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자들이 머릿돌을 버리다.

성경 : 마태복음 21:42-46 /  제목 : 건축자들이 머릿돌을 버리다.

  1. 9.20

1970년 김민기 씨가 부른 “작은 연못”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깊은 산속 연못에 두 마리 물고기가 살았는데, 둘은 혼자 연못을 차지하려고 서로 싸웠습니다. 그러던 중 한 마리가 죽었습니다. 싸움에서 이긴 물고기는 “이제 모든 것이 내 것이다.”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연못은 죽은 물고기로 인해 오염되어 싸움에서 이긴 물고기도 함께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에는 돌에 대한 교훈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돌 판에 새기게 한 것을 비롯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꼭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을 때 돌 판에 새기도록 하였습니다. 오늘은 “건축자들이 머릿돌을 버리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건축자들이 머릿돌을 버리다.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는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에게 버림받을까 두려워할 때가 있으며, 직장생활을 할 때는 직장에서 버림받을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늙어서는 자식에게 버림받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주님도 버림 받으셨습니다. (42절)“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건축자들이란, 본문에 기록된 당시 대제사장, 바리새인 등 종교지도자로, 이들이 “머릿돌”되신 주님을 버렸습니다. 이들뿐 아니라 당시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별 쓸모없는 돌처럼 생각하고 버렸습니다.

 

이사야는 (사53:3)“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아 버림받았으며…우리도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요한도(요1: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 예수님은 철저하게 사람들에게 미움 받았고, 버림받았습니다.

 

“토사구팽”이란 말이 있는데, 2018년 삼성그룹 대졸신입사원 공개채용, 직무 적성검사에 출제된 문제로 “토사구팽에 등장하는 두 동물 이름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말로, “사냥꾼이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는 쓸모가 없어 버린다.”뜻으로, “용도가 없으면 버린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물건은 말할 것 없고, 사람마저 쓸모없으면 버립니다. 회사는 종업원을, 심지어 친구도 가족도 버립니다. 존 오트버그는 그의 책 “관계 훈련”에서 “실패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버림받는 것이며, 실패의 상처보다 버림받는 상처가 더 깊다.”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혹 버림받은 적이 있습니까? (요15:18)“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머릿돌 되신 주님도 버림받으셨는데, 저와 여러분은 말할 것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에게 버림받는다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버렸지만, 백성들이 다윗과 함께 했습니다. 요셉이 형제들로부터 버림받았지만, 하나님이 함께하므로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주님을 버렸지만 하나님께서 머릿돌로 삼으셨습니다. 사람에게 버림받는 것 때문에 너무 슬퍼하지 않길 바랍니다.

 

  1. 건축자들이 버린 머릿돌이, 부메랑이 되다.

“부메랑”이란 사냥하는 도구로 목표물을 향해 날아간 후 반작용으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사냥하기 위해 던진 부메랑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던진 사람에게 돌아옴으로 아주 위험합니다. 부메랑의 원리를 경제나 경영학에 적용하여 “부메랑효과”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즘 배기가스, 대기오염으로 가뭄과 홍수 등이 많아졌으며, 공장폐수로 많은 질병들이 유발되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는 대기오염으로 매년 전 세계 사망자가 약 80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사망한 10배 해당합니다. 현대문명이 부메랑이 되어 사람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부메랑이 되어 건축자들을 공격하였습니다. (44절)“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 위에 떨어지면 가루로 만들어 흩어지리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고 버렸지만, 도리어 주님은 그들의 심판주가 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같이 얼마 후 AD 70년, 실제로 로마 티투스 장군의 공격을 받아 함락되었습니다. 전쟁을 목격한 역사학자 요세푸스는 “약 130만 명 이상이 죽임을 당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1948년 독립하기까지 1,900년 동안 유리하는 백성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마23:37-38)“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바 되리라.”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복음을 거절한 예루살렘 최후의 모습은 참혹했습니다.

 

야곱이 아버지와 형을 속인 것이 부메랑이 되어 외삼촌과 자녀에게 속임을 당했습니다.(벧전3: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모든 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선한 것을 심길 소망합니다.

 

  1.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머릿돌(디딤돌)이 되다.

이탈리아의 건축가 미켈란젤로의 대표적인 두 작품으로, 모세상과 삐에타 상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삐에타 상을 만들기 위해 돌을 파는 공장으로 찾아 갔습니다. 공장 안을 다 둘러보았지만, 마땅한 돌이 없어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길가에 버려진 돌을 보았습니다.

 

주인에게 “밖에 있는 저 돌을 왜 버렸느냐?”라고 묻자, 주인은 “아무 쓸모양이 없어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미켈란젤로가 “저 돌을 가져가도 되느냐”하자 주인은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석수장이가 버린 돌로 그 유명한 “삐에타” 상을 만들었습니다.

 

(42절)건축자들이 버린 돌을 하나님께서 “모퉁이의 머릿돌” (중심과 기준)이 되게 하셨습니다. 버린 돌과 머릿돌은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돌입니다. 아무리 소중한 것도 잘못 버리면 자신을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이지만 천한 것도 유익한 것으로 사용하면 머릿돌이 되고 디딤돌이 됩니다.

 

사도행전 2장,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하루 3천명이 회개하고 주께 돌아왔습니다. 반면 스데반의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은 (행7:57절)“그들이 귀를 막고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 새” 똑같은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이 있는 반면, 스데반을 죽이게 하였습니다.

 

바울은(고전1:23) “그리스도가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1:18)“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독사가 이슬을 먹으면 독이 되고, 젖소가 이슬을 마시면, 우유가 되는 것처럼 동일한 말씀이지만 독과 약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가 별 쓸모없다고 생각하고 쉽게 버립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우리가 버릴 만큼 가치 없는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들이 버린 그분이 버린 사람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의 머릿돌이십니다. 주님을 버리지 않길 바라며, 우리의 중심과 기준, 머릿돌로 삼고 사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