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요한복음 13 : 8-15
제목 : 왜 제자들의 발을 씻었는가?
2020. 2. 23
로마와 그리스시대 뿐 아니라, 지위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섬긴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동양 문화권에서도 소위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섬긴다거나 정치인이 국민들을 섬긴다는 개념은 아직도 생소합니다. 오히려 세상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지배하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를 섬기고 있는가? 기준하여 그 사람의 능력이나 위대함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을 섬기고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이유”를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제자들이 서로 섬기는 자가 되도록
일본 어느 청년이 회사에 이력서를 냈습니다. 사장이 면접 자리에서 의외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부모님의 등을 긁어 드린 적은 있는가?”물었습니다. 청년은 제가 초등학교 때 단 한번 등을 긁어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 발을 씻겨 드린 적이 있느냐?”그 때 청년은 “없습니다.”
사장은 “오늘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 발을 씻어 드리고 난 다음, 내일 다시 오라.”고 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청년은 어머니에게 사정을 말하고 발을 씻게 되었습니다. 청년은 태어나 처음으로 어머니의 발을 만져 보았습니다.
어머니의 발바닥은 나무껍질처럼 딱딱했고, 군데군데 갈라져 있었고, 사람의 피부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칠었습니다. 청년은 어머니 발을 보며, 비로소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했는가를 알았고,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나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청년은 회사로 찾아가서 사장에게 말하였습니다. “사장님께서 저의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했는가를 알게 해 주셨습니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을 깨닫게 해주셔서 참 감사드립니다. 이제 정말 어머니를 잘 모실 겁니다.”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장은 “인사부에 가서 입사 수속을 밟도록 하게.” 라고 했습니다.
성인의 뼈는 약 206개 정도인데, 그 중 손이 64개, 발이 62개의 뼈가 있어 전체의 뼈 중에 절반이 넘습니다. 우리가 “손발이 닳았다.”라고 하면, 악착같이 일했다는 뜻이며, “손발이 맞다.” 하면 “마음이 맞다.”란 뜻이며, “발을 빼다.”라고 하면 상관하지 않겠다는 뜻이 됩니다.
발은 신체 가운데 가장 많이 하며 모든 신체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손이 일하지 않을 때도 발은 일을 하며, 입이 일하지 않을 때에도 발은 일합니다. 제일 많이 수고하면서도 제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발입니다. 그리고 발이 가장 많이 일하지만, 항상 감추어져 있습니다. 축구 선수가 발로 골을 넣었을 때도, 칭찬은 다른 지체가 받습니다.
사람들은 자녀가 부모의 수고를 알 때 철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12절)“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주님은 제자들에게 발을 씻긴 뜻을 아느냐? 물었지만,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발을 주님께서 발을 씻긴 뜻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셈입니다.
제자들이 이유를 몰랐기에 설명해 주셨습니다. (14절)“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서로”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가정과 교회 공동체를 허락하셨습니까? “혼자”는 부족하고, 혼자는 약하고, 무엇보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혼자서 일하는 것을 보고 (출18:18)“그대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혼자 일할 때 “기력이 쇠한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함께와 같이”란 말이 3600여 번이나 나옵니다. 여러분! 우리가 무엇이든지 “함께”, “같이” 일하고, 섬기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2. 제자들이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도록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섯 개 단어로 된 헤밍웨이의 “소설”로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이지만, 가장 감동적인 글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아기 신발을 팝니다. 한 번도 안 신었어요!”(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워-은) 이게 무슨 의미인가?
“엄마가 아기 신발을 왜 팔까? 한 번도 신어보지 않았을까?” 의문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단번에 “엄마가 준비한 신발을 신지 못한 것일까? 아! 갑자기 아기가 죽었구나! 그래서 아기 신발을 팔려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단 여섯 단어로 사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합니다.
신발은 발을 보호하기 위해 신지만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을 소개할 때 (막1:7)“나는 몸을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신발은 자신의 미천함을 표시해 주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탕자가 돌아왔을 때에 아버지는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발에 신을 신겼습니다. 이것은 아버지가 아들의 권리를 회복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장 먼저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고 하셨습니다.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가장 낮은 자리를 뜻합니다. (세배할 때)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는가? 마리아가 300데나리온의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을 때 제자들은 “왜 비싼 향유를 낭비하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내 장례를 위해 행한 것이다.”라며, 복음이 전파 되는 곳마다 마리아의 행한 일도 기억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여러 번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실 것이라고 말했지만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제자들이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게 될 것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신앙의 상징이 무엇인가에 따라 기독교가 양분되어 왔습니다. 비교적 천주교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중시합니다. 스페인 관공서나 공동묘지에 가보면 대부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상을 새겨 놓고 있습니다. 천주교는 부활절 행사는 없지만, 고난 주간행사는 거창하게 합니다.
그에 비해 개신교는 십자가에 달려 있는 예수님보다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더 강조하는 편입니다. 고난주간 행사는 거의 없는 편이며, 대신 부활절 행사는 성대하게 치르는 편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십자가와 부활은 분리하여 설명할 수 없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2천 년 전에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과 나와 무슨 상관인가?”라고 말합니다. (갈1: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혼자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그를 믿는 모든 자들과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힌 것입니다. 이것을 “대속”이라고 말합니다.
(고전1:18)“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바울 당시 십자가는 수치스러웠고, 미련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십자가를 자랑할 수 있었던 것은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주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3. 주님께서 죄를 씻어주시는 분임을 깨닫게 하도록
주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으려고 했을 때 (7절)“절대로 씻지 못합니다.” 강하게 거절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8절)“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어 베드로는 (9절)“내 발 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주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대답은(10절)“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단순히 베드로의 더러운 발을 씻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숨은 뜻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발을 씻는 것은 죄로부터 깨끗케 씻는 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주님이 죄를 씻어주시는 분”임을 깨닫도록 위함이었습니다. 물로 몸을 깨끗하게 하듯이, 주님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음 받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에는 많은 연합과 조직체들이 있습니다. UN, EU, FIFA, IOC 등 강력한 조직체입니다. 그런데 이보다도 더 강력한 연합체가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부모와 자녀는 누구도 끊을 수 없습니다. 부부 또한 성경은 처음부터 둘이 아니고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강력한 연합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롬6:3)“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예수와 합하다.”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즉, 세례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속해 있다.”라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기 전에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세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세례는 “내가 그리스도 안에 속했다.”라는 것과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라는 신앙고백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와의 연합된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에베소서 무려 164회 이상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란 말은 에베소서와 바울 서신의 핵심 단어로,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다.
여러분! 세상종교들도 사람의 병을 고쳐주기도, 물질의 축복도 주기도 하지만 죄를 씻어주지는 못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세례는 내가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믿고 고백하는 자에게 베푸는 예식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서로 섬기는 삶을 살도록 위함이며,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음을 깨닫도록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발을 씻기신 사건을 통해 나의 허물과 죄를 용서해 주셨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서로 발을 씻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먼저 본을 보여주신 주님과 같이 겸손히 섬기는 삶은 물론, 십자가의 큰 사람을 깊이 간직하고 주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