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출애굽기 15 : 22 – 27
제목 :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시라.
2020. 3. 1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은 27개 정도 된다고 말합니다. 많은 감정 가운데 기쁨, 공포나 두려운 감정은 짧게 지속되는 반면, 슬픔과 원망의 감정은 상대적으로 오래 지속된다고 말합니다. 특히 슬픔과 원망의 감정은 다른 감정보다 최고 240배 더 오래 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15장은 이스라엘에게 최고의 기쁜 순간입니다. 430년 종살이를 끝내고 홍해를 건너, 자유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고의 기쁨도 잠깐, 3일 후 원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최고의 기쁨도 유효 기간이 고작 3일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 “나는 너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홍해를 건넌 후, 해방의 기쁨을 노래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만에 출애굽 하였습니다. 하지만 출애굽에 두 가지 큰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바로왕의 완고입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내 백성을 보내라.” 무려 8차례나 요구했지만, 보내지 않다가 열 번 째 재앙, 애굽의 모든 장자들이 죽은 후에 비로소 놓아주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우한 폐렴과 유사한 독종이 이집트 전체를 덮어 가축과 사람이 죽어 나갔지만, 바로는 그럼에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백성들이 죽어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은 볼 수 있습니다.
둘째는 홍해입니다. 홍해를 건넌 기쁨이 얼마나 컸었는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14:31)“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또한 15장 1-2절에서 “하나님의 위대함을” 찬양했습니다.
백년 전쟁 초기인 1345년, 영국과 프랑스 갈래와 전쟁 끝에 영국이 승리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에드워드 3세는 갈래시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했습니다. “칼레 시민들의 생명은 보장하겠다. 그러나 전쟁에 책임질 6명이 교수형에 사용될 밧줄을 목에 걸고 이 자리에 나와야 한다.”
그때 칼레시의 귀족들로 핵심인물 6명이 나섰습니다. 먼저 “생 피에르”가 먼저 나서자, 이어 “장 데르”등, 5명이 스스로 밧줄을 목에 왕 앞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왕이 단두대에서 처형을 내리려는 순간, 왕비의 간청으로 용감한 시민 6명은 극적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로부터 550년이 지난, 1884년 칼레 시는 로댕에게 6명의 조각상을 의뢰하여 “칼레의 시민”이란 작품을 완성하였다.
구약에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이다.”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 죽겠다”는 것이 아닌 자기 백성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겠다는 뜻입니다. 자기 민족을 멸망가운데서 구원하는 것이 에스더의 핵심입니다. 성경은 나라를 사랑하고 자기백성을 사랑하는 애국운동이 편협한 이기주의가 아닌, 참으로 옳은 행동임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3. 1운동 101주년입니다. 3. 1 운동은 한국이 일본의 통치를 받고 있을 때 1919년 3월 1일 한국인들이 자주독립을 위해 총궐기한 사건을 말합니다. 사실 3. 1운동은 엄밀하게 신앙운동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의 비인도적이고 강제적인 한반도 점령에 대한항거운동이었습니다.
항거운동에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참여 했을 뿐만 아니라, 33인의 대표 가운데 기독교인이 16명이나 되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을 소극적으로나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나라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요즘과 같이 어려운 시기일수록 더 많이 기도하고 나라를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마라에서 원망하다.
모든 백성들이 무사히 홍해를 건넜지만 사흘 동안 마실 물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마라에서 물을 얻었으나 물이 쓴 물이었으므로 마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23절)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마라”란 히브리어로 “쓰다”는 뜻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라에 도착하여 물이 있어 좋아했다가 마실 수 없자 곧바로 원망하였습니다. (24절)“백성이 모세를 원망하매” 해방과 자유를 얻은 기쁨과 감격도 잠깐, 마실 물이 없다고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이들은 3일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격하며 감사했던 자들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전염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이러스입니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우환 폐렴, 바이러스로 여러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있습니다. 몇 해 전에 발명했던 “사스”나 “메르스”가 발병했을 때에 전염성의 속도는 하루에 1만3000km까지 확산되었습니다.
하품입니다. 스위스 연구진은 “거울 뉴런”이란 신경세포에 의해 작동하는데 가까운 사람일수록 빨리 전달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원망입니다. 민수기 13장에서 열 정탐꾼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 돌아와 “우리는 그들에 비해 메뚜기 같다.”라고 보고하였을 때, (민14:1)“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백성들이 밤새도로 통곡하였더라!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애굽으로 돌아가자”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40년간 계속되었습니다. 원망의 전염성은 바이러스보다 더 강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원망할 때 공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였습니다. 현재가 애굽의 노예생활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며 원망한 것입니다.
