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뿌리, 어떻게 할 것인가?

성경 : 히브리서 12 : 14-17 /  제목 : 쓴 뿌리, 어떻게 할 것인가? / 2021.07.25

곡식이 자라는데 가장 큰 장애는 “잡초”입니다. 본문에 “쓴 뿌리”란 우리 삶에 악한 영향을 끼치는 것들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로, 우리 삶에 악영향을 끼치는 쓴 뿌리가 무엇인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쓴 뿌리,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쓴 뿌리가 생기는 이유는 ?

일반적으로 사람은 과거의 아픔이나 상처, 혹은 환경 등으로 쓴 뿌리가 생기거나, 가난이나 질병, 신체적 장애나 실패나 열등감으로 인해 쓴 뿌리가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히브리 기자는 다른 측면에서 쓴 뿌리가 생긴 경우와 쓴 뿌리를 가진 모델로 에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6절)“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에서는 야곱에게 장자권과 축복권을 빼앗긴 후 쓴 뿌리가 생겼습니다. (창27:41)“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네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에서가 피해의식을 가지고 야곱을 죽이려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삭이 야곱에서 재산을 몽땅 주었으며, 집문서를 모두 넘겨주었습니까? 이유는 이것입니다. (창27:28-29)“만민이 너를 섬기고 네 형제의 주가 되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니라.”

아버지의 축복기도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축복기도를 받은 후 당장 복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야곱은 고난의 세월을 보내었습니다. 그럼에도 에서는 아버지의 축복기도를 받지 못함으로 통곡하였고, 자기가 받을 복을 야곱이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며 죽이려 하였습니다.

히브리 기자가 쓴 뿌리가 생기는 이유를 말하면서 에서를 소개한 이유가 무엇입니까?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영적인 축복을 잃어버리거나 빼앗기게 되면 에서처럼 된다.”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영적인 축복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 은혜와 축복과 약속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합니까? 에서처럼 팥죽 한 그릇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히브리 기자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영적인 축복을 받지 못하거나 빼앗기면 에서처럼 된다.”고 하는 말씀을 기억하므로,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혜와 축복, 약속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1. 쓴 뿌리의 열매, 원망으로 나타난다.

쓴 뿌리는 결과적으로 쓴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7:18)“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히브리기자는 쓴 뿌리가 맺는 두 가지 열매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15)“많은 사람을 괴롭게 합니다.”

쓴 뿌리를 가진 사람은 “내가 피해를 당했으니, 당신들도 피해를 당해야 한다.”논리로 다른 사람까지 괴롭히게 합니다. 쓴 뿌리를 가진 주인은 직원들을 괴롭힙니다. 쓴 뿌리를 가진 남편은 자기도 모르게 아내를 괴롭히고 자녀를 괴롭히며, 심지어 강아지까지 괴롭힙니다.

또한 쓴 뿌리는 (15)“다른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더럽게 하다.”란 “오염, 전염시키다.”라는 뜻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신명기 29:18-19절로,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두 사람이 원망하자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민16:1-2)“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당을 짓고, 지휘관 250명과 함께 일어나 모세를 거스르니라.” 어떻게 선동했습니까? “모세보다 온유한 사람이 없다”고 했는데, (민16:13-14)“우리 왕이 되고 싶어서 우리를 데리고 나왔으며, 우리의 눈을 빼려 한다.”라고 거짓선동을 하였습니다.

네 사람이 시작한 선동은 250명에게 확산되었고, 나중 온 백성들까지 전염되었습니다. 코로나보다 더 빨리 확산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성들은 광야 40년 동안 원망하며 불평였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출애굽 1세대는 광야에서 원망하다가 모두 죽었습니다.

구약 나오미란 이름은 기쁨이란 뜻이지만, 그의 삶은 전혀 기쁘지 않았습니다. 극심한 기근으로 온 가족들이 모압으로 이사하였지만, 남편과 두 아들만 잃고 십여 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오게 왔습니다. 고향사람들이 “나오미 아니냐?”라고 쑤군거리는 것을 보고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나를 더 이상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쓰다)로 불러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룻1:21)“내가 풍족하게 나갔는데 여호와께서 가난하게 돌아오게 하셨다.”나오미는 마치 문을 걸어 잠그고 하나님께 “당신이 나를 괴롭게 하셨습니다.”라고 시위하는 듯 말했습니다.

“당신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되었다.” 심지어 “하나님 때문에”라고 하는 피해의식을 갖게 될 경우 쓴 뿌리가 원망과 인간관계까지 단절시키게 됩니다. 여러분!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원망의 사람이 됩니다. 피해의식의 쓴 뿌리에서 벗어날 수 있길 소망합니다.

  1. 쓴 뿌리가 있다하여 낙망할 것인가?

가라지비유에서 종이 “가라지를 뽑을까요?”했을 때 주인은 “알곡까지 뽑을까 염려됨으로 그냥 두어라. 추수 때에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 할 때가 온다.”고 하셨습니다. 비유의 핵심은 쓴 뿌리는 모두 제거할 수 없으므로, 당분간 그냥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형과 아버지를 속인 후 야곱은 어떠했습니까? 외삼촌에게 열 번이나 속았고, 열 아들들에게 속았습니다. “너희가 다 나를 해롭게 하는 자며, 나를 지옥으로 내려가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참담하고, 비참하다고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달리,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내가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를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가시란 가시나무에 있는 가시가 아니라 “뾰족한 창”을 말하는 것으로 육체적인 질병이나 고난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겸손의 자리에 머물도록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현재 나에게 가시가 있다면, 내가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도록 주신 것이란 사실을 기억해합니다. (잠16:18)“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사람은 조금만 자랑할 것이 있으면 교만해집니다. 사람은 누구나 약할 때보다 강하다고 판단할 때 범죄하기 쉽습니다.

우리 삶에 절망적이고, 어둡고 아픈 일들을 당했다고, 우리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거나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롬8: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처한 곳이 아무리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시련과 함께 길을 내시며, 또한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지난날 원한과 아픔 때문에 타인과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나를 아프게 하는 쓴 뿌리, 나를 어렵게 만든 환경 때문에 낙망하지 말고, 오히려 나의 연약함과 가시마져도 선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