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낙심하며, 불안해 하는가?

성경 : 시편 42 : 1 – 5 / 제목 : 어찌하여 낙심하며, 불안해 하는가?

2020.11.29

시편 42편과 43편은 연결된 것으로, 저자의 이름은 없지만 고라자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 시인은 크게 낙심하며 불안해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러나 결국 낙심과 불안이 소망과 찬송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늘은 “어찌하여 낙심하며, 불안해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현실을 보면, 낙심하며,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 저자인 고라자손은 낙심하며 불안해 한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3절)“종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며, 주변에서 비웃고 조롱하였기 때문입니다. (7절)“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마치 자신이 주변에 포위된 듯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보고 낙심하며 불안해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시인은“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네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라고 (5,11, 43:5) 찬송가 후렴처럼 세 차례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시인은 (3절)“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라고 할 정도로 슬픔에 잠겼습니다.

 

6절을 볼 때, 시인은 다윗 왕이 압살롬이 반역할 때와 사울을 피해 도망할 때 동행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시인은 다윗 왕과 요단 땅과 헤르몬과 마살 산으로 쫓겨 다니며 낙심하며 불안하였지만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셨던 사실을 기억하고(5절)“여전히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오늘에 직면한 현실을 바라볼 때 낙심하고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가 언제 끝날까? 성도들이 언제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성도들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답답함을 넘어 낙심과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기독교 화가인 렘브란트는 마가복음 4장을 배경으로, “폭풍가운데 예수님과 제자들”이란 그림을 그렸습니다. 배는 폭풍으로 절반쯤 기울어진 상태에서 겁에 질린 제자들, 돛대를 붙잡고 아우성을 치는 제자들, 예수님을 깨우는 제자 등 다양한 모습으로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배에 탄 사람은 예수님과 제자, 13명이 아닌 14명인데, 한 사람은 렘브란트 자신을 포함시켰습니다. 놀라운 것은 제자 중 한 사람만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작가는 사람들이 현실을 두려워 하지만, 기도로 극복하려는 사람이 적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라자손은 현실 앞에 낙심하고 불안하였지만, 지난 날 지켜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여전히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으로 낙심이 되고 불안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므로, 낙심과 불안을 극복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1. 자신을 바라보면, 낙심하며,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라자손은 자신의 연약함을 보고 크게 실망합니다. 42, 43편에서 “나”라는 1인칭이 무려 51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어쩌고, 내가 어쩌고”라고 온통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시인은 여지없이 무너지는 자신을 바라보며 낙심하며 불안해하였습니다.

 

사전에 “낙심”이란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 맥이 풀린 상태”라고 적고 있습니다. 낙심은“자신감을 잃어 소망과 용기가 땅에 떨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평소에 당당해 보이며 자신감 넘치기도 하지만, 작은 일에도 낙심하고 불안해하고, 맥이 풀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알, 아세라 850명과 싸울 때 두려워하지 않았고, 3년6개월 가뭄 가운데서 기도로 비를 내리게도 했지만, 이세벨이 죽이겠다는 말을 듣고, 낙심하며 두려워하여 “나의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라고 하루 동안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요즘은 손가락 하나로 중장비를 움직여 수십만 톤의 물건을 옮기고, 운반하기도 하며, 컴퓨터의 엔터키 하나로, 엄청난 일을 해 냅니다. 요즘은 기계와 컴퓨터 힘을 빌리지 않으면 소식도 전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지난 주간에 은행에 갔는데, 컴퓨터가 고장이 그냥 돌아왔습니다.

루터는 찬송가 585장에서 “내 힘만 의지할 때 패할 수밖에 없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모든 대적들과 사울의 손에서 지키시고, 구원하신 사실을 상기하면서 노래했습니다. (시18:2)“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피할 바위시로다.”

 

여러분! 우리는 질그릇과 같아 상하고 깨어지기 쉬운 존재이며, 쉽게 포기하고 낙망하고, 불안해합니다. 자신을 바라볼 때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손에 붙잡힌바 될 때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나약한 나를 보지 말고, 강한 주님의 손길을 의지하길 소망합니다.

 

  1. 하나님께 소망을 두므로 낙심과 불안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낙망하고, 불안할 때마다 하나님을 갈망하며 찾았습니다. 42,43장에서 낙심과 불안하다고 세 차례 반복하였지만,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5,11,43:5절)는 말씀 또한 3차례나 후렴처럼 반복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42,43장에서 “하나님과 주”란 이름이 20여 차례 반복되고 있는데, 이것은 낙심과 불안할 클수록 하나님을 소망하고 갈망했음을 말합니다. 얼마만큼 갈망하며 소망했습니까? (1절)“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우리말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 말처럼, 갈급함이 크면 클수록,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말로 시인은 하나님을 찾지 못하면 죽는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시인은 절박함과 절망이 너무 컸기에 하나님을 찾게 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여러분! 현실 앞에 자신의 무기력함을 보고 낙심하고 불안해하는 것이 잘못이거나 비 신앙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조차 절망적인 현실 앞에 낙망하지 불안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낙망하고 불안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을 소망하며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여러분! 누구나 절망적인 상황을 만날 때 낙망할 수밖에 없지만, 낙망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께 소망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낙심과 불안이 결코 절망으로 끝나지 않아야하며, 오히려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사람에게 크게 세 가지 고민이 있는데, 물질문제, 인간관계, 그리고 자신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물질문제의 고민을 노력 하면 풀 수 있으며, 인간관계의 문제는 푸는 자는 많지 않으며, 그리고 자기 자신의 문제와 고민은 아무도 풀 수 없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현실과 나 자신을 보면 낙심하며 불안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소망할 때 낙심과 불안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므로 지금 우리가 직면한 여러 일들과 현실을 잘 극복하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