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산의 수고에 담겨진 뜻

성경 : 요한복음 16 : 21-24 / 제목 : 해산의 수고에 담겨진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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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의 고통은 여자만이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아내 곁에서 해산하는 고통을 지켜보았을 뿐 해산의 고통을 잘 모릅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해산의 고통의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해산의 수고에 담겨진 뜻”이란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해산의 수고는 생명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율법에 여인이 아들을 낳으면 40일, 딸은 80일 동안 출입을 삼가고 몸을 정결케 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지금도 비슷한 규정들이 있습니다. 유럽에서 육아휴가가 가장 긴 나라는 그리스로 43주이며, 영국이 39주, 스페인이 8주, 포르투갈 6주, 한국은 12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산모와 산아의 건강은 물론, 보호하기 위한 의도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생육하고 번성하는 축복을 주셨는데, 그 축복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인 셈입니다. 그런데 딸을 낳았을 때 두 배, 바깥출입을 삼가도록 한 이유가 무엇일까? 성경은 별 다는 해답을 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당시 사회와 산모마저 딸을 덜 소중히 여기는 풍속과 심리로부터 딸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해석하는데 공감됩니다. 하나님께서 여자를 더 보호하고 챙기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딸은 훗날 생명의 원천이 될 산모가 될 것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부모들이 자식을 키우면서 어려울 때마다 “내가 어떻게 해서 낳은 자식인데” 산고의 고통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산고의 고통은 자녀를 지키고, 양육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원천입니다. 한 생명을 얻기 위해 10개월 동안 감내한 고통이 평생 자녀를 지킬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에게도 자식이 소중하지만, 어머니에게 자식은 분신과도 같은 존재며, 삶의 원동력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얌전한 어머니라도 장가간 아들이 며느리에게 구박받는 것을 못 보는 것입니다. 반면 자기 아들을 잘해주는 며느리보다 예쁜 며느리가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과 자녀를 지키기 힘듭니까? 언제 공부 다 시키고, 언제 시집 장가보내고, 언제 손자 손녀를 볼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해산의 고통을 이미 경험하신 여러분은 자신은 물론, 자녀를 보호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확신합니까? 확신하시길 소망합니다.

  1. 해산의 수고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졸업식 때 가장 먼저 어머니에게 사각 모자를 씌워 드리고 꽃다발을 안겨 줍니다. 어머니는 다른 것은 “괜찮다.”고 양보하는데, 이것만큼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모자를 씌워 주길 바랍니다. 이것은 자식의 졸업은 곧 어머니 자신의 졸업이며 자식의 영광이 곧 자신의 영광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여자에게 산고의 고통을 주셨지만, 반면 산고 뒤에 오는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21절)“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치 아니하느니라.” 무슨 뜻입니까? “어머니는 세상에 어떤 고생과 아픔이 크더라도 자식을 생각하면 고통을 잊게 되고, 극복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성경역사와 유럽과 한국의 역사를 보면 역대 왕들은 왕권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는 경우는 많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왕이 되도록 자신을 희생시킵니다. 이것은 “모성애”가 “부성애”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127:4)“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솔로몬은 일찍이 자식보다 든든하고 힘이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자식은 부모의 울타리와 같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해산의 고통으로 낳은 자녀를 통해 기쁨과 위로를 얻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구부러진 화살로 목표물을 맞힐 수 없듯이, 구부러진 자녀는 부모에게 울타리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빗나간 화살이 사람을 해하고 죽일 수 있듯이, 성경은 구부러진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가를 수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직 해산의 수고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삭과 리브가도 자식으로 숨넘어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창26:35)“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해산의 고통을 통해서 우리의 자녀들을 똑바른 화살과 같이 믿음 안에서 똑 바르게 양육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1.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해산의 수고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해산의 수고에 비유했습니다. (갈4:19)“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해산의 고통이 따르며, 한 영혼이 주님을 영접하는 것은 곧 출산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님은 3년 동안 잉태의 고통을 통해 출산한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자신의 몸인 교회를 출산하기 위해서 해산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주님은 해산의 고통과 함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교회가 태어난 것입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해가 뜰 때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잃어 버린 중국의 영혼을 위해 “하나님 중국 영혼들을 나에게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16세기 존 낙스가 “네게 스코틀랜드를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주십시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여인에게 아이를 낳을 때의 아픔보다 더 큰 아픔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이를 낳지 못할 때의 아픔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한 영혼을 해산하는 수고도 크지만, 더 큰 아픔은 영적으로 해산하지 못한 아픔이 더 큽니다.

성경은 세상에서 가장 큰 3가지 기쁨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수고한 것에 대하여 열매를 거둘 때입니다. 둘째, 자녀를 얻을 때입니다. 셋째, 한 영혼이 주님에게 돌아왔을 때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해산의 수고는 고통이지만 자신과 자녀의 생명을 보호하고 살아가는 원천이 됩니다. 그러나 아직 해산의 수고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해산의 수고를 통해 우리에게 맡긴 가정과 교회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