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급한 영혼을 채워 주옵소서!

성경 : 시편 107 : 4-9 / 제목 : 갈급한 영혼을 채워 주옵소서!

  1. 2.28

한국 청년들에게 “당신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했는데, 전혀 예상하치 못한 대답이 나왔습니다. “나는 감동을 받고 싶다.”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감동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오늘 “갈급한 영혼에게 만족을 주신다.” 시인의 고백을 통해 해답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1. 광야와 사막에서 물을 찾는 갈급함을 주옵소서!

시인은 광야와 사막에서 부르짖고 있습니다. (6절)“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광야와 사막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물입니다. 보통 의사들은 “333 생존 법칙”이라고 말하는데, 사람이 공기 없이는 3분, 물 없이는 3일, 음식 없이는 3주정도 생존할 수 있다고 해서 나온 말입니다.

시편은 갈급함에 대한 최대의 표현으로(시42:1)“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왜 많은 짐승 중 사슴입니까? 사슴은 사나운 짐승들이 물가에 기다리고 있어 물이 있어도 마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슴은 언제나 목이 말은 상태에 있습니다.

다윗의 생애 중 어려웠을 때가 많았지만, 그중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입니다. 그는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도망치는 위급한 상황에서 (시40:17)“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나의 도움이시오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옵소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습니다.

그 결과(삼하17:28-29)“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 바르실래가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꿀과, 버터와, 양과, 치즈를 가져다가 먹게 하였으니” 하나님은 다윗의 간절함은 외면치 않으시고, 바르실래를 통해 필요를 채워 주셨습니다.

수로보니게여인은 예수님께 귀신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간청을 하였을 때, 주님은(마15:26)“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다”하셨습니다. 그럴 때 여인은 “주여 옳습니다만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나이다.” 물러서지 않고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필요를 채우실 때 종종 인간의 고정관념을 깨뜨린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3년6개월 기근 가운데 있을 때, 까마귀를 통해 떡과 고기를 먹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짐승의 본능까지도 통제하시면서 자기 백성들을 먹이셨습니다.

시인은(5-6절)“광야와 사막, 주리고 목마른 상태에서 부르짖을 때 던져주셨습니다.”(잠8:17)“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나님은 우리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일을 하십니다. 간절히 사모할 때, 반드시 풍성하게 채워 주실 것을 확신하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1. 광야와 사막에서 길을 찾는 갈급함을 주옵소서!

시인은 (4-5절)“광야사막 길에서 방황하여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해 근심 중에 부르짖었습니다.”

광야에서 길을 잃었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어디로 가야할까? 이곳으로 가야할까? 찾고 부르짖었더니 (7절)“바른 길을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다.”고백하였습니다.

“낙타는 사람과 달리 사막에서 길을 잃는 법이 없다.”, “사막에서 길을 잃을 때에 늙은 낙타를 따라가라.” 옛 유목민의 사회에서 통용되는 말입니다. 유목민들에게 낙타는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특히, 늙은 낙타는 유목민들에게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는 나이 50살이 되어도 “나는 어디서 왔으며, 나는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알 수 없어 고민하고 방황하다 비로소 그 길을 찾았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종종 길을 잃거나, 길을 잘 모르고 가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은 새 가지 잃어 버린 것에 대하여 찾은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목자는 한 마리의 양을, 여인은 한 드라크마를 그리고 아버지는 잃어 버린 아들을 찾고 또 찾았을 때, 결국은 찾게 되었습니다. “찾고 찾았다.” 이것은 대충이 아닌 간절한 마음으로 찾은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 지금은 코로나로 한적하지만 많은 사람이 찾고 있습니다. 2018년 스페인 관광청은 산디아고 순례길을 걸은 한국인이 5,117명이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로, 길을 찾기 위해,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길을 걸었다고 했습니다.

여행을 하다 길을 모를 때, 물어 보듯, 인생의 길 또한 체면 때문에 그냥 가지 말고 확인하고 물어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종교는 자신이 스스로 길을 찾아가지만, 기독교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어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주님은(요14:6)“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주님은 우리의 길입니다. 지금 주님과 함께 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이 가고 있는 길이 참된 길이요, 생명의 길이요, 진리의 길입니다. 어렵다고 방황하거나 취우치지 말고, 끝까지 주님을 바라보고, 걸어가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1. 영혼의 목마름을 채우는 갈급함을 주옵소서!

(5절)“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기 근심은 정신적으로 앓고 있는 모든 내적인 상태를 총칭하는 단어입니다. 어쩌면 현대인들이 안고 있는 걱정, 근심, 우울, 긴장, 욕구불만 등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육체가 병이 나면 병원에 가지만, 영적으로 병이 나면 속수무책입니다. 영적인 것은 육체, 정서, 정신적인 것을 지배하기 때문에 더욱 심각합니다. 사람에게는 세상의 것으로 채우지 못하는 공백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 즉, 육신과 영혼으로 지음 받은 존재이기에 때문입니다.

일찍이 솔로몬은 (전2:11)“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라고 인생의 공허함을 맛보았습니다. 허무함을 경험한 사람이 본문 시인이나 솔로몬뿐이겠습니까?

열심히 공부를 하고, 착실하게 살았는데 허탈합니다. 사회적인 지위도 있고, 남부럽지 않는 삶을 사는데, 인생이 허무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있는 것으로, 심지어 쾌락으로, 공허함을 채우려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명품 가방을 들고, 명품 옷을 입는 다고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거스틴이 말대로 “피조물이 하나님을 찾기까지는 만족이 없다.”라고 한 말은 옳은 말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하나님을 찾기까지는 진정한 평안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기까지 인간은 누구나 끝없는 방황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후3:5)“우리가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여러분! 광야와 사막에서 물을 찾듯이, 잃어 버린 길을 찾듯이, 영혼의 목마름을 채우는 갈급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갈급한 만큼, 채워주시고 만족케 해 주실 것을 확신하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