원망이 가져온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민14:27-30)“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원망으로 이스라엘 60만 명 모두 광야에서 시체가 되었습니다. 원망보다 파괴적인 것이 없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또한 세상을 살아갈 때에, 인생에서 쓰고 아픔 마라를 만나게 됩니다. 지금과 같이 우환폐렴으로 전 세계를 위협하고 우리에게까지 위협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지금 우리 모두는 “마라”를 만난 것입니다.
사람은 어려움을 만나면 하나님을 탓하고 원망하기도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판단이 모자라거나 실수하지 않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잘 모르시고 그들을 마라로 인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전7:14절)“이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그런데 곤고할 때 “되돌아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아픔을 주셨는가? 내가 우리가 하나님의 떠나서 살지 않았는가?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생각해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은 무지개와 같은 아름다울 때도 있지만 흑백 사진과 같이 어두울 때가 있습니다. 기차가 터널을 통과할 때 캄캄해집니다. 터널은 종착지점에 이르는 한 과정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당하는 곤고한 날들은 우리 인생 여정에서 통과해야만 하는 터널입니다.
곤고한 날에 나의 부족함을 깨닫게 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을 더욱 더 의지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나에게 화가 아니라 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곤고한 날들이 올 때 믿음으로 무장하고, 단련하는 시간임을 기억하고 잘 감당할 수 있길 바랍니다.
3. 마라에서 치료해 주시다.
한국에 “둥글게 둥글게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춥시다.”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와 율동이 있습니다. 이 노래는 원래 유럽에서 전해 진 것으로, “Ring Around the Rosie(로지)”라는 노래로 아이들은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면서 둥글게 원을 그리며 놀이를 합니다.
원을 그리다가 노래 마지막에 인도자가 앉아, 혹 두 사람하면 모두 앉습니다. 그런데 가장 늦게 앉거나 짝이 없는 아이는 아웃됩니다. 여기 둥근 원은 “흑사병의 모양”이며, 쫓겨나는 아이는 장미를 뜻하는 “로지”인데, 로지는 흑사병을 일으킨 둥근 모양의 붉은 멍울”을 의미합니다.
1346년-1353년 사이 유럽에서 발생한 흑사병(Black Death)으로, 전 세계 1억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후 이 질병은 페스트의 병원균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때 세계 인구 1/3, 유럽의 총 인구 50%가 목숨을 잃었고, 사회구조와 경제적으로 회복 되는데 200년이 걸렸습니다. 쥐 몇 마리가 일으킨 페스트로 전 세계가 200년 이상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마라에서 쓴 물로 인해 원망했지만, 하나님은 마라에 도착한 백성들에게 소중한 약속뿐 아니라 치료와 회복을 주셨습니다. 첫째, 물의 회복, 근원의 회복입니다. (25절)“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물이란 모든 생명의 근원을 말하며, 물의 회복은 생명체에 대한 회복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마라에서 생명의 근원을 고치시고 치료해 주셨습니다.
여기에 던진 나무가 무엇입니까? (벧전2:24)“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는 살게 하려 하심이라” 나무는 십자가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당시 광야에서 유일한 나무는 싯딤나무로 언약궤를 만드는데 사용되었습니다.
미키마우스는 월트 디즈니의 아이콘입니다. 반면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는 죄인을 처형하기 위해 만든 형틀이지만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벧전2:24)“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느니라.” 주께서 지신 십자가로 인해 죄로 병든 인생을 치료해 주셨고, 죄로 고통 받는 쓴 인생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둘째, 질서의 회복입니다. (25,26절)“법도와 율례를 정하여 지키면 질병을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니라”하셨습니다. 십자가로 치유해 주시겠다고 하셨고, 그리고 여호와의 법도와 율례를 지킴을 통해 회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은 죄로 인하여 모든 것이 변질되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온통 씁니다. 남을 원망하고 서로 싸웁니다. 악독과 시기와 원망과 쓰디쓴 마라의 사회 속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얻은 상처와 아픔, 고통은 인간의 노력으로 마라를 극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마라에서 치유와 회복을 주셨듯이,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마라의 쓴 고통 또한 회복하시고 치유하실 것입니다. (시119:71)“고난을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우리는 고난 속에서 힘을 잃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을 얻게 된다는 교훈을 배워야합니다. 질병과 고통가운데서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