려움이 크더라도 믿음을 두려움을 이기게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마28:20)“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잠37:5)“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주님께서 약속한 말씀을 붙잡고 두려움을 이길 수 있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