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고린도후서 4 : 7-10 / 제목 :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할 때
- 6.21
2010년 8월5일 칠레의 산호세광산이 무너져 광부 33명이 지하 700m에서 69일 동안 죽음에 갇혀 있었지만 극적으로 구조되었습니다. 구조 후 칠레 대통령을 비롯, 가족과 전 세계 매스컴들은 일제히 “하나님께서 이루게 하였습니다.” (그라시아스 세뇨르!)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욱여쌈을 당할 때”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지금 “두려움”이 우리를 욱여싸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영국 BBC 방송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남긴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가장 많이 답한 것은 “두려움과 불안”이라고 했습니다. 지난주 엘리스 엔터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50명의 사람들에게 반응을 물었는데, 대부분 “두렵고, 불안하다.”라고 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일대학 “존 도널드”교수는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는 보통 “실패, 이별, 무질서”라 했습니다. 두려움은 사람의 본능으로, 예상치 못한 일을 당할 때, 건강과 소유, 가족 등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을 때, 무질서할 때 두려워하게 됩니다.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낳은 후 두려워하였고,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모세가 죽었을 때 두려워했습니다. 제자들은 풍랑으로, 바울은 유라굴로 광풍 앞에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 때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말고 놀라지 말라.”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사람조차 두려워하고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지금 전 세계는 코로나로 인해 전확하게 3개월 넘게 코로나로 포위
어떤 학자는 “두려움이란 하나님이 우리 인체 내에 설치 해 놓은 경보장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을 주신 것은 고통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더 큰 아픔과 비극을 예방하도록 주신 신호이며, 경고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여러 일들로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며, 오히려 두려움을 통해 더 큰 위험에 빠지지 않기 위함이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고후12:10)“내가 약할 그 때에 강함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것은 약할 때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바울도 두려움 가운데 서신을 썼습니다. 그러나 (8절)“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라고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우리를 도우셨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 지금 “답답한 일”이 우리를 욱여싸고 있습니다.
언제 답답합니까? 신체적으로는 목이 졸릴 때 답답하며, 현실적으로는 눌림을 당하거나 궁지에 몰릴 때 답답합니다. 해결할 일들이 많은데 해결하지 못할 때, 대안이나 방법을 찾지 못할 때, 답답함을 느낍니다.
바울도 지금 답답할 일을 당하고 있습니다. (고후11:23-27)“내가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8절)“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아니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따라 출애굽 하였습니다. 그런데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뒤에는 애굽군대가 추격해 오고 있었으며, 양쪽은 계곡이 막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진퇴양난”, “사면초가”였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일제히 “매장지가 없으므로 우리를 이끌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원망하였습니다.
(창32:7)“그 밤에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야곱은 그의 형, 에서가 400명을 데리고 죽이러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야곱은 가족의 생명과 재산까지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을 때 홀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였습니다. 그날 밤의 기도는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였습니다.
헬라어로 사람을 “안스로포스”라고 합니다. 그 뜻은 “위를 보는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지은 피조물 가운데 사람만이 위를 볼 수 있게 지으셨습니다. 이것은 앞과 뒤, 좌우가 막혔을 때에 절망하고 좌절하기보다 위를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두렵고 답답함이 찾아 올 때가 있습니다. 답답할 때 범하기 쉬운 것은 “하나님의 손길을 잊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답답함을 당할 때 원망하지 말고 위를 바라보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 지금 많은 사람들이 “꺼꾸러뜨림을 당하고” 있습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하다.”란 “레슬링 선수가 링에 누워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고후6:4)“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먹지 못한 가운데서” 바울은 만신창이가 되어 쓰러진 가운데서 (9절)“꺼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한 심리학자는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종교가 없는 사람보다 여섯 배나 더 행복하다는 통계를 낸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보다 고난을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은 예수 안에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구약성경 39권은 바벨론 포로기에 편집되었습니다. 존 밀턴은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었을 때 “복낙원”이라는 책을 썼으며,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존 번연의 천로역정은 존 번연이 가장 곤궁인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쓴 책입니다.
성경 중 가장 기쁨과 소망이 담긴 책이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이 계시록은 사도요한이 황량한 밧모섬에 갇혀있을 때 기록한 책입니다. 바울 또한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쓴 옥중서신, 엡, 빌, 골, 빌레몬은 고난 가운데 가장 많은 감사와 찬양과 기쁨이 넘쳤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레 위에 발자국”이란 시가 있습니다. 모래 위에 두 발자국 중 하나는 나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나를 지켜주신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발자국이 하나밖에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때 나는 “주님 왜 발자국이 하나밖에 보이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네가 절망적이고 어려울 때 내가 너를 업고 갔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때로 욱여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그리고 꺼꾸러뜨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잠24:16)“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고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오늘의 어려움과 두려움을 이기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