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에 대한 3가지 진리

성경 : 빌립보서 3:10-12 / 제목 : 부활에 대한 3가지 진리

  1. 4. 4(부활주일)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은총이 여러분과 가정에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죽음과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 본문을 통해 “부활에 대한 3가지 진리”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우리는 매주일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시작되는 사도신경에서 “장사 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사”고백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확신하고 고백해야 할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3년 동안 주님을 따라 다녔지만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눅24:11)“사도들은 저희 말이 허탄한 듯이 뵈어 믿지 아니하나” “허탄”이란 “잠 고대하는 소리”란 뜻입니다. 제자들이 부활을 믿지 못한 것을 이해하더라도, 믿지 못하였을 때 그들은 모두 믿음에서 넘어졌습니다.

특히 도마가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도마는 주님께서 부활한 것을 자기 눈으로 직접 보아야 믿겠다고 했습니다. (요20:25)“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내 눈으로 보면 믿을 수 있겠지만, 내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내 눈, 과연 믿을 만합니까? 처음에는 좋아 보였던 옷이나 물건을 사놓고 보면 곧바로 후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눈이 삐었지” 자신의 눈을 한없이 원망해 본적이 있을 것입니다.

철학에서 “실증주의”, “경험주의”란 것이 있는데, 내가 경험한 것만 인정하겠다는 이론입니다.

사람들이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은 이성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전15:4)“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사” 부활은 과학적인 증거나, 내가 경험하였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사”성경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활을 믿게 되는 가장 큰 근거는 바로 성경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도신경”은 대단히 중요한 고백입니다. 부활신앙은 믿음의 뿌리이며, 기초입니다. 부활신앙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신앙고백일 뿐 아니라, 처음 예수를 믿은 후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그런데 부활을 아무리 믿으려 해도 잘 믿어지지 않는 분은 없습니까? “주님 주님의 부활과 나의 부활을 확신하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고 성령께서 역사 하시면 부활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고백한 것과 같이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신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1. 우리 자신의 부활입니다.

요즘 봄철을 맞아 나무 가지들과 꽃들이 피어나는데, 그런데 가만히 있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뿌리가 죽은 나무들입니다. (고전15:20)“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첫 열매란 “견본, 모델, 뿌리”란 뜻으로, 주님과 동일한 모습으로 부활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포도나무 비유를 해 주셨습니다.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부활에 참여하게 됩니다. (10절)“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바울도 자신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 아주 많이 노력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할 수 있다는 고백을 위해 만드신 것이 있는데 세례입니다

(롬6:4-5)“세례를 받음으로 주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세례 자체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에 참여하는 확신을 할 수 있도록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참여”란 “동참” 공유를 뜻합니다. 같은 공동체란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미 완성되었지만, 이제 남은 것은 우리 자신의 부활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활은 살아 있을 때의 부활이 아닌, 죽음 이후에 있을 부활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부활은 죽음의 문제를 전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죽음보다 먼저 부활을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활을 통해 죽음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죽음을 전제하고 사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육신의 죽음에 대하여 세상 사람들과 같이 너무 슬퍼하지 말라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부활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죽음에서 살아남으로 부활이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대로 부활 하셨습니다. 동시에 저와 여러분 또한 완전한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을 확신하길 소망 바랍니다.

  1.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부활됩니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부활합니까? 고린도교회도 크게 부활에 대한 두 견해를 갖고 있었습니다. 한편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하였고, 또 한편에서는 (35절)“죽은 자들이 어떻게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는가?” 생각하였습니다.

전자의 질문은 부활 자체를 의심하는 질문이요, 후자는 부활을 확신하지만, 어떻게 부활하는 모습에 대한 질문으로, 두 질문은 그 내용과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바울은 부활을 믿지만, 어떻게 부활하는 것에 대해 잘 모르는 자들에 대하여 다음과 말하였습니다.

(고전15:52)“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다.” 현재 우리의 육체는 썩습니다. 또한 시, 공간에 제한을 받습니다. 그런데 부활의 몸은 영의 몸으로, 시공간 제한 받지 않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 제자들에게 나타났을 때 모양처럼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이 문을 닫고 있었지만, 방안에 들어 올 수 있었습니다.

“변화되어”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내가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부활하신 권능으로 변화된다는 뜻입니다. 마치, 애벌레가 나방이 되듯이, 주님께서 재림 하실 때, 다시 썩지 아니할 모습으로 변화된 몸으로 부활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성경대로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 또한 그리스도와 동일하게 부활하게 됩니다.

그것도 썩지 아니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요11:25-26)“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주님께서 하신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