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시편 107 : 25-30 / 제목 : 소원의 항구에 도착하기까지
- 1.17
사람이 태어나 수많은 것들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내 인생은 한편 드라마와 같다”라곤 합니다. 시편107편은 “인생은 마치 항해하는 배와 같다.”라며 배가 항구에 도착하기까지 크게 3가지를 경험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오늘은“소원의 항구에 도착하기까지”란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 소원의 항구에 도착하기까지, 광야와 사막을 경험합니다.
이번 1월 5일 파리다카 자동차 경주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작했는데, 15일 정도 소요됩니다.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사하라사막을 통과하여 세네갈의 수도인 다카까지 갔다 다시 파리까지 되돌아오는 죽음의 경주로, 총 7,500km, 75%가 모래사막입니다. 금년은 60팀, 300여명 참가했습니다.
본문에서 시인은 먼저 우리 인생은 마치, 광야와 사막을 통과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4절)“광야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우리는 광야와 사막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지만, 광야는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음으로 사람이 살수 없는 곳입니다. 무엇보다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찾지 못합니다.
이런 곳에서 모세는 40년간 양을 먹이며, 십보라와 만나 결혼하여 자녀를 낳았습니다. 이스라엘백성전체가 40년 광야에서 생활하며, 무사히 광야를 통과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 다윗과 엘리야, 세례요한, 바울과 주님도 광야에서 삶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자기 백성들을 광야와 사막의 길을 통과하게 하였으며, 어떻게 의식주를 해결했을까? 광야와 사막의 생활을 통해서 무엇을 얻었을까?
광야와 사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입니다. 광야는 인간이 그토록 추구하는 권력과 명예와 소유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며, 신분과 지위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광야와 사막은 높은 사람 낮은 사람의 차별도 없으며, 광야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광야를 통과하면서, 광야는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면 사람의 힘으로 살수 없다는 것을 깨달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였습니다. 이같은 사실에 대해 시인은(5-6절)“광야와 사막에서 주리고 목이 말라 영혼이 피곤하여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면서 부족을 느끼는 것은 광야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족함과 함께 어떻게 소원의 항구에까지 갈 수 있습니까? (잠16:3)“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주께서 소원의 항구에 인도해 주실 것을 확신하길 소망합니다.
- 소원의 항구에 도착하기까지, 매임의 과정을 경험합니다.
미국 자유의 여신상과 파리 에펠탑은 세계에서 대표적인 자유의 상징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유의 여신상은 1886년 미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가 뉴욕에 기증한 것이며, 에펠탑은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1889년 만든 것으로, 둘은 모두 “자유를 획득한 상징물”입니다.
시인은 많은 사람들이 (10절)“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아 쇠사슬에 매여”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12절)“돕는 자가 없다.”고 괴로워하였습니다. 마치 사람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과 같이 울타리 안에 갇혀, 자유가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짓누르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부모라는 짐, 사업과 직장인이 지고 있는 짐이 적지 않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집에서 별로 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가정의 대소사와 자녀를 키우는 일은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짐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로 인해 압박과 눌림 당하고 있습니다. “매 주마다 정부에서 가급적 집 안에 있고,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 공부도, 일도, 예배도 집에서 드리라. 여행하는 것도 자제하라.”합니다. 그럼에도 매임의 과정을 통과해야만 하며, 어렵다고 포기할 수 없습니다.
(갈6:2)“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 여기 짐은 “바로스”란 말로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말합니다. 우리말에도 “기쁨을 나누면 배로 늘어나고, 슬픔을 나누면 배로 줄어든다.” 라는 말처럼 기쁨과 슬픔을 나누면, 가볍게 할 수 있습니다.
(히12:1)“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죄보다 얽매이게 하는 쇠사슬은 없습니다. 죄는 인생을 황폐하게 만들고,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을 송두리째 빼앗아 갔습니다. 죄를 짓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마11: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하셨습니다. 비록 우리가 지고 있는 짐이 무겁지만,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소원의 항구에 인도해 주실 것을 확신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 소원의 항구에 도착하기까지, 질병의 과정을 경험합니다.
모든 사람이 소망하는 항구에 도착하기까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은 질병입니다. 질병은 소망의 항구에 도착하기까지 거쳐야 하는 가장 치명적인 것이라 할 만합니다. (18절)“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 병이 무서운 것은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질병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질병으로 인해 소원의 항구에 도착하지 못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질병은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두렵고 무서운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많은 병자들이 찾아왔습니다. (눅4:40)“해 질 적에 각색 병으로 앓는 자 있는 사람들이 다 병인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온 동네 사람들이 모였으니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수많은 병자들을 집단적으로 대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치료해 주신 것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오늘날 사람을 차별하여 치료하는 병원이나 의사들과 비교할 때, 오늘의 현실이 주님의 마음과 바람과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너희 중에 병든자가 있느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누구도 이 말씀과 상관없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병자를 위해 합심해서 기도한다면 질병이 물러 갈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광야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때론 질병을 갖고 살아가지만, 시인의 고백같이 (30절)“평온함으로 여호와께서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약속하셨습니다. 비록 우리에게 지워진 짐들이 무겁고 힘들지만,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소원의 항구를 향해 전진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