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지만

성경 : 잠언 14 : 1- 4
제목 :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지만
2020. 2. 16

한국의 수도인 서울의 역사는 약 600년이 좀 넘었습니다. 당시 서울은 목축업과 농업을 병행하여 소를 비롯한 가축을 먹이던 곳이었습니다. 서울이란 뜻은 “소 울타리를 친 곳”이란 의미를 담은 “소울”이란 이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즉 오늘의 서울은 “소를 먹이던 곳” 이었습니다. 오늘은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지만” 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소가 있으면 일이 많고, 힘들다.
여러분 중 소를 키워본 분이 있습니까? 소를 먹이면 온 가족이 동원되어야 합니다. 소는 위가 네 개이므로 얼마나 많이 먹는지 모릅니다.(약13kg) 그뿐 아닙니다. 냄새도 많이 나고 마구간도 치워야 합니다. 또한 소를 키우다보면 가끔은 아픔도 있습니다. 몇 해 전 한국에서 전염병으로 소 100여 마리가 병들어 땅에 묻은 후, 허탈한 마음을 가누지 못해 자살한 농부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혜자가 말하는 “소와 구유”는 무엇을 비유한 것인가? (1절)“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여기 집은 “사람의 거처하는 곳과 속해 있는 사람, 즉 가정과 공동체”뜻하고 있습니다. 즉 “소와 구유”란 간단히 말해서 “가정 안에서 가족”을 뜻합니다.

1절을 4절과 연결시키면 (4절)“가족이 없으면, 집은 깨끗하려니와”로 해석됩니다. 본문을 좀더 확대시키면, 이것만 없으면 고민도 없고, 스트레스 받지 않는 것, 이것만 없으면 고생하지 않아도 되고,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것, 이런 것들이 바로 소와 구유와의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소”는 부모나 형제일 수도 있고, 직장과 직장상사일 수도 있고, 매달 채워야 하는 목표량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일 수도 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지긋지긋한 학교공부나 학교시험일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맡은 직분이나 대인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본문은 주부에게 유의하고 있습니다. 식구가 많음으로 집안 살림하기 힘든 주부에게는 자녀나 집안 살림이 “소”일 수 있습니다. 소를 먹일 때 일이 많듯이, 집안 식구가 많을 때 일이 많습니다. 매일 시장을 봐도 모자라고, 세탁기 또한 이틀에 한 번씩 돌려도 모자랍니다.

혹시 여러분 중 “나는 언제 자녀들을 다 키우며, 언제 시집장가를 다 보낼까?” “빨리 가정에서 탈출하고 싶다.” 생각하는 분이 없습니까? “이러다가 내 인생이 집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가?” 이제는 자식과 남편, 가정으로부터 벗어나 취미생활도 좀하고, 친구도 자유롭게 만나고, 가고 싶은 곳도 가보고, 하고 싶은 것도 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지혜자는 왜 여인들에게 (1절)“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이런 부탁을 하고 있습니까? 옛날에도 그러했지만, 오늘날 가정을 보시면 대부분 남편들은 집에 거의 없습니다. 자연 아내가 집안에서 할 일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금년 학기 시험을 잘 마칠까? 혹 낙제는 않을까? 졸업은 잘 할까? 대학은 어디로 보내야 할까? 한 때 유행했던 “얄미운 여자 시리즈” 가운데 “제하고 싶은 것 다하는데, 자식이 잘되는 여자”라고 하는 것만 보아도, 여자들의 바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주부 혼자 집안일과 자녀를 양육하고 돌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1절 후반부분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손으로 헌다.”란 “방치하다.”란 뜻으로, 어렵고 힘들다고 집안일과 가족들을 방치하면 집안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신 지혜자는 현숙한 여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잠31:13,15)“누가 현숙한 여인을 얻겠느냐?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그 집사람에게 식물을 나눠주며 여종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현숙하고 지혜로운 여인은 가족과 관련되어 있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2. 소가 없으면 마음이 공허하게 된다.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깨끗하다.”는 “비어 있다.”로 “공허하다.”라는 뜻입니다. 공허함이 만들어 낸 두 가지 풍조가 있습니다. “허무주의”와 “매너리즘”입니다. “허무주의”는 삶에 가치나 의미를 찾지 못할 때, 나타나는 심리적인 현상을 말합니다.

“지렁이는 왜 살며, 개구리는 왜 개굴개굴 우는가?”, 그러다가 “나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왜 교회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질문해서 해답을 찾으려 한 것 까지는 좋지만, 해답을 찾지 못할 때 낙심하여, 모든 것을 비관하게 됩니다.

