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네 자신이 선한 일에 본을 보이라.

성경 : 디도서 2 : 6-8

제목 : 네 자신이 선한 일에 본을 보이라.

  1. 4.25

성경은 많은 경우를 통해 우리에게 롤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우리가 가정과 다른 사람에게 롤 모델이 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이라” 오늘은 “너 자신이 선한 일에 본을 보이라.”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왜 본이 필요합니까?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미 게가 새끼 게들에게 똑바로 걸어라 시범을 보였습니다. 새끼 게들은 어미 게가 한대로 따라했습니다. 그런데 어미는“왜 옆으로 걷느냐?”야단쳤습니다. 이것은 본이 잘못 됐다.”라는 것과 본이 되기 어렵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7절)“본을 보이며”란 “군인들이 걸을 때 기준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줄을 서거나 행군을 할 때 기준이 없으면 혼란과 무질서하기 때문에 반드시 기준이 필요합니다. 또한 “본”이란 동물의 세계에서 어미가 새끼들에게 “날 때는 이렇게 하는 거야!”라는 시범을 보이는 것을 뜻합니다.

동물 뿐 아니라, 사람 또한 부모의 말과 행동, 가르침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은 자녀입니다. 지금 5살 된 나의 아이의 모습은 내가 5살 때 모습이며, 지금 내 아이의 사춘기 모습은 나의 사춘기 때 모습입니다. 그래서 “자녀는 부모의 거울”라 부릅니다.

보통, 아버지들은 자녀에게 엄격하지만, 손자들에게는 관용적이며 품어 주는 편입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솔로몬이 답해 주고 있습니다. (잠17:6)“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면류관을 외면하는 사람이 없듯, 손자는 할아버지에게 면류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아버지들은 자신의 아들들에게 손자에게 주는 사랑을 주지 않거나 못합니까? 아버지는 아들의 영광(명예)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자식은 곧 아버지의 얼굴이기 때문에 아버지는

무능하고, 비뚤어진 자녀를 볼 수 없기에 자녀가 훌륭하게 자라도록 엄격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아버지에 대한 섭섭함이나 원망 등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자녀에게 아버지는 후견인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버지에게 자녀는 자신의 얼굴이며, 자신의 인격이며, 자신의 능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때때로 사랑보다 다그치며, 훈계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특히 자녀에게 본을 보여야 합니까? 본을 보이지 못하면, 면류관은 고사하고 자신의 얼굴을 망치기 때문입니다. 결국 부모 자신을 위해서 “본을 보이라.”고 한 것입니다. 본은 자신과 자녀, 온 가정을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특히 선한 일에 본이 되는 부모가 되길 소망합니다.

  1. 공동체 안에서 본을 보이라.

사람이 모이는 곳에 항상 따라 다니는 것이 있습니다. 먼지와 병균입니다. 그래서 코로나 대처 법으로 “거리두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짓입니다. 거짓은 먼지와 병원균처럼 사람이 가는 곳마다, 공동체 속에 따라 다닙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2)“늙은 남자”, (3)“늙은 여자 젊은 자에게 본이 될 것을 교훈합니다.

나이 먹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50년 살았다는 것은 50년 보고 듣고 경험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20년 보고, 들은 사람과 50년 보고 들은 사람이 같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이 든 사람을 경륜이 많다.”라고 말합니다.

(2절)“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근신하며” 나이 많은 성도는 젊은이들에게 “절제와 경건, 자신을 통제”하는 본을 보이며, (3절)“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참소치 말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이와 같이”는 “늙은 남자와 동일하게”란 뜻입니다.

여자에게 추가적으로 참소하지 말며덧붙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술을 포함 음식을 먹으면서 요즘말로 하면 커피를 마시면서, 험담을 한다.”란 뜻입니다. 즉, 음식 먹는 시간이 길수록, 사람이 많을수록 험담은 비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이 들어 좋은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타인으로부터 강요받는 일이 적으며,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됩니다.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덜 쓰게 됩니다. 반면 나이 들어 나쁜 것들도 있습니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였기에 아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판단이 항상 옳으며, 남의 말과 가르침을 잘 받으려 하며, 자기 고집대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젊어 몸가짐이 단정했던 분들조차 나이 들면서 겁나는 것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나이 든 성도들이 분별력을 잃지 말고, 젊은이들에게 본이 되라고 한 것입니다.

초신 자, 교회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 잘 모릅니다. 나이 많은 사람, 먼저 믿음 사람들이 먼저 인사를 하고, 봉사하고 섬기는 것을 보고 배우게 됩니다. 교회는 나이 많은 사람 뿐 아니라, 남보다 더 많은 은사를 가진 자들의 모범이 필요합니다. 서로에게 본이 되길 소망합니다.

  1. 어떤 본을 보여야 합니까?

우리말에 “사람은 욕하면서 배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저 사람같이 살지 않을 거야”라고 흉을 보면서 그 사람을 닮는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누군가를 닮습니다. 바울은 젊은이들이 익히고 배워야 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2:4-5)“저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 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집안일을 하며 선하며..젊은 남자들을 권면하여” 젊은 여자는 남편과 자녀, 집안일, 남편에게 복종하는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도록 부탁하고 있습니다. 라헬이 아들을 낳아“요셉”이라 불렀는데,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씻으셨다.”뜻입니다. 라헬 또한 아들을 자신의 얼굴과 전부로 생각했습니다.

또한 (6절)“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은 신중하도록 권면하되” 신중해야 합니다. 노인과 가정, 부부에 대해서 신중하도록 본을 보여야 합니다.

(8절)“바른 말을 하게 하라” 대인관계에서 진실한 사람이 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다른 사람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1절부터 “선한 일”이란 말이 여섯 번 반복되고 있는데, “선한 일”이란 물질로 돕는 구제를 뜻합니다.

구제가 아름다운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은혜를 온전히 이해할 때 나타나는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는 집사와 장로 직분자를 세울 때 (딤전3:2)“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자”를 세울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경청해야 할 메시지입니다.

주님도(요13:14-15)“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부모는 자녀들에게 선한 본을 보여야 합니다. 경륜이 많은 자는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경건과 선한 일에 우리 모두가 본을 보이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