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소제의 예물, 향기로운 제물이 되다.

성경 : 레위기 2 :11-16

제목 : 작은 소제의 예물, 향기로운 제물이 되다.

  1. 3.21

구약에는 다섯 종류 제사가 있습니다. 4가지는 동물로, 한 가지는 곡식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2장에서 곡식 제사인 소제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구약의 곡식 제사인 “작은 소제의 예물, 향기로운 제물이 되다.”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소제의 예물, 전체를 드리는 것이 되다.

소제는 “고운가로”로 드리는 제사로, 5제사 중에 규모나 성격 면에서 가장 작은, 최소의 제사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드릴 수 있는 제사, 심지어 “먹을 것이 없다.”고 하는 사람조차도 드릴 수 있는 최소의 제사입니다. 부유한 사람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똑같이 드리는 제사입니다.

소제의 특징은 다른 제사와 달리, 기념물, 오늘날로 말하면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제사입니다. (2:2)“기념물로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9, 16절)“기념물로 불사를지니” “기념물”은 히브리어로 “아즈카라”란 말로, “일부분을 드림으로 전체를 드린다.”라는 상징적인 뜻을 담고 있습니다.

“아즈카라”의 의미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말씀은 “성만찬”입니다. 주님께서 “떡과 잔”을 주시면서 “이것은 내 몸이며, 내 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떡과 잔을 통해 제자들에게 주님의 몸과 피, 죽으심을 기억하며 기념토록 하였습니다.

한나의 짧은 기도 속에 삶 전체를 담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삼상1:11)“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한나는 짧은 기도를 통해 자신의 모든 고통을 건져달라고 합니다. 삼손 또한 은사를 남용하므로, 눈이 뽑히고 기둥에 묶여 있을 때 마지막으로 (삿16:28)“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조금 기도해 놓고 모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욕심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욕심이 아닌 간절함입니다. 짧은 기도 속에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으며, 짧은 기도 속에 자신의 일생 전체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이 소제이며, 아즈카라입니다.

우리가 하루를 시작할 때, 5-10분 말씀과 기도로 시작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느냐?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하루 전체를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주일예배의 작은 시간은 일주일 전체를 드리는 것이며, 나에게 아주 적은 연보, 그것은 나의 전체를 드리는 기념물입니다.

나의 적은 달란트, 너무 작아서, 그것이 너무 흔해서 라고 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를 위해 드리는 것은 나의 모든 재능을 드리는 소제입니다. 하나님은 기념물 소제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날마다 작은 소제를 드리는 삶을 통해 전체를 드리는 삶을 살 수 있길 소망합니다.

  1. 소제의 예물, 희생을 드리는 것이 되다.

배추가 맛있는 김치가 되려면 다섯 번 죽어야 한다고 합니다. 처음 땅에서 뽑힐 때 한 번 죽고, 통배추의 배가 갈라지면서 또 죽습니다. 세 번째는 소금에 절여지면서 또 죽고, 네 번째는 매운 고춧가루와 짠 젓갈에 범벅이 돼 또 죽고, 그리고 장독에 담겨 땅에 묻히면서 또 죽습니다.

(2:1)“고운가루”라고 했는데, 소제는 곡식을 완전히 빻아서 불사르는 것으로 완벽한 희생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소제물에 넣어서는 안 되는 것은 (11절)“누룩과 꿀”이며, 반드시 넣어야 하는 것은 “기름과 유향과 그리고 소금”입니다. “피 흘림이 없으면 사함이 없다.”고 하셨는데, 기름은 짐승을 죽임으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소제는 그리스도의 피 흘림을 기억하도록 한 것입니다.

유향입니다. (레24:7)“너는 또 정결한 유향을 그 각 줄에 두어” 유향은 “거룩과 정결함”을 의미하며, 그리고 (13절)“소금”을 세 차례 언급하며 소금을 넣어라 강조합니다. 그러면서(13절)“언약의 소금”이라 했습니다. 소금은 “하나님의 약속한 변치 않고 지키겠다.”라는 고백입니다.

소제물에 꼭 첨가해야 되는 기름과 유황과 소금의 공통점은 맛과 향기, 영향력을 미칠 때는 형태가 완전히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세 가지는 형태를 가지고는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소제물은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희생함으로 맛과 향기, 영향력을 드러내는 제사입니다.

구약에서 가장 먼저 소제를 드린 사람은 가인입니다. (창4:3)“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고 않지만, 거룩함과 희생이 없는 변질된 제사인 것만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주님은(마5: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금이 없으면 맛을 낼 수 없는 것과 같이, 세상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이 없으면 맛을 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주님에게 저와 여러분을 아주 소중한 존재라고 하셨습니다. 사상 가운데 맛을 내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1. 소제의 예물, 하나님의 소유가 되다.

처음 것을 하나님의 소유로 삼았던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모든 장자와 처음 것을 멸하실 때, 이스라엘의 장자와 처음 것을 멸하지 않았습니다. 이후에 “모든 처음 난 모든 것이 여호와의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소제물은 처음 것으로 드렸습니다. (12절)“처음 익은 것으로 여호와께 드릴지나” (14절)“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첫 이삭을 볶아” “첫 이삭”이란 “하나님의 소유”란 의미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것이지만, 처음 것을 상징적으로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많이 인용한 성경이 시편과 이사야입니다. (사43:1)“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그런데(사1:3)“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동물도 제 주인을 아는데, 이스라엘은 주인을 모른다는 것은 소와 나귀보다 못하다는 뜻입니다. 소제를 통해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소제를 통해 잃어 버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열심과 수고를 회복해야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작은 섬김과 봉사는 우리의 전체를 드리는 소제입니다.

우리의 작은 예물은 희생은 드리는 소제입니다.

우리의 작은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됨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소제입니다.

(롬14:7-8)“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 고백이 우리 자신의 고백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