매너리즘은 1520년대부터 1600년대 미술을 “매너리즘 미술”이라 부릅니다. 중세기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거장들이 유명한 그림을 남겼습니다. 후대 미술가들은 거장들의 그림을 능가할 수 없습니다. 겨우 거장들의 그림을 모방하거나 답습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독창성을 물론, 대부분의 그림이 진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매너리즘 미술을 감상하는 하는 것이 힘든 이유입니다. 대표적인 매너리즘 화가는 “엘 그레코”입니다. 그의 그림은 대부분은 검정색이며, 12사도의 모습도 별 특징이 없이 대부분 비슷합니다.

매너리즘이란 라틴어 “손, Mano”에서 온 말로, “손만 움직인다.”는 의미로 “게으른 상태”를 뜻합니다. 즉, 매너리즘은 “몸은 움직이지 않고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무기력한 심리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매너리즘은 16세기 유럽의 사회 전반에 걸쳐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지혜자가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고 했는데, 소가 없으면 게으름과 공허, 무기력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비워둘 때 나쁜 것으로 채워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다윗이 언제 탈선하게 되었습니까? 왕궁에 혼자 있을 때, 할 일이 없었을 때, 다른 여인에게 눈을 돌렸습니다. 사람들이 언제 탈선합니까? 바쁜 직장생활과 사업이 바쁠 때가 아닙니다. 혼자 있을 때, 일이 없을 때입니다. 자식이 품안에 있을 때 한눈 팔 수 있는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품안에서 다 떠나고 없을 때 집이 텅 비어 있을 때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습니다.

농경사회에서 소는 주인을 위해 밭 갈고 짐을 실어 날랐으며, 송아지를 낳아 주인에게 재화를 제공했으며, 나중에 사람들에게 고기, 약식을 제공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 사용되었습니다.

지혜자는 저와 여러분에게 소는 희생의 상징물로, 소는 양육한 사람에게 육적, 영적으로 모든 것을 공급하는 상징물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가정에서 수고하는 일들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 야곱은 (창47:9)“험악한 세월을 보냈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역경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창46:30)“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가하도다.” 자녀로 말미암아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정을 돌보고 자녀를 양육하며 수고한 것들은 반드시 열매로 돌아올 것을 확신하시길 바랍니다.
3. 소로 얻는 유익이 아주 많다.
지난 구정에 우리 교회에서 기관별 윷놀이를 하였습니다. 윷놀이는 “도 개 걸 윷 모”란 이름은 집에서 기르던 가축들의 이름입니다.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은 양, 그리고 소는 윷, 모는 말 이름입니다. 그런데 다섯 동물 중 개나 말놀이라고 하지 않고, 소에 해당하는 “윷놀이”라고 한 것을 보면, 그만큼 소를 소중하게 생각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4절)“소의 힘으로 얻는 것” 이란 “곡식, 열매”를 뜻합니다. 본문은 “일과 소득”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농경사회에서 소는 쟁기로 밭을 갈고, 소달구지에 추수 때 곡식, 쌀가마, 볏단을 실어 나릅니다. 농부들이 소로 인해 얻는 유익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지혜자가 말하는 “소”,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자녀입니다. 솔로몬은 (시편127:3)“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4절)“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솔로몬은 자녀는 보무의 화살이며, 자식보다 큰 기업이 없으며, 큰 상급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화살은 곧아야 목표물을 맞힐 수 있습니다. 구부러진 화살로 목표를 맞힐 수 없듯이 구부러진 자녀, 바르지 못한 자녀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빗나간 화살이 사람을 해하고 죽일 수 있듯이, 성경은 구부러진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고 통곡하게 했는가를 수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둘째, 일입니다. (전5:19)“어떤 사람에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것을 인정하십니까? 일하는 것은 어렵지만 복입니다.

(창46:34)“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시 애굽 사람들에게 목축업은 3D 직업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가족들은 자국인이 싫어하는 일을 당당하게 해 낼 수 있었기 때문에 외국 땅에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노동의 장려와 노동의 사명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살후3:10)“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성경은 직업을 “소명”(Calling)이란 말로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주신 것”이란 뜻입니다.

일이라고 했을 때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요6:29)“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주님을 섬기고 믿는 것만큼 큰 일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구유에서 태어났습니다. 말구유는 누추한 곳이며, 누군가 손길이 필요합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주님께서 약속하신 은혜와 영광과 축복은 세상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고전15:58)“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가정과 일터, 주님의 교회를 끝까지 잘 섬기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