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소제드릴 때 물이 가득하였더라.

성경 : 왕하 3 : 14 – 20

제목 : 소제드릴 때 물이 가득하였더라.

  1. 4.18

우리가 살면서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경우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불가능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심을 확신시켜 주고 싶어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소제를 드릴 때 물이 가득하더라.”제목으로 은혜를 받겠습니다.

  1. 어려움이 생겼을 때 나타나는 반응은?

북 이스라엘 여호람 왕 때 모압과 전쟁이 있었습니다. 여호람은 남 유대 왕, 여호사밧과 에돔 왕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세 나라가 동맹을 맺어 모압과 전쟁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세 연합군은 7일간 행군을 하던 중 마실 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여호람 왕은 (10절)“이스라엘 왕이 가로되 슬퍼다 여호와께서 세 왕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는도다” 순간 여호람은 낙심과 두려움에 싸였습니다. 이런 반응은 생소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예기치 않는 상황을 만나면 낙심부터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큰마음을 먹고 일을 시작했는데, 갑자기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내가 잘못 시작했구나!” “친구 말을 듣는 것이 아닌데!” 후회하는 마음이 앞설 때가 많습니다. 반면 여호사밧은 달랐습니다. (12절)“여호와의 말씀을 가진 선지자에게 가보자”라고 하였습니다.

두 사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여호람은 어려운 상황을 만났을 때 “낙심과 두려움”부터 가졌지만 여호사밧은 “여호와의 말씀을 가진 선지자에게 가보자”하였습니다. 그냥 선지자가 아닌 여호와말씀을 가진 선지자입니다. 여호사밧은 신뢰의 기준을 “여호와의 말씀 가진 자”로 믿었습니다.

사람들이 급할 때 무당을 찾아가 “이런 경우 어떻게 하면 좋으냐?”묻듯, 그리스도인들이 “어느 목사님께 어느 기도원 원장이 신통하니 한번 물어보러 가자” 목사를 신통한 무당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샤머니즘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자문과 상담 받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경험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히4:16)“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가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으로 좌절이나 절망부터 하지 말고, 하나님께 나아가 “지금 제가 어렵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지혜를 구한다면, 분명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인도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1. 모든 사람들은 골짜기를 통과해야 합니다.

엘리사는 곤경에 처한 세 왕에게 재안했습니다. (16-17절)“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육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그러나 엘리사의 말은 현실과 맞지 않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골짜기는 가뭄으로 말랐고, 전쟁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만사형통하고 골짜기가 아닌 오아시스만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는 내일의 양식까지 원하지만,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종종 우리를 순탄치 않는 골짜기가 있는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애송하는 (시23:1-3)“여호와는 나의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라는 말씀만 기억한다면 하나님을 크게 오해할 수 있습니다. 다음 구절까지 기억해야합니다.

(4절)“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하나님은 분명히 자기 백성을 지키고, 인도하시기로 약속하셨지만 사망의 골짜기를 없애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적이 없으며, 오히려 “사망의 골짜기로 통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르티즈”란 목사님은 “우리의 많은 기도는 배달되지 않고 우체국 창구에 보관되어 있는 우편물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기도를 고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비록 우리를 골짜기로 인도하실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며, 잘 견디며 이기게 하소서!”

우리는 때로 북한과 소말리아에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스페인은 “사망의 골짜기”가 없습니까? 모든 산에 크고 작은 계곡들이 있듯이,

사람이 사는 곳이면 눈물이 있고, 시험과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날을 돌이켜 볼 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지켜 주셨고, 필요한 것들을 이미 공급해 주셨음을 경험했습니다. 비록 지금 우리 앞에 “음침한 골짜기”가 있지만,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음침한 골짜기를 잘 통과할 수 있음을 확신하길 소망합니다.

  1. 예배는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세 연합군대의 병사들은 아주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개천을 팠습니다. 그 중에는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전쟁 중에, “물도 마시지 못한 상태에 무슨 제사인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생각으로 표현하면 “오늘 먹을 양식도 없는데 무슨 예배인가?”“예배를 드린다고 돈이 나오느냐 밥이 나오느냐?”라고 하는 말과 비슷할 것입니다. 그런데 (20절)“아침에 미쳐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편에서부터 흘러와서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신약적인 의미로 해석한다면 “온 백성이 예배드릴 때에 물이 에돔 편에서부터 흘러와서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세상 사람은 그렇다 해도 믿는 사람마저 예배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것은 보다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 신약의 예배란 “몸을 굽혀 엎드린다.”라는 말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뜻입니다. 예배란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은 예배의 자리에 나왔습니다. 이것은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온 가족, 온 교회 성도들이 예배자리로 나오길 원하십니다. 예배의 자리에서만 누릴 수 있는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모두를 하나님께 맡기겠다는 믿음의 표시이며,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르겠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어려운 상황을 만났을 때 좌절과 절망부터 하지 말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수 있길 원합니다.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골짜기를 통과해야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홀로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주님과 함께 할 때 사망의 골짜기라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음을 확신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