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의 그릇된 결정이 낳은 불행

성경 : 창세기 16 : 1 – 6 / 제목 : 세 사람의 그릇된 결정이 낳은 불행 / 2020.11. 1

여러분! 아랍, 이슬람과 기독교의 분쟁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아십니까? 오늘 본문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브람과 사래, 하갈의 그릇한 결정이 2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4천년 갈등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세 사람의 그릇된 결정이 낳은 불행”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사래의 그릇된 제안이 멸시와 학대를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자녀를 주겠다.”약속했지만 10년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자 사래가 아브람에게 (2절)“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 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그릇된 제안을 하였습니다.

고대사회는 자녀에 대한 열망이 컸으며 특히, 여자가 자녀를 갖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린 형벌로 여겼습니다. 라헬이 아이를 낳지 못하자 (창30:1)“야곱에게 이르되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한나 또한 자식을 갖지 못하였을 때 통곡까지 하였습니다.

사래는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정한 일부일처 제도를 무너뜨리면서 여종을 통해 자식을 소유하려 했지만 하갈이 임심을 했을 때 (4절)“하갈은 여주인을 멸시했고”(6절)“사래는 하갈을 학대”하였습니다. 그릇된 제안은 멸시하고 학대하게 되었습니다.

최초로 그릇된 제안을 한 부부는 아담과 하와입니다. 화와는 아담에게 잘못된 제안을 함으로, 자신을 물론, 모든 인류가 죄인이 되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 신약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악을 도모하는 일에 하나가 되어 악을 도모하므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반면 고린도와 에베소교회를 섬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부부는 서로에게 모범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바른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에베소에 있을 때, 성경학자인 아볼로가 말씀을 정확하게 가르치지 않는 것을 보고,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자존심 상하지 않게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 설명해 주었습니다.

부부가 한쪽에서 잘못된 제안이나 잘못된 길로 가려할 때 바로 잡아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약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의 유익이 무엇입니까? 한쪽이 약할 때,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것입니다.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서로 붙잡아 주는 부부가 되길 소망합니다.

  1. 아브람의 그릇된 결정이 원수가 되게 하였습니다.

믿음의 조상답게 아브람은 평소 바른 결정을 잘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하셨을 때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떠났으며, 조카 롯과 다투었을 때 롯에게 우선권을 주고 자신은 상수리나무가 우거진 들판을 택했고,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 했을 때도 머뭇거림 없이 순종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래가(2절)“나의 여종과 동침하라고 했을 때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아브람은 사래의 말이 떨어지자 재빨리 하갈을 취했고, 또한 사래의 요구대로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얻었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뱅은 “잘못되게 제안한 사래보다 아브람의 결정이 더 잘못되었다.”라고 주석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최소, 네 차례 이상 자녀를 주실 것을 약속하셨지만 약속을 믿지 못하고, 그릇된 결정을 하였습니다. 자신의 판단으로 하갈을 통해 낳은 이스마엘은 사래의 후손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중동과 아랍문제, 기독교와 이슬람의 분쟁은 아브람의 잘못된 결정에서부터 출발되었습니다.

지난달 파리 노트르담성당에서 3명이 흉기에 찔리거나 참수 당했는데, 범인이 경찰에 사살되면서 “알라는 위대하다.”고 했습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 “IS”는 라마단 중 금식규정을 어긴 청소년 2명을 교수형 시키는 등, 그들은 “코란을 믿지 않는 자는 우리 적이며, 죽여도 좋다.”는 대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배우자와 직장, 학교, 주거지뿐 아니라, 1시간 잠을 잘 것인가? 산보를 할 것인가? 등 매 순간 선택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결정을 잘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기준이 잘못되었거나 없기 때문입니다. 아브람 또한 하나님의 기준이 아닌 자신이 판단한 기준으로 결정했습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보다 팥죽 한 그릇을 택했습니다. 히브리기자는 에서에 대해(히12:16)“망령되게 행하였다.”라고 했습니다. 법정에서 백성들과 빌라도는 예수님보다 살인자 바라바를 택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의 그릇된 결정으로, 그의 후손들은 4천년 동안 갈등 속에 살고 있습니다. 선택과 결정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합니다. 잘못된 선택과 결정은 자신과 가정은 물론 많은 사람들까지 불행에 빠트리게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바른 선택과 결정을 하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1. 하갈의 그릇된 선택이, 파괴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사래가 하갈로부터 멸시를 받자 “내가 같은 여자의 속마음을 전혀 몰랐구나!” 후회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자 사래가 곧바로 반격에 나섰습니다. (6절)“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삼각관계라고 말합니다.

사래가 학대한 것도 옳지 않지만 하갈이 자식을 빌미삼아 주인을 멸시하고 집을 뛰쳐나간 것 또한 옳지 않은 행동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자는(9절)“네 주인에게도 돌아가 순복하라”하였습니다. 하갈이 “집을 뛰쳐나간 것은” 주인에 대한 반항이며, 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런 하갈의 행동에 대해 (12절)“그가 사람 중에 들 나귀가 되겠고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하여 살리라.” 여호와의 사자가 말씀과 같이 하갈과 이스마엘 후손들은 지금까지 “들 나귀”같은 인생을 살면서 분쟁과 다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세 사람, 아브라함과 사래가 하갈의 그릇된 동기와 결정이 가져온 비극이 얼마나 큰가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세 사람의 그릇된 결정은 가정불화를 넘어 민족과 국가, 그리고 종교가 서로 다투고 분쟁하므로,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중동문제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나오미와 룻이 기근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하자, 룻은 나오미에게 “이삭을 줍겠나이다”라며 이삭을 주우러 나갔습니다. 룻이 이삭을 주우러 나간 밭에서 보아스를 만나 결혼하였고, 다윗과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작은 선택과 결정이 어려움을 돌파했을 뿐 아니라 위대한 인생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위급할 때일수록 올바른 선택과 결정이 필요합니다. 잘못된 선택과 결정이 예측할 수 없는 불행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바른 것을 선택하고 결정함으로 난국을 헤쳐 나가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