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소와 나귀에게 배워라.

성경 : 이사야 1 : 2 – 6

제목 : 소와 나귀에게 배워라. 2020. 3.15

성경에 동물을 통해서 교훈한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 특히 욥기에 많습니다. “네가 사자의 먹이를 델 수 있느냐?”, “들소와 말을 길들이게 할 수 있느냐?”, 본문 이사야는 소와 나귀를 통해 이스라엘을 책망하며 깨우치고 있습니다. “소와 나귀에게 배워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소와 나귀는 주인을 안다.

예수님이 가장 좋아하신 3권의 구약 성경이 있습니다. 신명기, 시편 이사야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약의 3권을 많이 인용하셨다는 뜻입니다. 특히 이사야서를 가장 많이 인용하였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대적하며 떠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심판을 선포하였습니다. 그 이유는(2-3절)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동물도 그들의 주인을 아는데, 이스라엘은 주인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와 나귀보다 못하다는 뜻입니다. 보통 소는 무거운 짐을 나르고, 논밭을 갈며, 힘든 일을 도맡아 하다가 죽은 뒤에는 고기와 가죽까지도 모든 걸 제공합니다. 소는 주인에게 충성과 헌신으로 보답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반하여 제 멋대로 행했습니다. (4절)“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스코틀랜드 “존 그레이”라는 목동은 “보비”라는 개와 함께 양을 먹였습니다. 어느 날 목동이 세상을 떠나 보비가 지켜보는 가운데 묘지에 묻혔습니다. 그날 이후 보비는 그레이의 무덤을 떠나지 않고, 그가 죽을 때까지 무려 14년 간 무덤을 지켰습니다.

 

보비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스코틀랜드와 해외까지 퍼져나갔고, 보비는 에든버러 시는 명예 시민권을 주었고, 죽은 뒤에 특별허가를 받아 존의 옆에 묻혔고, 시가 묘비와 동상을 세워 그의 충심을 기리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인을 모르는 이스라엘을 향해, 소와 나귀보다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네가 복이 있도다.”고 하셨습니다.

 

(롬14:7-8)“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1. 소와 나귀는 사람보다 지혜롭다.

노아가 방주를 지은 후 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방주 문은 7일 동안 열려 있었습니다. 노아 8식구 외에 누가 방주에 들어갔습니까?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짐승, 땅에 있는 동물, 공중의 새와 가축 등 모든 짐승들이 빠짐없이 들어갔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지진이나, 쓰나미, 화산 등 천재지변이 일어나기 전 동물들의 반응을 보고 미리 준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노아시대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수많은 동물들이 줄을 지어 방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방주의 문이 닫힐 때가 있듯이 구원의 문도 닫힐 때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교훈하셨습니다. (6:25-26)“너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중 나는 새를 보라! 주님께서 새를 표현을 할 때 현재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움직이는 세, 날아가는 새, 일하는 새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몸을 움직이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 염려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새를 통해 교훈하셨습니다. 저희 집 밖을 보면, 종종 새들이 부지런히 날아다니는 것을 봅니다. 왜 저렇게 날아다니고 있는가? 생각했지만, 노는 것이 아니라 먹이를 잡으려 부지런히 날아다니는 것을 봅니다.

 

(6:6-7)“개미에게로 가서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동안에 예비하며” 개미는 강압적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여 일합니다.

또한 개미는 분담과 협동을 통해 생존합니다.

 

중국 “리즈민”이 지은 “모든 기업은 개미에게 배워라”는 책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개미에게는 거부하기 어려운 보물이 있다. 개미는 서로 정보교류를 한다. 개미는 서로 신뢰한다. 개미는 폭넓게 권한을 위임한다. 개미들은 목적을 가지고 일한다.”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104:18)“바위는 너구리의 피난처로다 너구리가 지혜로운 것은 바위에 집을 짓고 살기 때문에 위험으로부터 안전합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마16:18)“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반석은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그리스도만이 무너지지 않는 인생의 기초입니다.

 

우리 인생은 자신을 어디에 세우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지식과 경험에 모든 것을 올려놓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믿고 있는 것들이 우리를 지켜 주지 못합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예수그리스도 위에 인생을 설계하고 사는 자입니다.

 

  1. 소와 나귀(짐승)를 통해 사람을 심판하신다.

주님은 (눅21:11)“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말세 뚜렷한 마지막 징조 가운데 하나는“전염병”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거에 흑사병과 종두, 최근에 발생한 모든 전염병의 특징은 동물에서 감염된 전염병입니다.

 

메르스는 낙타에서, 에볼라는 박쥐와 침팬지, 사스는 고양이, 에이즈는 원숭이, 조류독감은 철새 광우병은 소,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 19는 박쥐에서 옮겨진 전염병들입니다. 그런데 동물에 있는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옮겨 질 때 “인수 공통바이러스”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동물에 있는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감염되어 나타날 때는 변형되어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더 크고 강하고 빠르게 전파 되는데 이를 “슈퍼 바이러스”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 19호 확진 환자의 바이러스와 36호 확진 환자의 바이러스 균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제약회사에서는 백신을 만들 수도 없고,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변형된 바이러스에게 아무 효과가 없기에 개발을 포기하고 있으며, 정부가 보조금을 주어 개발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동물 바이러스는 약 160만 종류로, 현재 발견한 것은 겨우 300 종류 정도라고 합니다.

 

(요엘 1:7)“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모두 메뚜기 과에 속하는 곤충들로, 모든 식물을 삼켜 버렸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10재앙 가운데 동물로 인한 재앙이 6가지나 되며, 하나님이 요엘을 통해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때에 모두 동물을 통해 내리셨습니다.

 

 

당시 목축업을 하는 백성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가축입니다. 가축은 그들의 직업이며, 소유이며, 그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근본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가장 필요하고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동물이 오히려 재앙이 되었고,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까?

 

(출12:12)“내가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10재앙은 한 마디로 애굽사람들이 섬겼던 신들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대신 섬겼던 나일강, 그들이 섬겼던 개구리 신, 그들이 섬겼던 짐승, 재물과 하나님 대신 섬겼던 모든 것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모두가 직명하고 있는 전염병과 재앙은 하나님 대신 사람들이 섬기고 있는 것들에 대한 심판이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 것들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이런 이유로 이사야는 (16절)“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악한 행실을 버리고 악을 그치라”, (18절)“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이사야는 하나님이 나의 주인 되심을 알라고 하셨습니다.

소와 나귀보다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소와 나귀(짐승)를 통해 사람을 심판하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없는가? 살피며,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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